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질이 좋지 않고, 코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퀄리티는 낮지만 처음 만들어 본 내 음악 4마디'
아주 오랜 고민 끝에 첨부하였다.
피아니스트 지용의 '슈만/리스트 헌정'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일까? 나는 그 중 하나가 바로 ‘완벽주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창작에 있어서 완벽주의는 치명적인 약점이자, 평생 싸워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나는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I 성향이 90% 이상으로 나오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런 내게 완벽주의는 더더욱 큰 걸림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은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극적인 성격이 더해지면 기회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완벽주의는 나를 많이 갉아먹었다. 대학 시절 기말 과제로 30장 분량의 대본을 제출해야 했을 때, 나는 고작 반 페이지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그 마저도 제목과 로그라인으로 분량을 채웠고 대사는 단 한 줄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제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교수님이 보내신 메일 답장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잘하지 못한 결과물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생각은 나를 아주 좁은 세상에 가두었다. 사람은 시행착오 속에 성장하고, 누구나 처음부터 잘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꽤 오랫동안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안주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정말 많은 기회를 놓쳤다.

늦은 밤 집에 가던 길
그 중 하나가 협업이었다. 예술대학의 가장 큰 장점은 타과 학생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협업을 하면 내가 쓴 대본이 영상화가 되거나, 무대에 오르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며 시행착오 속에서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대본을 교수님 외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두려워, 졸업 학년이 될 때까지 그 기회를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같은 학교 연출과 학생의 눈에 띈 것이다. 타과 수업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는 다음 학기 공연 오디션에 함께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기회가 오히려 부담스럽고 막막하게 느껴졌던 나는 다른 학생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몇 주 동안 연출의 눈을 피해다녔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설득했고 결국 나는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같은 과가 아닌 학생에게 대본을 써서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발표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못난 글을 평가받는 것이 제적보다 두려웠던 나는 매 미팅이 고역이었다. 연출과 친해지기는 커녕 매번 수정할 부분만 받아적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완성한 대본은 안타깝게도 공연 오디션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오히려 후련함을 느꼈다. 이제 이 끔찍한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결국 다른 오디션에 통과한 연출과 나는 같은 팀이 되었다. 나는 학교 생활 이래 처음, 작가로서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대본으로 스태프를 모으고, 내가 쓴 대사로 배우를 선발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
하지만 그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대본을 전면 수정해야한다는 교수님의 말씀 아래 나는 또다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드디어 검증 되었다고 믿은 순간이었기에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또 다시 날것의 언어를 사람들 앞에 내 보이고 평가 받야아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그리고 그 시기 나는 팀원들에게 보여선 안 될 모습을 보였다. 작가로서 팀의 이야기를 이끌어야 했던 내가 글을 한 줄도 써내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팀원들이 느꼈을 불안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한없이 미안해진다.) 당시 매주 대본을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그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압박감 아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 뿐이었다. 팀원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나는 조금씩 대본을 고쳤고 마침내 우리가 할 이야기의 뼈대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최종 대본이 완성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연습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과 감사함, 성취를 느꼈던 것 같다.

친구에게 받은 귀여운 케이크 '기환'이라고 오타가 났다
동시에,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못난 대본을 내보인다고 해도 그 결과물과 나를 동일시 해 바라보지 않는구나. 오히려, 나를 못나 보이게 하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무책임한 태도구나. 그 때의 깨달음으로 나는 이후 과정에도 조금씩 용기를 더해 부딪히며 무사히 졸업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이후 학교 외부에서도 같은 연출과 함께 새로운 대본으로 연극을 한 번 더 해볼 수 있었다.
이전 오피니언에서 나는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 화성학과 편곡을 배우게 되었으며 피아노를 배운다는 말을 했었다. 마치 가볍고 즐겁게 시작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적었지만, 사실은 이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도전하기까지 긴 고민이 있었다.
'과연 작곡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배운다고 한들 전공자도 아닌 내가 음악을 사람들 앞에 선보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떠오르고, 나에 대한 의심은 아직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오랜 시간 내 안에 자리 잡은 완벽주의가 졸업공연이라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사라질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작곡한 곡을 사람들 앞에 보여준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매주 수업을 빠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제 부딪혀야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매 순간 약간의 용기를 더해보고 있다. 한 발짝만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이번 주 오피니언에 완벽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하고 내가 만든 곡을 덧붙이게 되었다.
중요한 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보이는 내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시도하며 나아가는 나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부족한 결과물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