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욱진의 고백 그리고 진심 [미술/전시]

글 입력 2023.11.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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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나 미학, 미술사와 관련한 책들을 펼쳐보면 거의 모든 부분이 서양 예술과 관련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미술 교육체계는 서양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서양 미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동양의 것들보다 강화되어 있다. 동양의 가치 또는 한국의 가치를 찾아 계승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지만 화려하고 창의적인 기법으로 이루어진 서양 작품에 먼저 시선이 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기술과 기교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는 시대 속에서 언젠가는 동양의 가치가 완전히 잊혀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양의 미학과 예술의 가치를 지켜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동양의 유전자를 지닌 한국 사람이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바로 이 공간의 문화와 철학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서양의 문화를 쫒는 것은 그저 환상에 빠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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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양 예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양 고유의 가치는 무엇일까? 답을 찾고자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이 열리는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장욱진의 회고전을 보러 온 관람객으로 붐볐다.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부터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던 장욱진은 (1918~1990)은 우리나라 2세대 서양화가 중 한명이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동양적 정신과 형태가 가미되어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 270여 전 속에 깃든 동양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집중하며 작품들을 감상하고자 했다.


 

 

장욱진의 심플한 삶, 심플한 그림



“나는 심플하다.” 장욱진이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갔을 때 제자들에게 자주 한 말이다. 실제로 그의 삶은 대단히 심플했다. 단순한 삶을 추구했고, 극도로 단순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평생이 심플했던 그의 작품은 한 가지의 색채를 이용하기도 하며 정교한 대상들을 지극히 단순화 시켜 표현한다. 화려한 기교가 담긴 서양의 예술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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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1949, 독

[출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의 작품은 전개도와 같은 평면적인 구도를 활용하여 간결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색채가 화려하지도 않고 정교한 기술이 담기지도 않은 장욱진의 작품이 왜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을까? 그 이유 또한 단순함에 있다. 이 그림들은 초등학생이 그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그림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그릴 수 있는 단순한 그림을 초등학생이 아닌 자가 그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단순한 작품 속에는 단순하지 않은 것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지 않은 것'들은 바로 장욱진의 삶의 고뇌와 노고이다. 그는 창작의 결과에 대해 비참함을 자주 느끼면서 ‘이러다 보니 나의 일에 있어서는 저항의 연속이 아닐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또한 학창 시절 일본인 역사교사에 항의한 사건으로 퇴학처분을 당했으며 전염병을 앓았던 시절에는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확장시켰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장욱진이 무수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일생을 보냈음을 짐작케 한다. 그의 단순함의 표현에는 이러한 노고가 담겨있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작품에도 장욱진의 고민의 흔적이 깃들어 있기에 우리는 이 작품들을 단순하고 평범한 작품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 심플함은 동양 미학의 ‘평담(平淡)’ 사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평담'이란 맑고 고요하며 담백한 정취를 말한다. 평담은 동양 미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지로 여겨지며 보이는 대상을 정교하게 묘사하거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하는 서양의 예술과는 차이점을 보이는 지점이다. 즉 동양 예술에서는 평범해 보이는 묘사로부터 외적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정취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 담담한 그림 속에는 장욱진의 삶 그리고 사유가 함축되어 있다. 평담에 내재된 장욱진의 진심을 읽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꿈 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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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1986, 나무

[출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의 작품들에는 동화적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어린이용 그림책에 나올법 한 색채와 이미지를 그려내는 게 장욱진 그림의 큰 특징이다. 나무, 집, 가족, 까치, 해와 달, 산, 아이 등의 간단하고 향토적인 소재들은 평생 동안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들은 문명이나 도시적이라기 보다는 자연의 이미지와 고향의 정서에 가까운 것들이다. 

 

 

나의 꿈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 위에 집이 있고,

송아지와 개가 있고, 하늘엔 해와 달이 있다.

새해에는 나는 나의 동산에 살며 마냥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81년 그림 [동산]을 그리면서 장욱진이 한 말이다. 생의 말년에 장욱진은 다시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갖는다. 자연으로, 어린 아이로, 순수함으로 회귀한다.

 

장욱진의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그림은 양명학자 이지 이탁오(1527~1602)의 생애 및 사상과도 맞닿는다. 이지 철학의 특징은 세속적인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학문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진리라는 것은 사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절대적인 규범과 진리보다는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질서가 보다 근본적인 이치라는 것이다. 이런 사유에서 ‘동심설’이 등장한다. 

 

동심설은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마음 그 자체가 진리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어린 아이의 마음은 인위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또한 세속적인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려 노력하지 않고 명성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즉 동심설이란 세속적인 가치에 매이지 않는 어린 아이같은 인간의 마음이 긍정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장욱진 또한 남의 평가 보다는 자기 만족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독창적 사유를 담은 그림을 당시 교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장욱진은 연연해 하지 않고 본인의 작품을 묵묵히 이어갔다. 또한 그는 평생 돈 버는 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림을 그려 팔기 보다는 그림을 원하는 사람에게 아무 대가 없이 줘 버리곤 했다. 이런 장욱진의 모습에서 세속적인 가치에 매몰되지 않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엿보인다. 즉 장욱진은 일상 속 가치를 진정 소중한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작품의 핵심 재료로 동화적 요소를 사용한 것이라 생각했다. 

 

일상적이고 단순한 요소들로 표현된 그의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 그리고 그로 인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꼭 화려하고 찬란한 일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일상에서의 예술을 만날 수 있다. 

 

산과 바로 맞닿아 있는 우리 학교 건물 옥상에는 계절 마다 다른 꽃이 피고 지며 자연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아침에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꿈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 그 장면을 묘사할 수 있다면 그 꿈의 재료 또한 예술이 될 수 있다. 매일 집을 나가기 전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는 것 또한 일상 속 작은 예술이다. 일상의 담담함을 아름다움으로 여길 줄 아는 것, 순수하고 맑은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일상을 누릴 줄 아는 것. 이것이야 말로 동양 미학이 강조하고 있는 ‘평담’이지 않을까.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


 

장욱진은 그의 화문집(畵文集) 『강가의 아틀리에』의 서문에서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듯한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기 위해 자기 수양에 열중했던 사람이다. 참된 것, 이 세상의 본질,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그의 고민에는 뼈를 깎는 듯한 노력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그는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라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참된 것’, ‘정직’, 그리고 회고전의 제목인 ‘가장 진지한 고백’ 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예술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투박하고 단순한 그림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가 그의 진심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뼈를 깎는 듯한 노력으로 진심을 다해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은 결국 관객들의 마음에까지 스며들어갈 수 밖에 없다.


결국 동양의 미학에서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참된 정신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가 기준이 된다. 진심을 다해 대상을 접하고 진심으로표현하는 것, 그래서 동양 미학의 핵심은 '진정성'이라 결론 짓고 싶다. 화려한 기술이나 표면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예술가의 정신과 진정한 감정에 소통하는 것이 동양 미학이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임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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