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이 고전을 이제야 제대로 읽어보다니... 조각조각 알고 있던 이야기를 한 호흡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좋았다. 고민할 거리가 아주 많은 책이라서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의 흐름은 단순한 것 같이 보인다.
1. 어린 싱클레어.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의 구분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선한 세계에서 점점 악의 세계로 빠지는 자신을 경계하면서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순서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우월해 보이기까지 한다.
2. 데미안과의 만남. 데미안은 그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 같다. 계속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분신이다. 즉, 싱클레어가 속해야 하는 세계는 선의 세계도 악의 세계도 아닌 자기 자신의 세계에 속해야 하는 것이다.
3. 베아트리체와 에바 부인. 이들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데, 이젠 타자로 확장되어 등장한다. 이젠 세계와 관계 맺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베아트리체는 선의 인물이다. 아름답고 순결한 존재. 사춘기의 아이가 꿈꾸는 이상향의 여성이다. 하지만 에바 부인은 선의 모습도 악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마치 데미안처럼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은 인물이며, 싱클레어에게 사랑을 가르쳐준다.
4.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아프락사스를 동경하는 그의 스승이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제자와 스승은 갈라져야 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5. 알을 깨고 나오는 것. 전쟁이 다가와 싱클레어는 죽는다. 그러나 죽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즉, 데미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더 요약해서 정리하면, 선과 악의 세계가 아닌 자기 자신의 세계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 세계는 바꿀 수 없는 운명에 가깝다. 또한, 지극히 비개인적인 세계이며 타자, 세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계이다.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 얼마나 필연적이면서도 동시에 고통스러운 여정인지를 보여준다. 싱클레어가 거쳐 온 수많은 만남들—데미안, 베아트리체, 에바 부인, 피스토리우스—은 모두 싱클레어를 비추는 하나의 거대한 ‘거울’ 역할을 하며, 그를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로 인도한다. 각 인물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싱클레어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도록 돕는 상징적 존재다.
나는 다시 내 본질 속에 있었다. 그러나 숭배하는 모습의 노예와 하인으로서. 139p.
당신은 당신 자신이 믿고 있지 않은 소망에 몸을 맡기지 마십시오. 262p.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은 이러하다. 싱클레어의 생활도 그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선의 세계, 크로머의 악의 세계, 드디어 만난 데미안의 세계. 데미안의 세계에 온전히 속하지 않았을 때, 즉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지 않았을 때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따르는 위치였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 우린 자기 자신의 꿈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을 따라가며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 착각한다. 믿지도 않는 소망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인생을 맡긴다. 다른 사람들의 흐름 속에, 세계의 대류 속에 휩쓸려간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서로를 향해서 도망하는 거야. 상층계급은 상층계급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학자는 학자끼리! 그런데 왜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일치할 수 없을 때만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들은 한 번도 자기 스스로를 신봉하지 않았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239p.
또한,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도 못한다. 물론 싱클레어 자신도 고독 속에 있던 순간이 많았지만, 그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꿰뚫어 볼 줄 알았다. 이 문장에 나온 모습은 현대 우리와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같은 부류의 사람들, 나와 맞는 MBTI를 가진 사람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 떠난다.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의 알고리즘도 마찬가지이다. ‘다름’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이다. 우리는 편안한 곳으로 도망칠 뿐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알려는 노력조차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속에 있는 것, 너의 생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 우리의 내부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이 하는 것보다 더 잘하는 무엇이 하나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야. 150p.
이런 우리에게 데미안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자기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되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리고 데미안이 말하는 자기 자신의 세계는 절대로 세상과 분리된 세계가 아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보다도 단순하고 쉽게 우리가 창조자라는 것을 발견했고, 우리의 영혼이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얼마나 부단하게 참여하고 있는가를 발견했다. 우리의 내부에 있는 신과 자연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은 동일한 불가분의 신이었다. 183p.
언제나 나 자신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조금 살아볼 것을, 또 나의 내부로부터 무엇을 꺼내서 세계에 줄 것을,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투쟁 속에 들어갈 것을 몹시 갈망하게 되었다. 169p.
데미안이 말하는 자기만의 세계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창조자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 즉 세계를 바꾼다는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 우리의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신과 세상의 흐름을 주관하는 신이 같은 존재이기에, 우리의 존재는 세계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내부의 분투 목적은 결국 세계에 무엇을 꺼내어줄 것이냐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은 세계와 분리할 수 없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결국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을 타자(데미안)와 시작했던 것도 결국 자기 자신만의 세계는 타자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 세계는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세계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158p.
결국 데미안은 독자에게 묻는다. “너는 너의 알을 깰 준비가 되었는가?” 그 알은 타인이 규정한 정체성일 수도, 사회가 부여한 역할일 수도,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의 껍질일 수도 있다. 그것을 깨는 일은 고통스럽고 때로는 파괴적이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진정한 창조자로서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결코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이미 그 세계의 일부이며, 동시에 그 세계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