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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익숙한 인사, 어색한 악수 [미술]

경계를 뛰어넘는 예술의 세계

by 변선민 에디터
2025.06.09 07:00

 

 

서양의 미술의 흐름은 잘 알아도 동양, 특히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글에선 한국 미술의 아주 대략적인 흐름과 변화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옛 그림들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한 번쯤 보았던 현대 미술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글’이 사라졌다는 것에 있다. 물론 현대에도 작품에 글이 포함된 경우가 아주 많고, 옛 작품에도 글이 없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이전 미술은 글과 그림이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미술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 영어 art를 일본어로 그대로 번역한 것이 미술이라고 한다. 미술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우리나라는 이러한 예술을 서화라고 불렀다. 서화란 글씨와 그림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도 우리는 그 당시의 예술이 ‘글’을 아주 중요한 위치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전에 쓰던 한자라는 문자 체계 자체가 보이는 대로 그려서 만든 글자이니만큼 옛 동양 사람들은 글과 그림의 뿌리와 창작 원리를 같은 것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옛 그림에는 그림과 글씨가 함께 공존한다. 그래서 이 둘은 항상 익숙한 인사를 건넸을 것이다. 글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글이 되는 작품은 그 시대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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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조선시대 작가 이경윤의 [송음고일도]이다. 구불구불한 소나무 가지 아래 놓은 큰 바위에 선비가 앉아있는 그림이다. 옆에 글이 같이 전시가 되어있는데, 이 글은 이경윤이 쓴 글일까? 놀랍게도 아니다. 이 글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서화 수장가 김광국이 그림에 대한 감상평을 남긴 것이다. 김광국은 이경윤의 그림이 마치 선인 같다고 말하며 사람의 그림이 아닌 것 같다고 극찬하였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글이 아닌데도 작품의 한 부분에 들어와 그림과 같이 전시되는 모습은 무언가 그 당시 예술의 관대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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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있기도 하다. 이 병풍은 명성황후가 직접 쓴 학림청담 10폭 병풍이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아내이자 일본에 시해당한 황후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이 병풍은 금박을 뿌려 장식한 귀한 종이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즐거움을 묘사한 내용을 쓴 병풍이다. 이처럼 이 당시에 ‘글’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텍스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림 없이 글만 있어도 전시할 만하고, 바라보기 좋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근현대 미술부터는 글의 자리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글의 자리를 그림이 차지한 것처럼 이전의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는 예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전의 미술이 글과 그림의 경계를 뛰어넘었다면, 세계가 연결된 현대가 된 지금은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시도가 눈에 보인다. 이전엔 서로 몰랐던 것들끼리 어색한 악수를 나누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어색함이 아름답지 않음은 아니다. 이 세계는 또 이 세계대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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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희 작가의 [in between]이라는 작품이다. 하늘과 푸른 바다의 경계를 그린 이 작품은 자동으로 몰입하게 하며 신비한 느낌을 담아낸다. 그림을 자세히 보다 보면 우리가 평소 보던 그림과 뭔가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가? 우리가 주로 보는 그림은 수채화이거나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인데, 이 그림은 한지에 채색을 한 산수화이기 때문이다. 산수화란 자연의 경치를 그리는 동양화를 일컫는 말이다. 이 그림도 경치를 담은 산수화이지만, 이전 산수화의 정교한 자연 묘사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물과 하늘의 경계를 담았다. 이에 따라 기존에 보던 산수화와는 아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라는 구분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풍경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산수화에 현대성을 담아낸 작품이다. 김보희의 작품은 보기엔 서양화 같지만 서양화가 가지고 있지 않은 따스함과 온화함, 차분함을 한지라는 동양적 요소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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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문범의 [slow, same]이다. 그림을 보면 마치 먹이 이리저리 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수묵 풍경화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은 먹을 사용한 그림이 아니다. 오일 스틱과 도료를 사용하여 그린 그림인데, 이때 도료는 흔히 자동차에 색상을 입힐 때 사용하는 안료이다. 문범은 선풍기를 사용하여 안료들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게 하여 이 그림을 제작했다고 한다. 김보희의 작품에서는 동양의 재료로 서양의 추상미술을 그렸는데, 문범의 작품에서는 새로운 재료로 동양화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이 두 작품은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현대 미술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동양의 글과 그림으로 가득한 이전의 그림과 서양과 동양이 함께 어우러지는 현대의 그림 사이에는 큰 변화가 존재하는 듯 보인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미술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인하여 빠른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에 따라 미술의 개념과 정의가 불분명하지 않고, 독자적인 예술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시대별 그림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과 시대마다의 특징이 완전히 다른 것은 우리나라 미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인 것 같다. 이 글에선 아주 작은 부분의 차이점과 시도를 담아냈다. 미술을 보는 하나의 작은 관점을 발견했다면 이 글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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