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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세상에 슬프기만한 죽음은 없다

할머니의 장례식

by 유희수 에디터
2026.05.16 16:59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스트 이탈리아 순례의 해 2년 단테를 읽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평소 죽음과 이별에 민감한 편이지만 왜인지 마음이 크게 울렁이지 않았다. 평소 할머니와 아주 가까운 손녀가 아니었고, 이미 여러 번의 장례를 겪은 탓인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상 당일엔 급한 일이 있었다. 결국 다음 날 첫 기차를 탔다. 도착했을 때에는 아주 이른 아침이었고 날씨도 좋았다. 햇빛이 봄 나들이를 갈 때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 장례식장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고요하고 편안한 공기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안하다는 상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해 장례식장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부는 아주 조용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친척 어른들은 모두 기력이 다 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전 날에 아예 잠들지 못했을까를 생각하게끔 하는 모습들이었다. 그 와중 아빠가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고 사람들은 대기실을 가리켰다.


문을 열자 아주 작은 공간 그 중에서도 구석 바닥에 누워 잠든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전에 비해 아주 야위었고,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몇 달 사이의 변화였다.


살면서 아빠가 우는 걸 본 적이 있는가를 떠올려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동안에는 없었다. 나와는 달리, 아빠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그때그때 언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혼자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그 상황을 넘기곤 했다.


그 순간 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정말 어떻게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온 몸을 휘감았다. 조금 전까지 평온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곧바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상복을 입고 나오자 엄마가 아침을 권했다. 뭘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우선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상이 차려지고 엄마와 마주 앉은 나는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으며 오늘 날씨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


곧 아빠가 대기실에서 나와 옆 자리에 앉았다. 나는 평소보다 더 과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빠 술 많이 마셨네 평소에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그런 거 술찔이라고 한대. 나도 술찔이야. 주량은 유전이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주량 넘기면 이제 다음 날 끝장 나는 거야 하는 농담을 계속 던졌다. 그제서야 아빠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스쳤다. 내가 줄곧 알고 있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조금 안심한 나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사람들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았다. 고모는 우스갯소리로 엄마 사진에 보정을 너무 많이 했다며 웃었다. 잠시 후 엄마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때 건너편에 있던 아빠가 문득 말을 꺼냈다.


“얼굴이 편해 보여서 좋다.”


그간 힘들어했던 날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아빠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의 손님이 왔다 갈 때마다 아빠의 표정은 점점 더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평소 아빠의 친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가족들과 보내면 좋을 주말 시간을 그렇게 써버리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아빠의 힘든 순간을 지탱해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다음 날에도 해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날을 지키지 못하고 기차를 탔다. 당일치기로 본가를 다녀오는 일정을 소화하고 나는 아주 피곤한 채로 서울역에 도착했다. 요근래 가장 피곤한 날 중 하나였지만, 버스도 지하철도 타고 싶지 않았고, 집을 향해 걸었다.


짐을 정리하고 곯아떨어진 나는 오랜만에 꿈을 꿨다. 가파르고 위태로운 높은 건물을 오르는 꿈이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나보다 앞서 건물을 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뒤를 따라 이유도 모른 채로 건물 외벽을 타고 계속 올랐다. 100여 층은 족히 넘은 듯한 높이가 되었을 때, 꿈 속의 나는 죽음을 직감하고 앞서가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내려갈 방법은 없는 거겠죠? 하고.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사람은 당연하단 듯 내려갈 수 있다고, 높은 곳이라 약간 어지럽긴 하겠지만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내려갈 때는 신기한 일을 경험할 수 있다고. 고양이가 보인다고 했다. 환각처럼 나타난 고양이는 내려가는 내내 보이다가 1층에 가까워질 즈음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잠깐 스쳐가지만 이상할 정도로 행복해지는 순간들 이라고. 그 말을 듣자 나는 그 사람이 이 위태로운 작업을 계속 하는 이유가 바로 그 고양이 때문임을 알았다.


잠에서 깬 나는 참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카톡이 와 있었다. 잘 도착했냐, 이제 곧 발인 들어간다 하는 말들이었다. 창 밖의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다.


어이없게도 그제서야 할머니의 죽음이 실감이 났다. 장례식장에 갈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마음이 한 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이별할 일들만 남았으며, 만남보다 이별의 횟수가 더 많을 것이다.


그 순간을 깨닫자 마음이 울적해졌다. 원래 큰 일을 치르고 난 뒤에야 더 큰 감정이 쏟아지는 법이니, 아빠도 분명 이런 마음을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봤던 아빠 모습이 떠올랐다.


불안이 밀려왔고 차분해질 수 없었다. 방 청소를 하고 노트를 펼쳤다. 그러다 문득 그 꿈이 다시 스쳤다. 깼을 당시에는 와닿지 않았던 감정이 뒤늦게 마음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끝없이 위태로운 곳을 오르면서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에 빠져들어 행복해하고 슬픔을 잊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의 일을 다시 상기해 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모인 친척들은 이전보다 훨씬 누그러진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들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무뎌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또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장례식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생각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죽음은 분명 슬프지만, 남은 사람들의 삶을 다시 연결하는 매개가 되어주는 면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장례식을 하는 이유도,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와주는 이유도, 상주와 남은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장례식 내내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세상에 좋은 죽음은 없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해온 날들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아빠한테 카톡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껏 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걸 먹으라고.

 

 

 

컬쳐리스트 명함.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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