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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스마트폰이 손에 익은 도구가 되고, 메신저와 SNS가 일상의 기본값이 된 요즘 —우리는 텍스트 속에 자연스럽게 작은 그림들을 함께 넣는다. 바로 ‘이모지(Emogi)’다. 일상 속의 여러 개념들을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모지는 그 간편함을 강점으로 하여 빠르게 활용도를 높였고 이제 이모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만국 공통어가 되었다. 누군가의 말에 덧붙여진 노란 웃는 얼굴 하나, 하트 하나, 혹은 울고 있는 얼굴 하나가 분위기를 바꾸고, 오해를 줄이며, 진심을 더 잘 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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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21년 7월 어도비가 발표한 ‘글로벌 이모지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약 3분의 2가 이모지를 활용한 소통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디지털 속 의사소통 환경에서 이모지는 귀여운 감정을 싣기도 하며  화자의 말에 표현력을 더해주는 가장 핫한 언어가 된 셈이다.

 

예전 세대에게는 ^^’나 ‘ㅠㅠ’ 같은 기호들이 더욱 익숙할지도 모른다. 이것들은 ‘이모티콘(Emoticon)’이라고 부른다. emotion과 icon의 합성어인 이모티콘은 개별적인 기호를 조합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문자로 그려낸 감정이다.  반면 ‘이모지(Emogi)’는 개인이 지시하는 바를 하나의 단일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경제적인 그림 문자이다.


즉, 하나의 그림 문자인 이모지는 뚜렷한 언어의 기능을 가진다. 누구라도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기존의 이모티콘보다 더욱 확실한 개념을 전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모지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한 문자 그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쐐기 문자, 상형 문자등을 발명한 과거 인류처럼,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언어로 이모지를 만들어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모지를 쓰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한국의 한복이나 중국의 치파오는 없지만, 일본의 전통 의복인 기모노는 들어가 있고 일본의 전통 인형과 잉어 모양 깃발 고이노보리 (鯉のぼり) 같은 일본 전통 문화 요소들이 유독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모지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현대적인 이모지의 형태는 1999년 쿠리타 시게타가가 일본의 통신사 NTT 도코모를 위해 개발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모지’라는 이름 또한 ‘그림문자’라는 의미의 일본어 단어인 ‘絵文字(에모지)’의 발음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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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이모지는 지금과는 달리 많이 단순했고 도합하여 176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수의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2011년 애플이 IOS 5부터 이모지 키보드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다시금 새로운 디지털 공용언어를 갖게 되었다.

 

모지는 해마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다. 불과 2016년까지만 해도 이모지 키보드에는 여자 경찰도, 남자 미용사도 없었다. 구글은 성 평등을 위해 유니코드 이모지 위원회에 새로운 이모지를 제안했고 이후 애플 또한 Gender Neutral Emogi를 제안하면서 우리는 이제 성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다양한 이모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단지 성별 표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엔 사람 모양의 캐릭터가 하나의 피부색으로만 표현됐지만, 이제는 다섯 가지 피부색 중 선택이 가능하다. 동성 커플, 의수를 단 로봇,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의 모습까지 이모지는 점점 더 다양한 존재와 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 시기엔 바이러스, 주사기 같은 이모지의 사용이 급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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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모지는 그저 귀여운 그림 문자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작은 거울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모지를 들여다본다면 우리 시대가 어느 지점에 와닿았는지, 무엇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보통 이모지는 유니코드 를 통해 표준화되지만, 웹 브라우저나 디바이스 등 플랫폼에 따라 조금씩 다른 디자인을 차용한다. 애플, 구글, 삼성, 페이스북 등 주요 브랜드들은 각자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 이모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예를 들어, 애플은 상대적으로 사실적인 이모지를 선보인다. 이는 초기 제품 디자인에서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즉 현실의 질감을 그대로 구현하려 했던 방식을 따르는 것으로, 애플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반면 트위터(현 X)가 제공하는 ‘Twemoji’는 입체감을 없애고 평면적인 디자인을 채택해 보다 귀엽고 단순한 인상을 준다. 같은 이모지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전달되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진다.


삼성은 2015년부터 자체 이모지 세트인 ‘Emoji Suite’를 도입하며, 감정의 세밀한 표현에 집중했다. 웃는 얼굴엔 눈을 더 크게 그려 활기를 강조하고, 불안한 표정에는 땀방울을 크게 표현하는 식이다.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이 보다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가 2022년 ‘토스페이스’를 발표하며 3600개의 이모지를 공개하고 무료 배포했다. 토스는 이를 통해 ‘금융’이라는 개념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시각 언어로 전달하고자 했다. ‘토스페이스’ 이모지는 최소한의 묘사에 집중하며, 동일한 형태의 기본 도형만을 사용해 직관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했다. 또, 고객들의 시선의 흐름을 고려하여 모든 이모지가 오른쪽을 바라보게 설계된 점도 인상적이다.


이처럼 이모지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정체성까지 담아내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어떤 이모지를 어떻게 그리는지는 결국, 그 브랜드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힌트가 된다.

 

오늘날의 텍스트 소통은 단순한 ‘글쓰기’의 차원을 넘어서, 마치 얼굴을 마주한 대화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행위가 되었다. 온라인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진 지금, 이모지는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 상태를 표현하거나, 특유의 말투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일까. 이모지는 삭막하고 건조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위트 있는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매년 새로운 이모지가 발표되는 이유도, 우리 일상의 변화와 감정의 결을 더 풍부하게 담아내기 위함일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이모지들이 탄생할까, 그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듯 하다.


오늘 밤, 오랜만에 친한 친구에게 이모지 하나 덧붙인 따뜻한 메시지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말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애정이, 작은 그림 하나에 담겨 전해질지도 모른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박유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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