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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도자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냥 식기류 혹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비싼, 혹은 어쩌다 깨뜨릴 것 같은 이미지… 전공자나 관련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고서 아마 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자기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와 함께했고, 특히 동양 문화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도자기의 역사를 쭉 살펴보면, 흙이 겪었던 여러 굴곡과 변화가 있다. 흙이 거쳐온 시간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과 맞닿은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도자기는 그의 실용적이거나 장식적인 쓰임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도 인간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 아닐까.

 

도자기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도자기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도자기는 먼저 도기와 자기로 나뉜다. 도기와 자기로 나뉘게 되는 기준은 재료와 굽는 온도이다. 도기는 진흙으로 만들어지고, 자기는 광물을 많이 포함한 돌가루, 흔히 고령토라고 부르는 흙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도기보다 자기가 구워지는 온도가 훨씬 높다. 높은 온도에서만 유약이 잘 구워지기 때문에 도기에는 유약을 거의 바르지 않지만 자기에는 유약을 발라서 도자기를 매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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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살펴볼 도기는 삼국 시대 도기이다. 삼국 시대의 도기들은 실생활에서 쓴 도기들도 있지만, 무덤에 사망자와 함께 매장하는 부장품으로 넣어둔 도기들이 많이 발견되는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신라 시대 때 만들어진 금주 악상 장식 고배가 있고, 고배는 긴 굽이 붙은 토기를 이르는 말이다. 위쪽에 있는 춤을 추는 사람들을 섬세하고 귀엽게 묘사한 것이 인상 깊은 작품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이 작품이 부장품으로 넣어둔 것인지 알게 되었을까? 물론 무덤 옆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도 근거가 되겠지만, 이 고배의 실용성을 보고도 알 수 있다. 이 고배는 절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없다. 그릇을 자세히 보면 밑에 굽은 구멍이 뚫려 있고, 위에는 인형 장식들이 있다. 흙은 주변에 흔해서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잘 깨지고 망가진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구멍도 뚫고 인형도 위에 두면 아주 쉽게 망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배는 실생활에서 쓴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근데 왜 흙으로 이렇게 만들었을까? 본래 흙은 모든 것의 근간이자, 인간의 근원이라고 할 만큼 ‘태초’를 상징하는 재료였다. 대표적으로 ‘성경’에서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는 것도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다양한 금속이 발견되면서 흙 이외의 다른 금속 재료들의 활용이 많아졌다.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금과 은, 철기, 청동과 같은 금속이 발견되면서 자연스럽게 흙의 입지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때 흙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이 질문은 모든 도자 공예를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흙은 금속 공예품들을 따라 하기로 선택한다. 그래서 금속 공예품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고배를 보면 굽에 구멍을 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기법을 투각이라고 한다. 이 기법은 원래 도자기에서 온 기법이 아니라 금속 공예에서 온 기법이다. 돌아가신 분께 진짜 금속 공예품을 드리진 못하지만, 금속을 따라한 토기는 드리려고 했던 후손들의 마음이다. 이렇게 도자기는 계속 다른 재료의 특징을 따라 하고 유약으로 자신의 본래 색깔을 감추려고 할 것이다.

 

이제 고려시대의 청자로 넘어가 보겠다. 여기부터는 자기의 시대이다. 이전의 도기에 비해 단단하고, 화려해지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아까 토기들은 금속 공예품을 따라 했다면 청자는 어떤 것을 따라 했을까? 청자의 빛깔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옥을 따라한 것이다. 청자의 빛깔을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선 비취색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비취는 한자로 옥을 뜻한다. 이 당시에는 옥이 가장 귀중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 옥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빛깔을 내는 청자를 통해 옥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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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익숙한 청자의 형태는 아마 이런 모양일 것이다. 이는 보통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이라고 불리는데, 이름에서 드러나듯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을 상감 기법은 고려시대 도공들이 처음 창안한 기법으로 유명하다. 무늬를 넣을 부분만 섬세하게 깎은 다음에 그 자리에만 유약을 발라 굽는 기법이다. 또한, 운학문은 구름과 학이 그려져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윗부분은 두껍고, 아래로 갈수록 얇아지는 이 매병은 아마 도자기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모양이다. 이 매병은 주로 뇌물을 바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매병에 귀한 꿀이나 참기름을 가득 넣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보냈다고 한다. 매병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니, 매병 안에 든 내용물과 병 모두 마음에 들어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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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백자이다. 조선백자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사진으로 볼 수 있듯이 조선 중, 후기부터 제작된 청화백자일 것이다. 청자가 옥을 따라한 것이라면 청화백자에서 아름답게 여긴 파란색은 무엇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을까? 바로 코발트이다. 당시 중국은 중동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동에서 파란 코발트 안료를 들여왔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코발트 안료가 매우 매우 귀하고 비싼 것으로 여겨왔다. 코발트 안료가 여러 나라를 돌고 돌아 이곳에 도착한 귀한 안료라고 생각해서 돌 회자를 써서 회회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급스러운 코발트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너무 귀하고 비싸서 그럴 수 없었다. 이에 코발트와 비슷한 안료를 만들어서 백자 위에 그리기 시작했고,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만 있던 가마터에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원들이 모이게 되었다. 코발트를 따라 하기 위해 조선에서 만든 파란색 안료를 토청이라고 하는데, 파란색의 쓰임이 자유로워지면서 사람들은 도자기를 자유롭게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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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책가도 또는 책거리라고 부르는 그림이다. 책가도란 책꽂이를 통째로 옮겨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책뿐만 아니라 당시의 여러 귀중품도 함께 그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책가도를 자세히 보면 그 당시 귀중하다고 여긴 도자기들과 백자들이 보인다. 특히 조선의 왕 정조가 책가도를 참 아꼈다고 알려져 있다. 첨부한 사진의 책가도는 정조가 즐겨보던 책가도 그림이다. 정조는 왕의 의자인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이 책가도 그림을 걸어놓으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로 책가도를 좋아했다. 정조를 통해 책가도가 알려지면서 상류층 사이에서도 유행했다고 한다. 이들은 책을 그려 자신의 선비다움을 드러내고 비싼 자기들을 그려 자신의 재력을 자랑했다.


살짝 여담을 붙이자면, 조선 후기쯤엔 서양에서도 호기심의 방이라고 하여 귀중품이나 골동품들을 전시하는 문화가 유행했다. 그러한 서양의 문화가 동양까지 전해져서 책가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책가도를 책거리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이는 볼거리에서 따 온 말이고, 이러한 문화는 훗날 박물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그림을 보다 보면 서양의 문화가 많이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원근법이 쓰였다는 것이다. 본래 전통 회화에서는 원근법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그림에서는 소실점, 즉 선들이 하나로 모이는 점이 꽤 잘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이 책가도에 자기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가장 흔한 재료인 흙이 상류층들이 너무 원해서 그림으로까지 그리는 귀한 작품이 되었다. 도자기는 계속해서 다른 금속의 특징을 따라 하고, 자신의 본래 색깔을 감추었다. 이러한 모습은 흙이지만 흙의 색깔을 드러낼 수 없었던 서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흙이기에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흙이 가지고 있는, 가변성과 다양성은 이렇게 많은 종류의 도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가 되었고, 결국엔 모두가 아끼고, 상류층들이 아끼는 공예품이 되었다. 가장 초라해 보이는 흙에도 흙만의 장점이 있었다. 이건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아닐까. 초라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분명 그 사람만의 장점이 있고, 그 특징은 그 사람을 아주 높이 들어 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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