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로가 서로를 구원한 여름 [드라마/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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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의 오펜(O'PEN) 공모전을 통해 당선 된 신인 작가들과 신인 연출자들의 작품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드라마 프로젝트가 있다. 신인들의 '시작'을 축하하는 마음과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O'PENing 프로젝트다. 6년 동안 꾸준히 신선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였던 O'PENing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다.
이번 O'PENing 2024에는 '이어짐'을 주제로 다양한 인물 간의 관계와 이해에 초점을 맞춰 빚어낸 7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이어짐이 존재할까. 한국에 '인연'이라는 단어의 존재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우리는 거의 날마다 이어짐의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짐을 수도 없이 경험하는 우리가 O'PENing 2024의 드라마를 보며 감동하고, 눈물을 머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공감되어 일수도 있으며,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져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차례대로 본 3편의 드라마 프로젝트 속 주인공들은 이어짐의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구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과도 이어져 스스로를 보듬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구원'이라는 단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벅차고 신성한 느낌이 든다. 때문에, 나는 구원을 소재로 한 콘텐츠에 약하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고, 보듬어준, 그래서 다시 찬란한 여름을 맞이한 <아름다운 우리 여름>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늘은 O'PENing 2024 중 은은한 감동을 넘어, 목이 메여올 정도로 찡했던 드라마 <아름다운 우리 여름>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찬란한 여름날, 다소 차가워 보이는 고등학생 소녀 '여름'이 혼자 이사를 왔다. 아파트에 부모님 없이 이사 왔다는 걸 인지해서일까, 방금 이사 왔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생각해 보아도 '여름'의 집은 어딘가 휑해 보인다.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는 '여름'의 집과는 달리 옆집에선 아침부터 복작복작 따뜻한 분위기가 풍긴다.
1년 전 유퀴즈 온더 블럭에 국내 최초 네쌍둥이 자연 분만 부모가 등장했다. 세쌍둥이도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데, 네쌍둥이라니. 네 쌍둥이와 부모는 그렇게 세상의 축하와 관심을 한 몸에 안았다. 드라마 <아름다운 우리 여름> 속 네 쌍둥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아름, 나다운, 나우리, 나라." 아름다운 우리나라, 네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뉴스, 다큐멘터리에 등장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아침 식사 자리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은 네 쌍둥이 중 '아름' 한 명뿐이다. 차남 '다운'이는 아침 운동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밖을 나서고, '우리'는 왜인지 입을 꾹 다물고, 핸드폰의 음성으로 목소리를 대신한다. 고등학생의 사춘기 때문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미심쩍은 '우리'의 행동과 식기류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자리에 포커스가 된 장면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모든 사람의 축하와 사랑 속에 태어난 네 쌍둥이와 달리, '여름'의 탄생과 성장 속에 사랑은 없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사랑하는 새로운 여자가 생겨서 집을 나간 아빠와 먹고 살기 힘들어 양육할 수 없다는 엄마에게서 상처를 받았다. 결국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고등학생이 된 현재,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엄마로부터 '여름'은 또다시 버려졌다. 오랜만에 마주한 친아빠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여름'은 담담하게 무너진다. 그런 그녀에게 새 아빠는 못된 말들을 내뱉었고, 그렇게 '여름'은 결국 끝까지 무너지고 만다.
옆집인 것을 알고 있는데, 슬픈 표정으로 옥상으로 향하는 '여름'으로부터 '우리'는 노란 우산을 쓴 소녀를 떠 올린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서 '우리'는 소리친다. 입을 닫고 살고 있던 '우리'가 목소리로 '여름'을 살렸다. 그리고 곧바로 네쌍둥이의 막내, '나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는 너 같은 사람 증오하거든
너만 그렇게 죽어버리면 다냐?
너 걱정하는 사람 생각은 안해?
남겨질 사람 생각은 안하냐고
-내 걱정하는 사람 없으면? 아무도 나 같은 애 걱정 안하면?
죽든 말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내가 해, 네 걱정 지금부터 내가 한다고, 그러니깐 죽지마 최여름
그렇다. <아름다운 우리 여름>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라'의 자살 이유는 극 중 공개되지 않는다. 2편의 단막극 분량 안에 담지 못한 까닭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공개되지 않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 드라마 <아름다운 우리 여름>은 남은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고,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고 외친다.
니들 처음 만난 날, 나 여기서 죽고 싶었어
근데 니들이 나 살렸다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아프게 살아가는 지 바로 옆에서 보니깐 살아야겠더라
살고 싶어졌어 니들 때문에
남겨진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의 죄책감과 상처를 품고 있다. 노래 부르고, 음악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우리'는 본인 때문에 '나라'가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말하지 않는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아름'은 '나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순간에도 착한 아이인 척을 하고 있었다며 스스로를 혐오했으며, 자책했다. 단순한 성격 덕분에 달리기 출발 속도가 빨라 육상에서 재능을 보이던 '다운'의 세상은 무기력함으로 가득 찼다.
삼 형제는 오랜만에 같은 생각을 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나라가 살아서 돌아온 것 같다고
'여름'이 슬픈 표정으로 옥상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 날 아침부터, 삼 형제는 '여름'의 보디가드이자 귀여운 감시자들이 된다. 그렇게 점차 '아름다운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 여름'이 된다.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던 '여름'에게 세 명의 든든한 '오빠, 친구 그리고 첫사랑'이 나타났으며, 삼 형제에겐 '나라'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여름'이 등장했다. '나라'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걸 깨달았던 삼 형제와, '가족'의 부재에 주저 않았던 '여름'이는 서로를 보듬어줬고, 챙겨줬으며, 구원했다.
근데 지금은 그거(나아름, 나다운, 나우리) 보다 더 부러운 게 생겼어요.
아줌마요
아줌마는 좋은 엄마예요.
<아름다운 우리 여름>은 비단 10대 청소년들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만을 담고 있지 않다. 남겨진 사람 모두를 품고 있다. 햇빛 알레르기를 앓고 있고, 막둥이로 태어나 몸이 약했음에도 "엄마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곤 했던 '나라'의 부재에 가장 마음이 아팠을 사람은 분명 엄마였을 것이다. '나라'와 비슷한 '여름'을 통해 집 안 커튼을 걷으며 햇빛을 들이는 엄마의 표정 속에서 후련함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우리의 집에 다시 웃음이 찾아왔다.
난 언제나 오늘처럼 너의 내일을 응원할 거야
- 네 음악의 첫 번째 팬이
'여름'이 덕분에 '나라'는 마지막 인사를 모두에게 건넬 수 있게 된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그림자 아래에서만 지내던 '나라'는 마침내 햇빛 아래에 선다. '나라'의 마지막 인사는 '아름'이가 더 이상 갇혀있지 않도록, '다운'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우리'가 다시 뛸 수 있도록 건넨 응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여전한 소원도 함께.
마지막 프롤로그 장면에서 다리를 건너는 '아름다운 우리 여름'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반대 방향으로 떠나는 '나라'를 통해, 떠나간 사람은 남겨진 사람의 행복을 분명 바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름, 다운, 우리 세 쌍둥이들은 여름을 만나 다시 사랑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그해 여름은 "아름다운 우리 여름"이었다.
여름이 되면 매 년 꺼내 볼 듯싶다.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아름다운 우리 여름'에게 <아름다운 우리 여름>을 추천한다.
[최서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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