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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다양한 과일의 비닐하우스 재배가 만연해진 시대다. 그 결과, 제철 과일의 의미가 예전보다 다소 흐려진 듯하다. 이냉치냉을 즐기고 싶다면 차디찬 겨울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수박을 먹을 수도 있고, 푹푹 찌는 여름날 귤의 상큼함으로 더위를 달랠 수도 있다. 이런 복을 누리고 있자면 현대의 기술의 발전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의 소중함은 유한함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고, 끝이 있는 아름다움이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왠지 모르게 비닐하우스의 온화한 환경에서 자란 과일보다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자란 수박의 과육이 더 쨍쨍한 당분을 품고 있는 것 같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뎌낸 귤이 더욱 기운을 북돋아 주는 듯하다. 1년을 애태우듯 꼬박 기다려 맛보는 제철 과일이야말로 계절의 정취를 온전히 느끼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실하면 바늘, 로미오 하면 줄리엣, 콩쥐 하면 팥쥐처럼, 나에게 있어 ‘봄‘하면, ’딸기’가 떠오른다.

 

요즘은 ‘겨울딸기’라는 말도 익숙해졌고, 카페만 가 보아도 한겨울인 12월부터 딸기를 활용한 다양한 디저트를 쉽게 볼 수 있다. 겨울 딸기의 달콤함도 무척이나 흐뭇하지만, 딸기의 향긋함은 봄바람과 함께 불어온다고 믿는 나이기에, 알게 모르게 봄딸기를 조금 더 편애하게 된다.


겨울 딸기에게 미안한 마음에… 구차한 변명을 덧붙이자면, 매년 딸기케이크와 보낸 봄의 생일을 탓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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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을 크게 챙기는 가족은 아니지만, 부모님은 매년 내 생일에 딸기 케이크 한 상자를 잊지 않고 선물해 주셨다. 덕분에 그날의 딸기 케이크는 늘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올해는 ‘어떤 딸기 케이크를 받고 싶냐’는 엄마의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중, (아마도 작년 겨울이 유난히 혹독했기 때문일까) 스물셋의 봄은 조금 색다르게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께 ‘올해는 딸기 케이크를 받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뒤, 대신 직접 딸기를 따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딸기 데이’가 찾아왔고, 화창한 햇빛 아래 들뜬 마음으로 본가 근처의 소도시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여러 개의 딸기밭이 줄지어 있는 농가 근처에 들어서자마자, 새콤달콤한 딸기 향에 저절로 ‘우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평소 감정 변화를 크게 드러내지 않는 엄마도 봄딸기의 향기에 취한 듯 들떠 보이셨다.

 

주인 아주머니께 받은 투명한 박스를 하나씩 들고 딸기밭으로 들어서자 더욱 큰 감탄이 나왔다. 한 꼭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딸기를 보며 홀린 듯 손을 뻗어 딸기를 똑 따서 입에 넣었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설 익은 초록빛 딸기였지만, 그 싱그러움이 그날따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작고 흰 딸기 꽃, 초록의 풋풋함이 가시지 않은 딸기, 체험객의 실수로 떨어져 뭉개져 버린 딸기 … 정말 다양한 딸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와 서로의 입에 넣어주면서 맛보고, 딸기의 붉은 빛깔을 눈으로 맛보면서 한바탕 딸기를 만끽했다.

 

열심히 딸기를 따면서 배가 부를 만큼 맛보고, 상자가 넘칠 만큼 딸기를 담고 나서야 우리는 딸기 밭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상자 가득한 딸기향이 차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우리의 딸기 체험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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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WOODZ (조승연)가 만든 하나의 유행이 있다. 바로 ‘굳이 데이’이다.

 

‘굳이 데이’란 한 달에 하루를 정해서 “굳이?”라는 말이 나올 만한 일을 하나씩 실천하는 날이다. 예를 들어, 조개 구이가 먹고 싶다면 동네의 해산물 식당에 가도 되지만 ‘굳이’ 인천까지 가서 바다를 보며 조개 구이를 즐기고 오는 것이다. WOODZ는 “귀찮음을 감수할수록 낭만은 커지는 법!” 이라며 굳이 데이를 소개한다.

 

집 근처의 식당에서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충분히 맛 좋은 조개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의 귀찮음을 감수하고 떠난 인천에서의 조개구이는 상상만 해도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조개를 잘 굽는 식당을 찾아 헤매는 그 모든 과정이 조개 구이를 더욱 오래 음미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바닷가의 향이 푸른 기억 구슬이 되어 마음 속에 또 하나의 ‘낭만’을 저장하게 된다.

 

점점 더 효율을 추구하게 되는 팍팍한 삶 속에서, “정말 굳이?” 라는 생각에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굳이 먼 곳까지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평소 시켜보지 않던 음료를 한 잔 도전해보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위한 꽃 한송이를 사거나, 벤치에 가만히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작은 여유도 충분히 ‘굳이 데이’가 될 수 있다. 당신만의 ‘굳이 데이’에 이 계절을 담뿍 누릴 낭만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

 

우리 집 근처에는 유명한 베이커리가 있다. 최근 신세계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 정도로 인기가 많아진 곳으로, 딸기 한 상자를 가득 넣은 딸기 케이크로 유명하다. 사실 평소처럼 그 곳에서 손 쉽게 맛있는 딸기 케이크를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의 귀찮음을 감수하고서 나선 들뜬 발걸음의 딸기밭은 매년 봄이 돌아올 때마다 잊지 못할 것 같다.

 

올해 봄의 낭만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봄 딸기를 더 편애할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올해 봄은 달큰한 딸기의 향을 머금은 붉은 기억 구슬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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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박유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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