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 청소년의 성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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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사생활』은 여성 청소년의 성생활에 관한 소설이다. 자위와 키스, 섹스 등 여고생들이 접할 수 있는 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등학생 ‘사과’는 그녀의 친한 친구 ‘연서’, ‘시온’과 함께 종종 자위와 키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중 ‘연서’는 자위도, 키스도 둘보다 더 빨리 접하는 친구로, ‘사과’는 그런 친구를 보며 잘 몰랐던 새로운 개념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 『사과의 사생활』에서는 그동안 어른들이 숨겨왔던 청소년의 성욕과 그것을 해소하려 고군분투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1. 청소년 성교육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교육은 임신하는 과정, 출산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 교육이었다. 여성의 자위법이나 오르가슴, 여성의 성욕과 해소에 대해 다루는 교육은 없었다. 성교육을 제대로 접한 건 대학교 교양 수업이 처음이었다. 한 살에서부터 스무 살까지, 나는 학교 내에서 나에게 정보를 주는 성교육을 배우지 못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성욕에 대해 잘 모르고 여성 본인조차도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혹여 인지하더라도 큰 죄책감이나 창피한 감정이 들어 숨기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과의 사생활』은 청소년 성교육의 문제점을 잘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청소년, 특히 성에 관련된 청소년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자위’, ‘섹스’, ‘오르가슴’, ‘딜도’, ‘클리토스’ 등 여러 단어를 언급한 점이 신선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청소년기에 이러한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또 그러한 뉘앙스라도 풍긴다면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 또한 굉장히 부적절한 말을 한 것처럼 나무란다. 하지만 소설에서 이러한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진행함으로써, 이 단어의 정의를 곡해하지 않는 게 인상 깊었다.
2. 여성 청소년의 성 – 성욕과 해소
누구나 성욕을 가지고 있고 성장함에 따라 그것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남성 청소년의 성욕과 해소를 여성 청소년의 성욕과 해소보다 관대적으로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성교육에서 다루는 성욕과 해소는 남성 청소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여성 청소년의 성욕과 자위 방법, 성욕 해소 방법을 가르치는 성교육은 있다 하더라도 그 수가 많지 않을 것이다.
『사과의 사생활』은 성 관념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성교육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여성 청소년은 어떻게 성을 대해야 할 것인가? 나도 청소년기를 겪어온 여성이지만 막상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성교육은 임신의 과정과 출산의 과정을 겉핥기식으로 배우는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욕망을 해소하고자 하는 중심인물 ‘사과’의 모습이 내겐 무척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는 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성에 대해 잘 모르기를 원한다. 알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그들이 가르치는 성교육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사과‘는 친구들과 함께 자위도구를 사고 그것으로 모자라 성인용품 사이트에서 클리토스를 자극하는 진동기기를 구매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나 또한 편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편협한 시선을 틀어 청소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과의 사생활』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과’가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성인용품 사이트에서 자위도구를 사는 건 그 아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책에서도 그 모습이 절대 잘못되었다고 서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 속 성인용품의 직원은 ‘사과’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미성년자가 성인용품을 사는 건 불법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상황은 없지만 잘못된 것처럼 청소년을 몰아가는 사회의 모습. 『사과의 사생활』은 우리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에 대해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3. 주인공 ‘사과’ – 여성 해방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바로 중심인물 ‘사과’이다.‘사과’의 모습을 보며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청소년 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과의 사생활』은 그 주제도 좋았지만 여기서 흘러가는 이야기 또한 시사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사과’는 남자 친구와 키스한 후 섹스를 거부한다. 그리고 섹스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고 여러 아이와 선생님에게 모욕 어린 시선을 받는다. 요즘에는 성관계를 거절했다고 이별을 고했다고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혐오 섞인 말이나 폭력을 받는 여성 혐오 피해가 정말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제를 청소년 소설 내에서도 드러내는 게 기억에 남았다.
성관계를 거절한 건 잘못한 일이 아닌데 그것을 잘못한 일처럼 몰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이 상황에서 ‘사과’는 전 남자 친구로부터 물러나지 않는다. ‘사과’는 성관계를 하지 않은 사실도, 자위기구를 사 자위한 사실도, 남자 친구와 키스한 사실도 다 탄로 난다. 하지만 선생님의 손에 끌려 나간 사람은 이 사실을 멋대로 남들과 공유한 전 남자 친구가 아닌 ‘사과’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과’는 ‘연서’, ‘시온’과 함께 이 싸움에서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나를 꼭 붙잡은 채 버티고 있는 두 친구의 체온을 느끼며 뭐가 됐든 이 싸움에서 절대 이기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 조우리, 『사과의 사생활』, (위즈덤하우스, 2023), 162쪽.
마지막 장면에서 ‘사과’와 ‘연서’, ‘시온’이 함께 손을 맞잡는 장면은 연대를 의미한다. 청소년의 연대, 여성 청소년의 연대, 여성의 연대. ‘사과’의 굳건 다짐 아래 그 아이와 함께 선 다른 여성 청소년의 모습을 조명하는 게 좋았다. 무엇이 잘못된 줄 모른 채로 잘못되었다고 규정당한 청소년이 끝까지 싸우리라 하는 모습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4. 마지막으로...
『사과의 사생활』은 어른이 아닌 청소년이 다루는 성을 이야기해주는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에서의 연대, 그것을 보여주는 캐릭터성, 그리고 우리가 외면해온 청소년의 모습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청소년 소설은 성인에게도 많은 생각을 시사하게 한다는 점이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과의 사생활』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책일 듯 싶다.
[김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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