[도서] 청혼

글 입력 2024.04.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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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일

 

 

우주 전쟁과 로맨스를 교차시키는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청혼]은 목성 근처 소행성대에서 궤도연합군 작전 장교로 복무 중인 우주 출신 '나'가 지구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나'와 '너'는 빛의 속도로 17분 44초 떨어진 거리에서 '장거리 연애' 중이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지구까지 170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도 마다하지 않고, '너'도 '나'를 만나기 위해 180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날아온다. '나'는 지구의 중력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너'와 함께할 수 있다면 지구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지구로 가게 될 날을 막연히 그려본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곳 우주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끝나야 한다.

 

'나'가 복무 중인 우주 함대에는 사연이 있다. 오래전 지구에서는 옛 예언서에 적힌 대로 외계 함대가 공격해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함대를 건설해 목성 근처에 파견했는데, 의심했던 목소리들도 잠시, 건설 30년 뒤에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예언서 내용대로 현실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궤도연합군을 공격해온 적의 정체는 아직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지구에서는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궤도연합군 사령관 데 나다 장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해 감찰군을 파견하고, 사사건건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찰군으로 인해 누가 진짜 적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사이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함대를 정비하는 동안 휴가를 받은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170시간을 날아 지구로 가지만 떨어져 있던 거리만큼 뭔가 서먹해진 관계 속에서 '너'에게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180시간을 날아 귀환한다. 귀환한 뒤 우주에서는 몇 차례 전투가 벌어지는데 적은 마치 시간을 건너오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공격하고 사라지곤 한다. '나'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적의 존재, 그리고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전쟁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다. 전쟁의 형세는 점점 복잡해지는데…… 전쟁이 끝나는 때는 언제일까. 궤도연합군 사령관 데 나다 장군은 진짜 반란군일까. '나'는 데 나다 장군이 이끄는 궤도연합군에 남을 것인가, 감찰군 편에 설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너'를 만나러 다시 지구로 갈 수 있을까.

 

이 소설에는 보통 사람들의 경험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우주를 감각하는 사람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 존재와 존재가 만나 갈등하고 이해하는 감정의 역동을 보여준다. 특히 정체불명의 적들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주 한복판에서 임무를 다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구 측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궤도연합군 사령관 데 나다 장군의 고뇌와 갈등은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범한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무중력 상태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우주 출신 '나'가 지구의 중력을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온 '너'와 대화하며 어긋나는 장면에서도 차이와 오해의 장벽은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해받지 못한 말은 외로움으로 돌아오고, 거대한 우주 한가운데에서는 그 마음이 더욱 쓸쓸하다. 시간과 공간이 무한히 팽창된 우주 속에서 '나'와 '너'의 존재뿐만 아니라 '우리'의 외로움과 사랑, '응답의 문제'는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더 아프고 절실해진다. 작가가 저 먼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놓은 이유일 것이다.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깊숙한 시선만큼 눈길을 끄는 것은 우주 공간의 거대함을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끄는 생생한 묘사다. '나'는 '너'에게 우주라는 공간이 얼마나 넓고 아득한지,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조난당해 있는 듯한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하고, 대기가 없기 때문에 소리 하나 없이 생과 사가 갈리는 우주 공간에서의 전투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아름답지만 차마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는 광경을 눈앞에 그리듯 묘사한다. 천체물리학, 군사학 등 배명훈 작가가 꾸준히 탐독해온 지식들이 이야기를 탄탄하게 받쳐주어 우주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살아난다.

 

'청혼'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사랑과 낭만에 대한 기대감은 우주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 그 공간을 활용하는 전략 등 우주 공간에 대한 상상력과 맞물리며 더욱 증폭된다. 이런 배경과 사건의 독특한 맞물림이 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은 사랑의 관계를 사람과 사람으로부터 집단과 집단으로 확장시키는 대범하고 깊이 있는 스케일을 보여준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 세계와 존재, 사랑과 오해 등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우주와 인간, 사랑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다.

 

*

 

배명훈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스마트 D」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워] [안녕, 인공존재!] [총통각하] [예술과 중력가속도] [미래과거시제] [화성과 나], 장편소설 [신의 궤도 1, 2] [은닉] [청혼] [맛집 폭격] [첫숨] [고고심령학자] [빙글빙글 우주군]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에세이 [SF 작가입니다] 등을 썼다. 2010년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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