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시라는 여자를 처음 만났던 날은 대학교 1학년 2학기 즈음, 희곡 교양 수업을 들었을 적이었다. 매 주마다 희곡을 읽어와야 하는 수업이었기에 대부분의 작품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굳이, 한 번 읽고 말 것이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구입했던 희곡들이 있었다. 그 희곡이 바로 『밤으로의 긴 여로』, 『고도를 기다리며』, 그리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고, 사람의 '감' 같은 것이었다. 표지만 보고도 '이 책은 내 취향일 것 같다' 싶은 감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수업이 끝나고 서점으로 향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구매할 때,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1학년까지는 통학을 했다. 본가는 수원이었고, 서울까지는 편도로 두 시간 반이 걸렸다. 그러니까, 하루 다섯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며 학교에 다녔다는 이야기다. 학기 초반에는 씩씩하게 다니려고 버텨봤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이라면 왜 자취를 하지 않았느냐ㅡ같은 의문일 텐데,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상이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고, 개운하게 한강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마무리라는 이상.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은 이상이다. 애초에 다섯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상황에서 이상이고 뭐고 논할 때가 아니었다.
그놈의 이상이 뭐라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으며 블랑시에게 던졌던 말이었다. 그놈의 이상이 뭐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작품을 펼쳐 보니, 그 말은 블랑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랑시를 단순 인물로 여길 뿐 아니라 연민이 들었던 이유는, 나도 이상을 위해 갉아먹는 행동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가. 그놈의 이상이 뭐라고.
그렇게 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다시 펼쳤던 것이다.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으로, 그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간 작품이다. 교사로 일하던 블랑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극락'이라는 곳을 찾아 내리면서 희곡은 시작된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극락은 이상과는 거리가 먼, 미국의 뉴올리언스 빈민가다.
블랑시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유니스 여기가 거기예요.
블랑시 극락이라고요?
유니스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블랑시 그 사람들이, 내가 찾는 주소를 잘못 안 게 분명해요······.
블랑시는 동생 스텔라와 그녀의 남편 스탠리와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스텔라에게 자신이 상속받은 땅, 벨 리브를 잃었다고 전한다. 스탠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을 하고 사치를 부리는 블랑시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그녀의 짐을 확인한다. 그는 교사의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는 값비싼 옷과 장신구, 사치품들, 재산을 잃고도 허영심만 가득한 블랑시의 존재가 거슬리기 시작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스탠리는 술에 취해 친구들과 포커를 치다 간섭하는 스텔라를 향해 폭력을 행사한다. 이내 화해하는 두 사람을 블랑시는 이해하지 못하고, 스텔라에게 스탠리에 대한 험담을 한다. 그 험담을 듣게 된 스탠리는 블랑시에 대해 참아왔던 분노가 터져 뒷조사를 하기 시작하고, 블랑시와 연인 관계에 가까웠던 미치와 동생 스텔라에게 그녀의 과거를 폭로한다. 블랑시는 로렐에서 여러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고, 학교도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의 교제로 인해 내쫓긴 것이었다고.
스탠리 그게 텍사스 석유 재벌에게서 전보가 오기 전이요? 후요?
블랑시 무슨 전보요! 아니! 아니, 나중에! 사실은 전보가 막 그때에······.
스탠리 사실은 전보라는 건 없었지!
블랑시 아, 아!
스탠리 백만장자는 없었다고! 그리고 미치는 장미를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어. 그 친구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고 있거든······.
블랑시 아!
스탠리 당신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 말곤 아무것도 없어!
블랑시 아!
스탠리 거짓말과 공상과 속임수뿐이야!
블랑시 아!스탠리 자신을 좀 봐! 넝마주이한테서 50센트 주고 빌린 낡아 빠진 축제 의상이나 걸치고 있는 꼴을 보라고! 그리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왕관을 쓰고! 어디 여왕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블랑시 아, 하느님······.
블랑시는 환상에 기대어 버티고 있었지만, 스탠리는 블랑시가 만들어 온 환상을 가차 없이 무너뜨린다. 스탠리는 그녀가 받은 전보도, 백만장자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폭로한다. 미치와의 이별과 환상의 붕괴는 블랑시를 망가뜨리고, 스탠리는 정신적으로 망가진 블랑시를 육체적으로도 파괴한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블랑시는 스탠리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고, 스텔라는 스탠리의 결정을 따르며 언니를 외면한다.
블랑시, 그녀의 이상
블랑시의 이상은 '과거'다.
블랑시는 재산을 잃기 전, '벨 리브'에 살며 풍요로웠던 기억과, 남편과 행복하게 지냈던 기억들을 놓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의 자살과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 숨기고 싶은 과거들에 짓눌려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현실과 타협해 빈민가에 사는 스텔라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블랑시는, 결국 행복했던 기억들을 '기억'으로만 유지하지 않고 환상으로 만들어낸다.
이상을 향한 욕망에는 거짓이 필요하다.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면 환상으로라도 마음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상은 실체가 없다. 블랑시에게 실체가 있는 환상이라면 비싼 옷과 치장품, 향이 지독한 향수 뿐. 그렇기에 값비싼 옷과 장신구를 몸에 얹고 끊임없이 거짓말한다. 스탠리, 미치, 그리고 자신의 동생 스텔라에게도.
미치 블랑시, 당신은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블랑시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미치 거짓말, 거짓말, 겉과 속이 모두 거짓말투성이에요.
블랑시 속으로는 절대 안 했어요. 마음속으로는 거짓말 한 적 없어요······.
블랑시는 자신의 거짓을 모르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환상에 속은 게 아니라, 오히려 속기를 바라며 '척'을 하고 있었다. 환상과 현실은 공존할 수 없지만, 환상이 없다면 그녀는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극락에 발을 디딘 블랑시에게는 남편도, 재산도, 직장도, 돌아갈 곳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허영과 거짓이 아니었다면 블랑시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스텔라 역시 블랑시가 환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블랑시의 거짓말이 어디까지이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또한 언니를 사랑하기에, 종종 주변인들에게 언니를 예쁘다고 해 달라고 부탁하고, 주변인들에게 그녀의 나이를 숨기며 맞춰주는 모습을 보인다. 스텔라는 고칠 수 없는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언니의 거짓말, 자신을 향한 스탠리의 폭력과 모욕 속에서도 그를 사랑하며 현재를 유지하려고 한다.
블랑시는 그럴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상을 더욱 갈망하고, 현실과 타협하지 못해 환상을 키워간다.
이상을 위한 욕망, 욕망을 위한 거짓
희곡에서 블랑시는 파멸한다. 이상에 대한 욕망이 환상을 낳고,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을 끝도 없이 만들어내다 스탠리에 의해 무너진다.
욕망을 위한 거짓은 블랑시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모두에게 공통되는 욕망이 있지 않은가. 바로 자신만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이상'에 다가가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시켜줄 '거짓'은 플랫폼이다. 조금 더 구체화시키자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라고 할 수 있겠다.
블랑시의 이상이 '과거'라면 현대인의 이상은 '현재'겠다. 더 나은 외모, 더 화려한 일상, 더 성공한 모습. 타인에게 약점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면 환상이라는 거짓이 필요하다. 플랫폼 속 이미지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턱이 없다. 보여지는 것은 곧 진실이 되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들어진 거짓은 결국 자기를 속이게 된다. 누구나 어떤 경로로든 볼 수 있는 플랫폼인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그렇게 흘러간다.
블랑시의 모습 같나? 다른 점을 찾자면 블랑시는 희곡 안에서, 우리는 플랫폼 안에서 같은 역할을 연기한다. 시대가 달라졌을 뿐, 이상을 향한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나 역시도 여전히 쫓고 있는 것을 보면, 그놈의 이상이 도대체 뭐라고.
이상을 위한 욕망, 욕망을 위한 거짓, 그리고 그 거짓이 불러오는 파멸은 어쩌면 영원히 끊어낼 수 없는 굴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여전히 굴러간다. 내리는 건 각자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