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made this? (누가 만들었는가?)”
이 질문은 예술뿐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과 태도가 바탕이 되는 모든 산물에 적용되는 질문이다.
‘누가’에 집중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창작물에서 ‘누가’에 집중하기로 하는 것은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좋은 음악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살아온 방식, 태도, 생각 등이 응축되어 있다.
어쩌면 ‘당신은 이걸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이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할 때는 '누가'에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좋아하는 걸 넘어 그 '누구'의 사고방식과 태도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살아가며 수많은 이야기와 표현들을 접하고 소비하는 우리는 ‘누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작품 너머 '사람'에 닿는 전시

여기 수많은 '누구'들의 인사이트가 모인 전시가 있다. 전시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는 ‘Who made this?’라는 질문 아래에서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및 크리에이터의 세계관이 한 데 모여 거대한 ‘인사이트 백화점’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결과물이 아닌 그 결과물이 나오게 되기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취향과 방식을 고수해왔는지, 어떤 가치관과 태도를 가지고 세상에 임하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진짜 백화점처럼 내가 원하는, 또는 나에게 맞는 브랜드 또는 창작자의 인사이트를 직접 선택하고 수집하는 것을 통해 ‘나’의 세계관을 아카이빙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세계와 연결되고 싶은지를 선택하고, 그들이 구축해 온 세계에 깊이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무의식 속 내재되어 있던 나의 취향을 발견해 나갈 수 있었다.
전시는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여러 서브 컬쳐 플랫폼의 큐레이션을 음미할 수 있는 ‘FINDER’ 섹션, 음악, 출판, 영화, 패션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수집할 수 있는 ‘COLLECTOR’ 섹션, 마지막으로 여러 아티스트의 아트웍과 앞서 전시를 보며 내 공감을 이끌어 낸 이들의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CUSTOMER’ 섹션까지. 세 개의 섹션을 돌며 총 5개의 포인트 스팟에서 이야기들을 쇼핑하고, 마지막에는 나의 이야기가 담긴 하나의 매거진이 완성된다.
마음을 빼앗은 문장 찾기

여러 이야기가 혼재한 이곳에서 눈에 띄는 문장과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가장 처음 마주하는 ‘서브컬쳐 스트릿’에 전시된 여러 플랫폼의 큐레이션은 그들만의 서사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으로 빼곡했다. 마치 수많은 텍스트와 콘텐츠 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 마음에 꽂히는 텍스트를 발견했을 때의 쾌감은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파고들게 만들었고, 행여 하나라도 놓칠까 글자 하나하나에 더욱 몰입하게 해주었다. 정신없이 그 세계에 빠져들고 마음에 와닿는 플랫폼을 팔로우 하다 보면 어지럽던 텍스트들이 내 기준 아래 확고히 분류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스트릿에서 수집한 ‘데이지 매거진’과 ‘엘르 보이스‘의 ’타이틀곡보다 더 손 가는 수록곡’, ‘내가 아끼며 가꾼 정원을 바라보듯 친구들을 본다’ 이 두 장의 인사이트 페이퍼를 전시가 끝나고도 계속 곱씹었다. 그 글이 좋아서도 있지만, 내가 만약 나만의 브랜드를 만든다면, 이런 가치를 담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살아온 방식이 만들어낸 것들

전시의 두 번째 스팟인 ‘B-SIDE RECORDS’에서는 아티스트와 레코드숍이 직접 선정한 플레이리스트와 음악 큐레이션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열정, 내면, 연대, 위로, 청춘이라는 각 키워드에 맞는 레코드(실제 레코드는 아니다)를 꺼내어 볼 수 있었던 점이 재미를 더했다. 레코드 슬리브에는 아티스트와 해당 아티스트가 큐레이션한 곡, 그리고 간단한 인터뷰가 적혀 있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 혹은 좋아하는 음악의 큐레이션을 본다. 왜 그 노래를 선택했고, 어떤 사연들이 그 노래를 꺼내어 듣게 만들었는가. 흔한 앨범 소개글에서는 볼 수 없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그들이 살아온 방식을 느끼게 해주었다.
원하는 큐레이션이 담긴 레코드판 스티커를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다. 각 키워드 별로 하나의 스티커만 붙일 수 있어서 어떤 음악들이 모여야 가장 나를 잘 나타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정말 많은 레코드를 뒤적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앞선 것과 같은 고민 없이 그냥 마음에 드는 음악들로만 스티커판을 완성했다면 완성된 스티커판을 보았을 때 더 재밌었을 것 같기도 하다.

밴드 페퍼톤스 신재평이 큐레이션한 곡과 그 인터뷰 내용이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인터뷰를 오래 머금었다. 물론, 아티스트가 페퍼톤스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그들을 나아가게 만들었나?

세 번째 ‘TEXT AVENUE’는 마치 북페어에 온 듯한 느낌을 주지만, 단순히 책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그 출판사가 생각하는 문장의 가치와 추구하는 원칙을 각자의 세계로 꾸며진 방과 코너에서 만나 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한 그들의 마음가짐과 출판된 책을 연결 지어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전기가오리’라는 철학 관련 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곳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철학에 깊이 있게 빠져본 적이 없어 그들의 인사이트에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이 코너에 머무는 내내 서브컬쳐 스트릿에서 보았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모두의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서브컬쳐.’ 모두가 철학을 좋아한다는 말도 아니고, 철학이 서브컬쳐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비주류일 수도 있는 분야를 어떤 곳에서는 일상처럼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곳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은 출판사의 북마크를 하나 수집할 수 있었다. 내가 고른 ‘소소사’라는 출판사의 마음이 예뻐서 공유해 본다.
"이해에 대한 갈망. 제게 사랑은 곧 이해입니다. 책을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또 이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출판은 저의 튼튼한 생존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익보다는 행복을 위해 만듭니다. 그 마음에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따라 세계에 스며들기

마지막, 독립영화를 향한 독창적인 시선을 만나 볼 수 있는 ‘REVIEWER’S THEATER’에서는 한 영화에 대한 다각도적인 해석을 만나볼 수 있었다.
패션 스팟인 ‘THE REAL BOUTIQUE’는 의복을 대하는 태도와 그 속의 서사를 발견해나가며 나의 감각을 깨운 감정서를 수집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사실 이 두 영역은 내게는 너무나도 먼 영역이었기 때문에 앞선 스팟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람했던 것 같다. 영화의 경우, 먼저 줄거리를 읽어 보고 꼭 보고 싶은 영화를 하나 선택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리뷰들 중 이후 관람의 기회가 생겼을 때 유념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조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체험했다. ‘잃어버린 외장하드를 찾는 이상한 모험(백승화)’이라는 영화를 고르고 마음에 드는 리뷰 2개를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자꾸 움츠러들고 작아지는 기분이 드는 분이 있다면 같이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윤가은)’, ‘무엇이든 잃어버리지 말고 소중히 잘 챙기자!(윤가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영화를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패션의 경우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담긴 옷을 입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함께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 옷 한 벌에 스며있는 진심 어린 메시지는 옷을 디자인한다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주었다.
"서로 다른 시간의 조각들이 다시 이어져 하나의 형태가 된 옷이다. 완벽하게 맞추지 않아도, 입혀질수록 자연스러워지는 감각을 지향한다."
"빽빽한 무늬 안에는 같은 고생을 해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흐른다. 블랙베리를 수확하듯 지나온 인내의 과정이 이 스웨터의 진짜 무늬다."
가끔 낯선 세계를 만났을 때는, 억지로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보다 작품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흘러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여준 정성에 보답하기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브랜드와 크리에이터의 태도와 맥락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형태의 전시였다. 전시를 나오며 두둑해진 아카이빙 백만큼 넓어진 시야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세계와 연결되고 싶은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하나하나 수집해 나가는 것은, 결국 ‘닮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특정 플랫폼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인사이트 페이퍼를 읽고 또 읽고,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해하고, 그들이 어떻게, 왜 그런 세계관을 구축했는지 알고 싶고. 그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비슷한 사고를 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방식에 한 걸음 가까워지려는 노력이었다. 이 전시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처럼, 우리의 소비는 결국 ‘나’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내가 추구하는 나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쩌면 겉으로 드러난 것들에 가려 지나칠 수도 있었던 많은 이들의 소중한 인사이트를 마주하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작품에 집중하는 동시에,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게 보여준 그들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포스트 서브컬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오는 5월 10일까지 연장 운영한다. 당신은 어떤 세계와, 혹은 누구와 연결되고 싶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