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드라마/예능]

by 김현지 에디터
2024.11.03 16:45

 

 

아름다운우리여름1.jpg

 

 

국내 최초 자연분만 네쌍둥이 아름, 다운, 우리, 나라. 언제나 시끌벅적하던 네쌍둥이네 집에서 어느 순간부터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일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고등학생 ‘여름‘이 네쌍둥이의 옆집으로 이사 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과 사랑받아본 적 없는 소녀. <아름다운 우리 여름>은 네쌍둥이 막내 ‘나라’를 잃은 가족과 혼자인 ‘여름’이 만나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도 다시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까?”

 

대본집 표지의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듯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상처 입은 누구든 다시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눈부실 만큼 찬란한 여름의 풍경 속, 상처 입은 청춘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첫째 ‘아름’


 

모범생에 동생들도 잘 챙기는 의젓한 첫째 아들 나아름. 아름은 훈련으로 바쁜 운동부 둘째 다운과 입을 닫아버린 셋째 우리 대신 아침마다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그런데 여름이 이사 온 날, 아름은 아파트 뒤편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여름에게 들키고 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름은 그런 아름을 무시한 채 비밀로 할 테니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지나간다.

 

며칠 뒤 하굣길에 아름은 햄버거집으로 들어가는 여름을 발견한다.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주문한 뒤,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뛰쳐나오는 여름을 보며 아름은 그 곳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 적 헤어진 여름의 아빠가 하는 가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이 여름이 이 동네로 이사 온 이유라는 것도. 그러나 여름의 아빠는 여름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름, 여름.

나랑 이름 끝 자가 같은 사람도, 애칭이 같은 사람도 처음 만났다. 

무엇보다 처음인 건 나의 나쁜 면을 보게 된 사람. 그런 그 애가 묻는다.

“착한 척하고 사는 거 힘들지 않아?”

그 애를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물었다.

“나쁜 척하고 사는 거 힘들지 않아?”

 

 

아름과 여름은 서로 닮았다. 이름부터 애칭, 성향까지. 가장 비슷한 점은 자신을 숨기고 산다는 것이다. 남은 가족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혹은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진심을 숨긴 채 각자가 만든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래서이지 않을까? 아름과 여름이 숨기고 싶었던 서로의 속내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작중 여름을 괴롭히는 무리에게 달려온 아름은 “너 누군데?”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외친다.

 

“나 최여름 친구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기꺼이 공유하고 그것을 보듬어주는 존재. 가족에게조차, 혹은 가족이어서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알아채고 함께 짊어지는 존재. 친구란 그런 존재다. 때로는 속내를 털어놓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름과 여름이 가장 먼저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은 자신을 알아봐 준 서로의 존재로 인해 각자의 상처를 덜어내고 앞으로 갈 준비가 마칠 수 있었다.

 

 

 

단순하고 용기 있는, 둘째 ‘다운’


 

육상부인 나다운은 많은 시간을 운동장에서 훈련하며 보낸다. 운동부 코치는 다운이 육상을 잘하는 이유가 단순무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종목이기에 생각이 많아지면 빨리 달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육상은 단순한 다운에게 최적의 운동이었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다운은 운동장 트랙 한구석에 앉아있는 여름의 모습을 본 뒤로 슬럼프를 겪기 시작하고, 육상을 그만두게 된다.

 

혼자인 여름이 늘 쉬는 시간을 보내는 그 자리는 경기 때마다 나라가 자신을 지켜보던 지정석이었다. 늘 햇빛 속에서 달리는 자신과 반대로 햇빛 알레르기로 인해 평생 우산을 써야 했던 나라. 나라는 네쌍둥이 중에 가장 단순 무식한 다운이 제일 싫다며 불평하면서도 빠짐없이 응원을 왔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체감한 순간, 다운은 무너졌다. 더 이상 생각 없이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너네 엄마랑 다르게 되게 철없고 이상한 엄마야. 근데 난 그런 우리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나라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너희가 행복하길 바랄 거야, 나라는.”

 

 

여름은 육상을 그만두는 이유를 담담하게 고백한 다운과 쌍둥이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말한다. 나라도 너희가 행복하길 바랄 거라고.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한 다운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다운을 응원한다. 그렇게 누구보다 용기 있는 다운과 여름은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쌍둥이 오빠를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하던 나라처럼.

 

 

 

조용하지만 적극적인, 셋째 ‘우리’


 

막내 나라의 죽음 이후 죄책감을 느낀 나우리는 스스로 입을 막아버렸다. 음악을 사랑하던 자신에게 벌을 내리듯, 1년 동안 휴대폰 메모장으로 대화하며 그 어떤 소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1년 만에 다시 말하기 시작한 것은 여름을 구하기 위해서다. 충동적으로 옥상에 올라간 여름을 발견하고 뛰어올라가 붙잡은 우리는 화를 내는 여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걱정 하는 사람 없으면? 아무도 나 같은 애 걱정 안 하면. 죽든 말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내가 해. 네 걱정 지금부터 내가 한다고. 그러니까 죽지 마.”

 

살리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어쩌면 같이 살아나가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샷 2024-11-03 오후 4.30.25.png

 

 

그 말이 진심임을 증명하듯 우리는 여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뒤이어 여름의 사연을 알게 된 삼 형제는 다 같이 보디가드처럼 여름의 주위를 맴돈다. 그렇게 삼 형제와 여름은 수많은 등하굣길을 함께하며 점차 가까워진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던 거, 들어주지 않았던 거. 후회하니까. 네가 나 아무리 귀찮아해도 계속 물어볼 거야. 무슨 일인지 괜찮은지 언제든지 들어줄 거야. 네가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릴게. 그러니까 제발 더 나쁜 생각 하지 마.”

 

 

리더십 있는 아름, 시끄럽고 쾌활한 다운과 달리 차분하고 조용한 우리는 필요한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크게 목소리를 낸다. 과거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여름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여름을 살리려고 애쓰며 자신도 함께 살아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같이 살아나가고 싶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언젠가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예쁘고 강한 ‘여름’처럼


 

여름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아빠가 재혼해 떠난 뒤 엄마와 쭉함께 살았지만, 엄마마저 새로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며 새 남자와 결혼한다. 여름이 가장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 여름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쌀쌀맞은 모습을 유지하지만 사실 여름은 철없는 엄마마저도 행복하길 바라는 따뜻한 아이다. 그런 여름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자신의 존재를 감사해하는 네쌍둥이 가족들이 나타났다.

 

 

첫째 아들 나아름은 자꾸만 나한테 착하다고 말한다.

둘째 아들 나다운은 자꾸만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셋째 아들 나우리는 자꾸만 나를 잘 살고 싶게 만든다.

 

 

여름에 태어나서 단순하게 여름이라고 이름 지었을 거라 생각한 여름에게 엄마는 말한다.

 

 

"갓 태어난 너를 안고 창밖을 보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거야. 진짜 예쁜 여름날이었어. 그래서 네 이름 여름이라고 지은 거야. 그렇게 살았으면 해서, 내 딸이. 나랑은 다르게, 예쁘고 강한 여름처럼."

 

 

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해 우리는’, ‘선재 업고 튀어’와 같은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성장물의 배경이 늘 여름인 이유는, 여름이 그 어느 계절보다 뜨겁고 변화무쌍한 계절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경험이 부족한 청춘들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은 커다란 변화로 느껴지고 그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은 뜨겁다. 그럼에도 여름의 초록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축 처질 시간이 없다는 듯 우리를 창밖으로 이끈다. 그래서 여름은 청춘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따가운 햇살과 부딪히며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아름다운 여름의 풍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역시 네쌍둥이 가족을 만나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이름대로 예쁘고 강한 여름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지금 여름의 곁에는 기꺼이 성장통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131.jpg


 

삼 형제를 처음 만난 날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여름은 삼 형제를 만나 살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라가 남긴 마지막 말을 찾아내 가족들에게 전해준다. 나라가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용기 있게 달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라고. 무엇보다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고 행복해지라고 말한다.

 

먼저 떠난 이들이 남은 이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슬픔을 너무 오래 간직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는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 걸어가는 아름, 다운, 우리, 여름을 지켜보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 걸어가는 이야기 말미의 나라처럼 말이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겪을 모든 이들, 그중에서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가 작은 위로의 손길을 건넬 수 있길 바란다.

 

 

김현지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맨몸으로 싸우는 아름다운 전쟁, ‘스테이지 파이터’ [예능]
  2. 02 [Opinoin] 드라마 ‘정년이’ 속 지워진, 혹은 선명해진 인물들에 대해 [만화]
  3. 03 [Opinion] 도쿄에서 마주한 애니메이션 [여행]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