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밤 아빠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지간해서는 누군가에게 전화하지 않을 시간. 우리에게 급하게 걸려 올 전화라면 예상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 전화를 받은 아빠의 입에서 나온 호칭은 원장님이었다. 우리가 아는 원장님이라고는 할머니가 오랜 시간 지내고 있는 요양원의 그분밖에 없다. 그래서 '원장님'이란 한 마디에서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윽고 고모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시간이 되면 내일 할머니께 다녀오라고 했다. 모두가 어수선한 마음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다.
할머니는 그 밤에 숨을 안 쉬어서 응급조치가 필요했다. 작년 봄부터 할머니 상태가 안 좋다는 연락이 잦아졌다. 올해는 유동식을 드시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 같아 콧줄(비위관) 삽입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러다가 호전되어서 고민은 기우가 되어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결국 이번 일로 비위관은 선택의 영역을 넘어섰다. 때로는 괜찮았고 때로는 아니었지만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매번 걱정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할머니는 생각보다 많은 계절과 함께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입에 뭐라도 넣는다는 건 생존 의지이다. 사람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 건강한 사람이 참는다고 해도 1분을 버티기가 힘들다. 호흡하지 않으면,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으면. 짧은 순간이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사실은 알고 있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요양원에서 어떤 소식이 들려오든 우리는 선택지를 쥐고 고민할 뿐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어떤 죽음도 익숙해지지 않듯이 노화로 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적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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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최근 병원에 갔을 때 옆에 같이 진료를 기다리던 어느 노부부. 팔순을 넘긴 분들이 자식의 도움 없이 병원에 올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부모님에게 대입해 봤다. 엄마와 아빠가 그때까지 내 곁에 있는 모습. 앞으로 20년 정도. 그분들만큼 정정하길 바란다 해도 남은 시간은 지나온 시간에 비해 짧다.
언제부터일까 영원한 이별과 상실이 성큼 다가온 건. 나이가 들면 부고를 듣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게 자연의 섭리라지만 어느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별이 일상에 스며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럴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다. 피하고 싶다.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뿐. 영원하다는 말은 있지만 우리는 영원하지 못하다. 나이가 들면서 불로초를 구하려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상실하며 살아가고 그러한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것. 안온하지 않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
무엇 하나 잃고 싶지 않다. 어딘가 빼앗기는 것만 같다.
2년 전 이맘때쯤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떠난 이후로 모든 애정의 말이 추모가 되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지 않는 생일을 축하하겠다고. 오래된 이별에 적응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는데 앞으로 다가올 이별들,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철렁, 없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