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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위험할까?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이 위험할까, 슬픔을 억누르는 것이 위험할까?

 

켈리 반힐 작가의 『달빛 마신 소녀』에는 슬픈 상황에도 슬퍼하지 않으려 하는 마녀와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품 속 주요 배경은 ‘보호령’으로, 이곳에는 슬픈 상황에도 울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마녀에게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막 태어난 아기를 제물로 바친다.

 

 

 

1. 우울에 잠식된 마을


 

인상 깊었던 점은 아기가 산 제물로 바쳐짐에도 울지 않는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었다. 보호령은 슬픔에 잠식된 마을이다. 모든 사람이 우울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슬픔에 무뎌진 채 살아간다. 사람이 슬픔에 잠식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저 받아들인다.

 

그들은 슬픈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공공의 적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미움을 퍼붓는다. 아주 잠깐은 그러한 행동이 불러온 착각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 저항할 힘을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령 사람들은 그 누구도 마을의 상황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

 

이들은 왜 슬픔을 멀리했을까?

 

보호령에 사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루나’를 키운 마녀 ‘잰’도 슬픔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잰은 루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법을 봉인하고 기억을 감췄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잰에게 더 큰 슬픔을 가져왔다.

 

슬픔은 추상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슬픔을 못 이겨 우는 사람을 볼 수 있고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만질 수 있다.

 

잰은 슬픔을 받아들이면 자신에게 큰 고통이 올 것으로 생각해 슬픔을 멀리했다. 보호령의 사람들은 마녀 ‘이그나시아’의 계략이 원인이긴 했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보다 ‘마녀’라는 존재의 두려움이 더 컸기에 슬픔을 멀리했다. 결국 이들 모두 슬픔을 멀리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있어 옳은 방향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2. 슬픔에 저항할 힘


 

슬픔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저항할 힘이 생긴다. 나는 그것이 희망이라고 보았다.

 

이그나시아의 힘을 누를 수 있던 것은 이그나시아보다 더 큰 마법도 아니고 거인 같은 몸도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희망이었다.

 

세상에 저항할 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엿보았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루나를 잃고 미친 여자라 불린 ‘아다라’는 보호령에서 처음 희망을 품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딸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하나로 탑 위에서 삶을 연명했다.

 

그러한 생각은 아다라에게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보호령 사람들에게 ‘광기’라 불렸던 아다라의 슬픔은 이그나시아의 밥이 되었지만 슬픔 뒤 떠오르는 희망은 이그나시아를 굶주리게 했다. 『달빛 마신 소녀』는 감정, 특히 ‘슬픔’에 관한 서술이 많아 슬픔과 저항, 희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슬픔’과 마찬가지로 ‘마법’ 또한 중요 키워드로 등장한다. 마녀와 드래곤, 괴물이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판타지 장르의 세계관이지만 작품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누구나 겪을 만한 감정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3. 딸을 향한 사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루나의 엄마, ‘아다라’였다.

 

그녀는 딸을 잃고 몇십 년간 탑에 갇혀 살다가 딸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마법까지 부릴 수 있게 된 인물이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마법의 근원은 ‘사랑’이 아닐지 생각했다.

 

아다라는 딸의 이름도 모른 채 살아왔다. 이름도, 나이도, 남편도 잃어버린 아다라에게 남은 건 딸을 향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물로 바쳐진 루나가 마법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루나를 향한 잰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결말부에서 아다라가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루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딸을 향한 엄마의 사랑에서부터 할머니의 사랑, 다시 엄마를 향한 딸의 사랑, 할머니를 향한 손녀의 사랑까지.

 

슬픔에 가려진 사랑의 형태가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드러나는 것 같아 무척 흥미로웠다.


『달빛 마신 소녀』를 통해 슬픔과 사랑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저항하는 힘, 저항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힘,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힘.


마녀나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힘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김예은 컬쳐리스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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