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와 클래식의 시너지 - 쇼팽, 블루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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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잘 어울리는 (클래식) 작곡가’ 하면 슈베르트가 떠올랐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어떤 공연을 관람한 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여전히 슈베르트가 1위이긴 하지만, 2위가 생겼다. 바로 쇼팽이다.
평소 쇼팽은 가을과 잘 어울리는 작곡가라고 생각했다. 그의 음악들은 가을의 공기, 분위기, 색감과 닮았다. (들어본 곡 중) 가로등에 비친 눈 내린 겨울밤과 닮은 녹턴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그렇게 느껴졌다.
더구나 쇼팽의 곡이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그 공연을 본 후, 다시 생각해 보니 쇼팽의 매력인 고결함, 섬세함, 따스함은 크리스마스와 어울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만난 그 공연은 ‘산울림 편지 콘서트 – 쇼팽, 블루노트’였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와 연극을 결합한 공연이었다. 보통 클래식 공연에서는 해설자가 곡의 배경이나 특징, 작곡가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 해설을 연극으로 표현했다고 보면 된다.
알고 보니 산울림의 편지 콘서트는 2013년부터 해마다 소극장 산울림에서 열렸던 시리즈 공연이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만, 슈베르트,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등 작곡가의 내면과 삶을 편지 낭독과 배우들의 연기로 그려냈다. 그리고 피아노, 현악 4중주, 플루트 등 클래식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며 음악을 더욱 깊이 있게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발레, 성악 등이 추가된 공연으로 소극장의 한계를 극복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 공연에는 쇼팽의 삶과 사랑, 편지를 담았다. 쇼팽 역은 류영빈, 조르주 상드 역은 이다해가 맡았으며, 피아니스트 히로타슌지와 피오트르 쿠프카의 라이브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내가 관람한 날에는 히로타슌지의 피아노 연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쇼팽의 대표곡 위주로 9곡을 연주했으며, 연극은 쇼팽의 삶에서 중요한 시기 위주로 진행되었다.
이 공연처럼, 최근 들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장르가 협업한 공연을 만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장르 공연은 이래야지!’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이 기점으로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면서 한 뼘 더 성장했다. 문화예술로써의 성장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만큼 두 장르가 만난 공연이라는 점에서 호기심과 기대감이 훅 올라갔다. 더구나 크리스마스에 볼 수 있다니, 마치 선물을 받은 듯했다.
기대와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과연 이번에도 두 장르의 만남은 성공적이었을까. 이번에도 시너지가 일어났을까?
ⓒ김수경
극이 시작되자, 쇼팽은 피아노 연주를 하며 독백한다.
“뭔가 괴로울 때, 난 친구에게 말하듯 피아노에게 말을 겁니다.”
첫 장면에 나온 쇼팽의 대사는 강했다. 첫 장면에서 임팩트 있게 나온 이유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극이 결말에 다다랐을 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쇼팽은 내가 알고 있는 정도보다 더 많이, 섬세한 인물이었다. 여기에 고결함과 따스한 매력까지 갖춘 작곡가였다. 몸은 병약한 데다 순수한 면모로 인해 겉보기에는 여리게 보이지만, 내면은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족을 두고 프랑스에 와서 혼자만 잘 살고 있다는 죄책감, 직업적인 스트레스, 아픈 몸까지 고통스러웠다. 삶을 포기하거나 불평불만만 하고, 의욕 없이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작곡했고, 피아노에게 말을 걸며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인지 공연의 중간부터는 그의 곡에서 내면의 힘이 보였다.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게 서툴고, 괴로울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피아노에게 기댔다. 그의 방식은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결점이 되었다.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는 쇼팽과 정반대 성향의 여인이었다. 자녀를 두고 있고, 사랑의 실패도 겪었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시끌벅적한 곳을 좋아했다. 그녀는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했다. 그녀의 성향을 당시 사람들도 잘 알고 있어서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얼마 안 가 헤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쇼팽은 조르주 상드와 9년 동안이나 사랑을 이어왔고, 그녀의 자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인간관계라는 게 항상 잔잔하지만은 않듯,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고비가 찾아왔다. 조르주 상드는 병간호만 하며 자유롭지 않은 삶에 지쳐갔다. 더구나 피아노하고만 대화하고, 감정표현을 하더라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하는 그의 방식에 갈증을 느꼈다. 그러다 조르주 상드는 딸과 연을 끊었는데 쇼팽은 딸과 왕래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그 사건으로 그동안 곪아있던 게 터지면서 결국 갈등이 일어나고 서로 자기방어만 하다가 해결하지 못하고 이별을 선택하고야 만다.
반면 쇼팽은 조르주 상드만 보고, 그녀를 따라 마요르카의 발데모사에 왔다. 물론 쇼팽도 그 마을에서의 생활에 만족해했다. 하지만 자신과 너무 다른 성향의 조르주 상드 때문에 힘들어했다. 친구들을 불러 시끌벅적하게 노는 걸 싫어했고, 자신과의 시간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그녀를 보면서 서운함을 느꼈던 듯하다. 쇼팽은 조르주 상드의 자녀들도 사랑했는데, 특히 조르주 상드의 관심과 인정에 목말라 있던 그녀의 딸을 매우 아꼈다. 그녀가 딸과 연을 끊었음에도 계속 왕래를 한 이유는 조르주 상드를 사랑한 만큼, 그녀의 자녀를 친아빠처럼 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조르주 상드는 헤아리지 않았다.
외로움과 서운함이 쌓이고 오해는 자라나지만, 두 사람은 속내를 드러낸 대화를 하지 않았다. 대화의 부재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감정의 골은 한 사건에 의해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했다. 이때 싸우더라도 회피하는 말로 자기방어를 하지 않고, 자존심에 서로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결말은 달랐을 수 있다. 서로 자기방어와 공격만 하다가 결국 이별을 맞이했고, 그 후 쇼팽은 건강이 악화하여 39세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김수경
두 사람의 감정선은 매끄럽고, 섬세하게 드러났다. 맨 앞자리에 앉은 덕에 배우들의 표정, 눈빛, 몸짓이 잘 보여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됐다. 배우들의 감정과 당시 쇼팽의 감정을 온 마음으로 느끼면서 피아노 연주를 들으니, 선율과 리듬이 온몸에 스며드는 걸 느꼈다.
「Ballade No.3 in A flat Major, Op.47」을 들을 때는 마치 사랑을 막 시작한 것 같은 호기심 가득한 설렘이 느껴지면서 가슴이 두근댔다. 「Prelude in D flat Major Op.28, No.15 (빗방울 전주곡)」을 들을 때는 쇼팽이 지내던 그 마을로 순간 이동하여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Fantaisie-Impromptu in c sharp minor Op. post. 66」을 들을 때는 쇼팽의 고유 매력이 느껴졌다. 이 곡의 연주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음원 또는 연주 동영상으로만 접하다가 라이브 연주에 연극까지 더해지니 몇 배는 깊어진 쇼팽만의 매력이 느껴졌다. 여러 음이 아니라 한 음으로 물결치는 것 같은 왼손의 음은 쇼팽의 섬세하고 따스한 마음이 한 해 동안 지쳤던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그러다 한 음, 한 음 정확히 들리는 부분으로 들어서자 그의 단단한 내면의 힘이 느껴졌다. 위로받은 순간이었다.
마지막에는 「Etude Op.10, No.3 in E major (슬픔)」을 라이브 연주와 촬영 허가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그 선물은 나를 포근하게 감싸안아 주는 것 같았다. 위로에 포옹까지 받은 기분은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날, 뱅쇼를 마셨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이번에도 두 장르의 만남은 성공적이었을까. 시너지가 일어났을까?
글의 서론 부분에 적었던 질문의 답은 YES!다. 아직 많은 사람이 어려워하는 클래식 공연의 단점은 연극 즉 이야기로 보완했다. 반대로 웅장함과 음악적 요소가 부족한 소극장 연극의 단점은 클래식 공연이 보완했다. 두 장르의 결합은 시너지를 일으켰고,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피아니스트와 배우들의 호흡이었다. 인물들의 감정이 극에 달하고 이별을 맞이한 뒤,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감정을 가다듬는 모습과 슬픔과 쓸쓸함이 깃든 연주자의 표정을 보면서 울컥했다. 95분 중 최고로 몰입한 순간이었다.
이 공연은 클래식 입문자부터 애호가까지 보기 좋으며,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테다. 클래식 연주와 연극을 결합한 공연은 어린이가 보기에도 좋을 듯하다. 작곡가의 생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후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면 (감히) 그 자체로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방영된 적이 있다. 당시 그 드라마를 좋아했었는데, 인물의 감정선과 성장 과정을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흐름도 매력적이었고 클래식을 소재로 한 점이 좋았다. 브람스, 슈만, 클라라의 관계에서 모티브를 얻어 주인공들에게 대입하여 이야기를 구성한 점은 매우 신선했다. 배우들도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주어 종영 후에도 한동안 후유증을 겪느라 혼났다.
그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 위인들을 인간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됐고, 브람스와 슈만, 클라라의 관계에 관심이 생겼다. 드라마 중간마다 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면, 인물이나 관계의 관점에서 듣게 되면서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은 다른 각도에서 클래식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작곡가의 삶과 내면을 이야기로 그려내는 건 연극이나 영화에서나 많이 볼 수 있다. 앞으로는 드라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아무래도 대중이 접근하기 가장 쉽고, 영향이 큰 건 드라마라는 이유에서다. 클래식 작곡가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가 많아진다면, 지금보다 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보련다.
[강득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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