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평소와 다른 풍경을 마주하고 새로움을 즐기며 다시 일상을 살아갈 재충전의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 여행의 묘미란 익숙한 듯 낯선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의 설렘에 있다. 어릴 적 투니버스에서 한 번쯤 보았고 최근에는 ott와 극장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상당수가 일본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속 배경은 가상 세계가 아닌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그린 경우가 많은데, 특히 수도인 도쿄는 도시 장면을 묘사할 때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두 번의 도쿄 여행에서 내가 마주한 애니메이션 속 장소들을 소개한다.
겨울 도쿄 여행 시 꼭 방문해야 할 롯폰기 일루미네이션. 매년 11월 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롯폰기힐즈 거리에서 진행되는 LED 점등 축제로, 400m에 걸친 조명들과 멀리 보이는 도쿄타워가 어우러져 눈꽃으로 뒤덮인 듯한 화려한 경관을 이룬다.
이곳은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 헤이지(하인성)가 카즈하(서가영)에게 고백하기 위해 점찍어 놓은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영국의 빅벤에서 고백한 라이벌인 신이치(남도일) 못지않은 경치에서 고백하고자 심사숙고해서 고른 장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롯폰기 일루미네이션의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롯폰기 일루미네이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 도쿄타워. 도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기에 도쿄를 배경으로 한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비록 <명탐정 코난>의 팬인 내게는 코난과 신형사가 폭탄 테러범에 의해 갇힌 장소이나,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평화로운 도쿄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니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방문해 각자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떠올리며 얘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녹색 잔디와 어우러진 붉은 자태를 자랑하는 낮과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밤의 도쿄타워는 언제 보아도 멋진 경관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 마코토와 치아키가 대화를 나누던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교차로를 건너는 인파 속에서 시간을 멈추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다.
이곳에 가면 먼저 근처 건물이나 전망대에 올라 시부야 스크램블을 한눈에 담은 뒤에 교차로에 내려가기를 추천한다. 서로를 향한 치아키와 마코토의 애틋한 마음을 떠올리며 인파 속을 걷다 보면 <시달소>만의 몽글함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시부야 스크램블은 <주술회전>에서 사변이 일어나고, <괴수8호>에서 괴수가 출현하고, <명탐정 코난>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곳 중 하나이기에 선정된 배경이겠으나, 만일을 위해 시부야에 가면 각종 테러와 괴수를 각별히 조심하길 바란다.
시부야 역에서 교차로로 향하던 중 우연히 마주한 터널. 계획하고 찾아간 다른 장소와 달리 왠지 모를 익숙함에 셔터를 누른 이곳은 극장판 <명탐정 코난:할로윈의 신부>에 등장한 곳이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익숙한 장소를 마주하니 설렘이 두 배로 크게 다가왔다. 이렇듯 도쿄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도시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의 하이라이트 장면이자 포스터의 배경이기도 한 계단.
관광지인 다른 장소들과 달리 직접 찾아가야 하는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올해 초 방문했을 당시에도 2-3팀의 관광객이 포스터 속 장면을 따라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같은 작품을 떠올리며 즐거워하던 그 순간의 감정은 마치 서로 하나로 연결된 듯한 신기한 느낌이었다.
익숙한 듯 낯선 장소에 두 발을 디딘 채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떠올리면 왠지 모를 벅참이 느껴진다. 마치 만화 속에 들어온 듯한 설렘과 작품을 감상했을 당시의 감정이 더해져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러니 일본 애니메이션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도쿄 속 애니메이션 배경지들을 한 번쯤 방문하길 추천한다.
보통의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