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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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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해 있는 연극 동아리는 작품마다 하고 싶은 팀을 지원할 수 있다. 난 그동안 조명팀, 무대팀, 기획팀을 거쳤고, 마지막으로 남은 팀이 배우팀이었다. 우리 동아리는 2년 동안 활동하고 졸업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4번째 연극이 나의 마지막 연극이었고, 모든 팀을 도전해 봐야겠다는 초심을 다잡으며 배우팀에 지원했다.


배우 합격 소식을 들은 이후 난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처음 겪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했다. 이 글은 생애 첫 연기를 배우면서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진지한 질문에 대해 정리해 본 글이다.

 

 

 

1) 연기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쓰는 것이다


 

이 부질없는 몸뚱아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게 연기라고 생각한다. 배우로 합격하고 본격적인 연습실에 들어가기 전, 워크샵을 진행하며 몸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연출이 제시한 동사를 말없이 오로지 몸동작으로만 표현하는 활동을 했다. 예를 들어 ‘잡다’라는 동사가 있으면 ‘모기를 잡다’로 표현할 수도 있고, ‘헤어지려는 연인을 붙잡다’로 표현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없는 물건과 없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상상하며 자유자재로 몸을 써야 하는 워크샵이었다.


이 활동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몸을 경직되게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그동안 이렇게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앉고, 눕는 것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많은데, 그동안 제한된 범위로만 몸을 쓰다 보니 그 틀을 깨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연기 경험이 있는 친구가 조언하기를 몸을 위, 아래, 좌우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보통 양팔을 펼치거나 이동하는 등 좌우로는 잘 움직였지만, 위아래로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방향의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위해 많이 고민했고, 무엇보다 경직된 몸을 내려놓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연출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몸을 확실하게 쓰라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연습과 다양한 동작을 통해 날뛰어야 하는 밴드 장면을 신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몸의 사용 범위가 넓어진 느낌이다.


나는 마이크 없는 연극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발성 훈련도 철저하게 했다. 복식호흡, 성대 잡지, 공명 등 다양한 방식을 배웠다. 그중에서 연출이 가장 강조한 것은 공명이었는데, 공명을 연습하기 위해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구멍이 하나의 길로 열리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그 상태에서 호흡하는 것처럼 숨을 뱉다가 소리를 얹혀서 내는 것이다. 그 느낌이 익숙해졌다면 정면을 바라보고 고개를 젖힌 상태에서 낸 것과 동일한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면 된다.


처음에는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소리가 뭐가 달라지는 건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훈련을 20~30분만 하면 확실히 소리가 열리는 느낌이 든다. 공명을 써야 소리가 동그란 느낌이 들고,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소리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 이 훈련을 거치면서 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고, 결국 득음을 했다. 다른 것은 자신 없지만 발성만큼은 확실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2) 연기란 집중하는 것이다 


 

연출이 추천해 준 연기 훈련 책이 있었다. 해럴드 거스킨의 [연기하지 않는 연기]였다. 이 책을 통해 연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집중하는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연기는 먼저 내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다. 책의 18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나는 순간의 느낌, 매 순간 내 흥미를 끄는 것에만 의지한 채 인물의 대사에 단순하게 반응하는 위험을 무릅썼다”

 

 

이 책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무언가를 정해놓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가 주는 순간의 느낌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연기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대사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맞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기에는 대사에 집중하는 집중력과 자신의 집중력을 믿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연기를 통해 나는 나를 믿는 자신감을 찾아가야 했다. 대사가 나에게 주는 느낌을 확신하며 표현했을 때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연기이기에 나를 믿고 대사를 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캐릭터를 이해하는 깊이가 깊어질수록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연기는 또한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같은 책의 61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경청은 진짜 반응을 일으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경청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대사를 듣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과 감정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내 대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연기 워크샵 때 ‘마이즈너 레피티션’을 했다. 상대방의 외적인 부분에서 내적인 부분까지 집중하며 몰입하는 연기 훈련이다. 난 이 훈련이 진짜 좋았다. 평소 여러 명과 대화하는 것보다 일대일 대화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이 훈련은 상대방의 깊은 마음속까지 짧은 시간 안에 탐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상대방의 외면에 깊이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내면의 마음이 떠오르는 게 신기했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글은 72페이지에 있었다. 연기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삶의 태도도 배울 수 있었다.

 

 

“아무 결정도 내리지 말 것. 한 번 효과를 본 방법에 매달리지 말라. 독백으로 돌아갈 때마다 탐헐하길 계속하라. 계속 내려놓아라. 그리고 계속 나아가라. 좋은 점들은 다시 돌아오고 효과적이지 않은 점들은 서서히 사라질 것임을 믿어라.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자유롭게 느껴지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연기는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누군가가 되어보는 것은 결코 쉬운 경험이 아니었다. 내가 캐릭터를 망칠까 봐 걱정했고, 대사를 틀리진 않을지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꼼꼼한 대본 분석이나 철저한 배경 조사보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고, 그 집중력은 대사를 외워서 뱉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대사가 따라 나오게 이끌었다. 무대 위에 올라갈 땐 그동안 훈련한 것들이 몸에 익었으리라 확신하며 무대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연기는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게 했다. 나의 경계를 넘어서고, 나에게 주어진 몸을 지혜롭게 쓰는 법을 알려주었으며 나를 믿고 다른 사람을 경청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나는 차기작 없는(..) 명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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