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신만의 거리와 목적지를 찾으려는 이 세상 모든 방랑자에게 [영화]

글 입력 2024.01.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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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턴 투 서울>은 프랑스로 해외 입양을 간 주인공 프레디가 순간의 호기심으로 생부모가 있는 서울로 향하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프레디의 인생을 뒤흔든다. 우연히 시작된 프레디의 ‘뿌리 찾기’는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마주하고 뒤틀리고 그러다 다시 만나고 엇갈리기 일쑤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민족 정서와의 분리


 

영화는 초입부터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거부하는 프레디(연희)의 모습을 그려낸다. 술자리에서 자작(自酌)하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며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테나(한국어와 불어를 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 프레디와 그 가족 사이에서 통역하는 인물)와 동완(테나의 남자친구)의 말에 프레디는 상관없다는 듯 다시 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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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 듯이 한국의 음주문화를 거부하는 프레디는 거침없이 다른 손님들에게 합석을 권한다. 테나와 동완은 그러한 프레디를 신기해하면서도 그로 인해 낯선 이들과 어색한 합석을 하게 되는, 프레디와는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이 조심스럽고 긴장감이 흐르는 술자리는 제법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도 지나친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게 당연하며 타인에게 피해가 갈까 다가가길 주저하는 한국의 정서와 자유롭고 개방적인 프랑스의 정서가 교차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데이비 추 감독은 이러한 민족 정서의 대립을 술자리라는 일상적인 순간으로부터 포착한다. 이러한 짧은 순간에서 알 수 있는 점은 프레디의 구애받지 않는 영혼과 묶여있길 ‘거부’하는 인물이란 점이다.


이후 영화는 한국의 정서를 뿌리로 하는 이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오는 시퀀스들을 배치한다. 가령 이 영화 관람등급이 15세임에도 프레디의 나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거나, 프레디가 원나잇 상대에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관계를 다시 요구한다거나, 마약에 취해 자신(프레디)의 애인을 타인과 함께 공유한다거나 하는 장면들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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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보다 더욱 숨 막히게 되는 장면은 따로 있는데, 바로 프레디와 그녀의 친가족들이 마주하는 순간들이다. 프레디의 친부가 지나치게 ‘연희(프레디의 한국 이름으로, 프레디의 한국 정체성을 고집하는 친부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에게 집착하며 넘치는 부성애를 주체하지 못하거나, 테나가 프레디의 친가족을 위한답시고 프레디의 사뭇 날카로운 말을 한국의 정서에 맞게 통역하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장면의 연속은 관객을 해당 국가와 분리하고, 해체하여 제3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대한민국의 문화에 익숙하며 그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어째서 그들의 모든 행동이 불편하고 무례하고 과해 보이는가?’ 이는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위를 통해 해외 입양자들이 겪는 거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제삼자의 거리에서 프레디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거리감을 살펴보아라.’ 이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다.

 

 

 

부성애를 통해 드러내는 만남과 엇갈림


 

내가 봐온 디아스포라, 해외 입양자와 관련된 문학과 영상물들은 대개 모성애를 비롯해, 친모와의 교류를 담아내기 마련이었다. <리턴 투 서울>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 상영을 진행한 디아스포라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같은 경우도 모성애를 다룬다. 전쟁 직후 자살한 남편으로 인해 남겨진 아내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겪는 내용으로, 레이시즘과 미혼모의 고충,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자의 갈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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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리턴 투 서울>은 보기 드물게 부성애를 다룬다. 프레디는 이 영화 안에서 무수한 만남을 이어나간다. 동시에 엇갈린다. 이때 주요하게 작용하는 엇갈림이 친부와의 관계이다. 프레디는 친부와 연락이 닿은 뒤, 가족들의 말을 통역해 줄 테나와 함께 친부에게로 향한다. 친부는 그러한 프레디의 일행을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군산으로 향하는 차에서 프레디와 친부는 백미러를 통해 마주할 수밖에 없고, 또 테나라는 통역사를 통해 소통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매체가 없다면 마주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장벽과 허물없이 대할 수 없는 거리감은 너무나도 멀다.


친부는 ‘연희’를 보게 된 이후, 매일같이 술을 마신 뒤 그녀가 알아보지 못하는 한국어로 문자를 보내고, 심지어 그녀가 머무르는 게스트하우스에 찾아와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불편한 잔소리를 하는 집착적인 모습을 보인다. 프레디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슴없이 다가오는 친부에 참지 못하고,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한다. 이처럼 주체할 수 없는, 조절할 수 없는 친부의 애정과 그로 인해 남은 상처와 후회와 한탄이 그들을 엇갈리게 한다.


프레디는 계속해서 우연히 이러한 상황에 내던져진다. 원래는 일본 여행을 갔어야 했으나 운행 중단으로 인해 ‘우연히’ 공항 직원이 추천한 한국에 오게 되고, 또 ‘우연히’ 하몬드로 향해 자신의 입양 기록을 찾아보게 되고, 또 ‘우연히’ 친부와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이러한 엇갈림은 프레디의 양립하는 정체성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abandon-ed: 자기 방어로서의 방종


 

혼란은 불안으로 자라난다. 그로 인해 프레디는 주변 인물들에게 버려졌다 느낄 때마다 방종한 삶을 살길 반복한다.


한국에 온 프레디와 원나잇한 상대는 이후 프레디에게 진심의 마음을 표하며 교제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레디는 애인이 있다고 거짓말하며 그의 진심을 가볍게 대한다. 그러한 광경을 옆에서 목격한 테나는 남자가 떠난 뒤 프레디에게 조언하지만, 프레디는 신경 쓰지 않고 테나에게 키스하듯 다가간다.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쉽게 연을 갖고 또 버리는 프레디를 이해하지 못한 테나는 결국 그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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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테나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한 옥탑방에서 살던 프레디는 하몬드를 통해 연락을 받는다. 이는 프레디의 생일 열흘 전 친모가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거절의 연락이었다. 이후 프레디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약에 취해 방탕한 하루를 보낸다.


그로부터 7년 후, 외국 기업의 무기 조달 직업을 가지게 된 프레디는 교제하고 있던 외국인 남자친구 맥심과 함께 한국 출장을 오게 된다. 그러면서 친부와 고모를 만나며 식사를 한다. 하지만 식사가 끝나고 자신을 다급하게 택시에 태워 보내는 친부의 행동에 혼란스러워하며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감정적으로 격해진다.


이는 친부가 9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그녀를 배웅한 것이다. 9년 전 군산에 있는 친부의 집에서 머무른 후 친부는 프레디가 집에 계속 머무르길 바랐었고, 프레디는 도망치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택시를 탔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친부는 (별다른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택시가 왔다며 프레디 일행을 재촉하고 긴 인사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녀를 떠나보낸다.

 

점차 시간이 지나 그녀가 친부와 완만한 관계를 쌓아가며 적절한 거리감을 찾았다고 느낀 순간, 알 수 없는 불안이 그녀를 오해와 혼란 속으로 내던진다. 이후 프레디는 택시 안에서 맥심에게 ‘난 널 언제든 잊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친부를 만나기 전엔 맥심에게 너와 함께 와서 좋았다며 영원을 약속하는 듯한 달콤한 말을 건넸다). 이러한 말은 맥심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친부에게 하는 중의적인 말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프레디는 그러한 불안 속에서 방어기제로 상대를 상처 주며 자신의 사람을 잃는다. 맥심과 그렇게 헤어지게 된 그녀는 이태원으로 가 밤새 방탕하게 논 뒤, 길거리에서 숙취 상태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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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물의 자기 방어는 그녀가 해외 입양자로서 느낀 일종의 버려짐(abandoned)으로부터 파생된 심리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해외 입양자는 선택권이 없는 자녀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버려지는 것도, 입양되는 것도, 그리고 친부를 찾고 그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온전한 선택이 아닌 부모들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렇듯 수동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해외 입양자들의 현실과 그러한 입양 제도는 고스란히 프레디의 위태로운 심리와 행동으로 나타난다.

 

 

 

Re-tour à Sé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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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서울>의 프랑스 제목은 이다. 여기서 나는 ‘Tour’에 집중한다. 영화 내에서 프레디는 여행하는 자이다. 한국에 관광을 온 프랑스인과도 같다. 프레디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집’이 없다. 그녀가 서울로 ‘리턴’할 때마다 지낸 곳은 게스트하우스와 사흘간 머물렀던 군산 친부의 집, 세 들어 사는 옥탑방, 여행객 숙소로, 모두 단기간 머무르는 곳이다. ‘Tour’. 즉 여행자, 방랑자로서의 디아스포라인, 해외 입양자를 상징하는 대목이 제목에 있다.


데이비 추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남들이 실패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사람들 간의 가장 적합한 거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프레디에게 한국은 너무나 먼 나라인데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 핏속에 존재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지나치게 먼 느낌과 떨칠 수 없이 가까운 느낌 그것들 사이에서 어떤 거리가 가장 적합한 최적의 거리일 것인가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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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에게 무엇이 최적의 거리일지는 관객조차 알지 못한다.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봤지만 받지 않고 한 번 거부당했던 친모의 소식은 9년을 거쳐 겨우 닿게 된다. 하몬드에서 처음 친모를 만나게 된 프레디는 눈물을 쏟고, 친모는 그러한 그녀를 꼭 껴안으며 흐느낀 뒤 메일주소를 건넨다. 그렇게 둘은 헤어지고, 이야기는 곧바로 1년 후로 도약한다. 프레디는 어딘가로 향하던 중으로 보이며(자세한 목적지나 여행의 연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투숙하기 위해 외국의 한 호텔로 들어간다. 호텔리어를 통해 그날이 자신의 생일임을 알게 되고, 지갑에 간직해 왔던 친모의 메일주소를 펼쳐 그녀에게 서투른 한국어로 친모를 용서했음을 전한다. 하지만 메일은 전송되지 않고, 없는 메일 주소라는 알림만 뜬다. 이후 프레디는 호텔에 배치된 피아노를 담담하지만 슬프게 연주한다.


이러한 결말에 있어 친모에게 다시 버려지고 부정당한 프레디는 여행자로서 방황한 10년을 넘어, 이제야 자신만의 거리감을 찾으려는 듯 보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올랐어도 프레디이자 연희의 삶이 종지부인 것은 아니다. 프레디는 어디로 향하던 길이었을까. 그리고 친모에게 부정당한 그녀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다시 서울로? 양부모가 있는 프랑스로? 친부가 있는 군산으로? 목적지가 어디든 프레디는 담담한 선율로 또다시 여행할 것이다.


비단 프레디뿐만 아니라 만남에 있어 사람과의 거리를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와도 같다. 자신만의 거리와 목적지를 찾으러 ‘투어’하는 모든 방랑자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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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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