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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계절감을 느끼며 사는 것을 좋아한다. 봄이면 한 번은 꽃놀이를 가고, 여름이면 물놀이를 가는 것. 그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겨 먹고, 그 날씨를 푹 즐기는 것.


계절에 맞는 노래를 듣는 것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오월은 유독 노래 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오월'이라는 단어만으로 상징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품은 노랫말들을 직접 느껴보기로 한다.

 

 

 

 

 

장기하, '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린

오늘 마침내

오월이

오랜만에 우리 집 현관문을

탁탁탁탁 두드리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더 좋아했지만, 솔로 가수 장기하의 음악도 좋다. 능청스럽게 굴다가도 툭, 내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느낌이 든다.

 

'다'는 2022년 발매된 미니 앨범 [공중부양]의 수록곡이다. 적당히 따스하고 선선한 햇살과 파란 하늘은 오월의 전유물이다. 그래서인지 5월 1일이 되면 <중경삼림>의 파인애플 통조림 말고도, 장기하의 팬들은 '다'를 떠올리곤 한다.

 

초록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긴 겨울과 봄이 지나고 "마침내" 찾아온 오월이 반가울 것이다. "오늘-오월-오랜만에", "탁탁탁탁"과 같은 운율이 몽환적인 리듬을 더욱 살려준다. 이 노래로 오월의 시작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겠다.

 

 

 

 

 

잔나비, '초록을거머쥔우리는'



 

오월 하늘엔 휘파람이 분대요

눈여겨둔 볕에 누우면

팔베개도 스르르르

 

 

오월과 초록을 이야기하려면 빠질 수 없는 곡이다.

 

콘서트에서 이 곡의 순서가 되면 공연장 안에 초록빛 조명이 가득 깔리는데, 초록에 잠겨있는 듯한 그 순간이 참 좋다.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은 2022년 발매된 미니 앨범 [잔나비 소곡집 ll]의 타이틀곡이다. 앨범 커버와도 잘 어울리는 산뜻한 분위기의 노래다.

 

이 노래에서도 오월 특유의 하늘과 볕, "스르르르" 같은 말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늘에 휘파람이 분다는 표현도 인상적이다. 노래에서 꼭 풀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날씨가 좋은 오월 어느 오후에 산책을 한다면 재생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곡이다.

 

 

 

 

 

김범수, '오월의 겨울'


  

 

바람이 흐느껴 울던

겨울은 한참

멀어진 것 같은데

길가에 흐드러진

봄의 향기를 담은

꽃들마저도

나는 느낄 수가 없네

 

 

젊고 푸르고 밝은 기운만 가득한 달 같다가도, 그것이 광주의 오월이 되면 느끼는 바가 다르다.

 

드라마 <오월의 청춘>(2021)에서 가장 좋아했던 OST는 김범수가 부른 '오월의 겨울'이었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김범수의 보컬만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극 중 '희태(이도현)'의 시간과 감정을 더 깊이 느끼게 해준다.

 

오월과 겨울은 언뜻 모순적인 조합 같지만, 향기를 느끼지 못하며 화창한 오월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그 계절은 곧 겨울일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시린 봄이 조금은 다시 따스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언니네 이발관, '100년 동안의 진심' & 너드커넥션, '좋은 밤 좋은 꿈'


 

 

오월의 향기인 줄만 알았는데

넌 시월의 그리움이었어

슬픈 이야기로 남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네


 

시월의 서늘한 공기 속에도

장미향을 난 느낄 수가 있죠

오월 어느 날에 피었던

빨갛던 밤을 기억하거든요

 

 

왜 오월은 유독 시월과 함께 묶여 이야기되는지가 오래 궁금했다.

 

피천득의 시 <오월>에도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중략)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한다.

 

2008년 발매된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수록곡 '100년 동안의 진심'과, 2020년 발매된 너드커넥션 싱글 '좋은 밤 좋은 꿈'도 마찬가지다.

 

오월과 시월을 비교하는 작품들에서 '시월'은 대개 그리움, 슬픔, 서늘함, 쓸쓸함 등으로 그려지고 '오월'은 그 대립점에 서 있는 향기로운 과거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반발심이 든다. 시월의 들꽃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는 없는가?

 

하지만 오월을 지날 때 이런 노래를 들으며 지금 이 귀한 시간을 꼭꼭 삼켜보는 것도 좋다.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이 낮에 어울렸다면, 이 두 노래를 연달아 듣는 것은 밤 산책을 할 때 빠지면 아쉬운 루틴이다.


당신의 오늘이 맑은 색이든 탁한 빛이든 다 좋다. 좋은 음악과 함께, 저마다 다채로운 것을 품고 사는 오월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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