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에게만큼은 정말 특별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담한 햇살 조각 같은 당신 눈빛을 보니
그를 만난 당신은 틀림없이 행복한 사람이군요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영문으로는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책입니다. 위 문구는 페르시아어 "Tiam"의 뜻을 설명하면서, 작가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가 제시한 문장입니다. 이 책을 집어들어 펼쳤을때 "아담한 햇살 조각 같은 당신 눈빛을 보니 그를 만난 당신은 틀림없이 행복한 사람이군요"라는 문장은 저를 책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의 눈빛만으로 행복과 사랑하는 이를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순간 포착. 그리고 담담하지만 섬세한 묘사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Tiam"은 페르시아어로 '누군가를 처음 만난 순간 반짝이는 눈빛'입니다. 이 담담하고 섬세한 묘사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Tiam 티암'을 대체할 만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에 관한 단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고 행복에 빠지는 과정은 전세계의 어느 인간이든 동일할 것입니다. 서로의 눈빛에서 'Tiam'을 읽어내었기에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기도 합니다. 분명 존재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페르시아어에는 'Tiam'이라는 단어가 있고, 한국어에는 같은 뜻의 단어가 없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생각의 과정에서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I. 언어우위론 & 사고우위론
각 문화에는, 그 문화에 맞는 언어가 있습니다. 글자가 없는 나라는 있어도, 소통에 대한 인간의 본능으로 인해 언어가 없는 나라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사람의 언어에 따라 사고가 규정된다는 '언어우위론'과 사고에 따라 언어가 형성된다는 '사고우위론'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에는 타인을 환대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인의 이상은 따뜻하고 포근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를 반영한 '헤젤리흐 Gezellig'는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편안하다’, ‘유유자적하다’, ‘여유 있다’, ‘따뜻하다’, ‘부드럽다’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네덜란드인들은 추운 겨울날 오후에 따뜻한 카페에 들어갔을 때 ‘허젤러흐’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 때도 ‘허젤러흐’라고 합니다. 가족이 다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시간도 ‘허젤러흐’입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와 사고가 '허젤러흐'라는 언어에 반영된 것입니다. 즉, '사고우위론'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고가 먼저 발생하고 언어가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반대로, '언어우위론'이란, 언어가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관점입니다. 브라질리안 포르투갈어의 '카푸네 Cafune'는 사랑하는 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카푸네'라는 단어의 존재로 말미암아, 브라질 사람들은 자주 사랑이라는 감정을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면서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인간은 사랑하게 되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지만, '카푸네'라는 단어가 없는 우리나라보다는, 브라질에서 더 자주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언어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언어우위론'인데, 이 주장도 그럴듯해 보입니다.
II. 언어와 사고의 상호작용론
혹은 '언어우위론'과 '사고우위론'을 모두 반영한, '상호작용론'이 더 설득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상호작용론'이란, 언어가 없는 사고도 존재하고 사고가 없는 언어도 존재하며, 언어와 사고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유의미한 '언어적 사고'가 존재하게 된다는 관점입니다.
언어와 사고는 결국,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달한다는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어의 '포렐시에 Forelsket'는 '사랑에 빠질 때 찾아오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 마음'입니다. 사랑에 빠질 당시의 감정이 해당 단어 형성에 기여하고, 해당 단어가 만들어짐으로써 노르웨이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포렐시에'라며 명명하고 더 잘 인식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화는 언어를 반영하고, 언어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일지라도 페르시아어에는 'Tiam'이라는 단어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을 수 있으며, 네덜란드어에는 'Gezelig'라는 단어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을 수 있으며, 브라질리안 포르투갈어에는 'Cafune'라는 단어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III. 문화를 반영한 언어
![[크기변환]이디시어.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1/20241106104058_qrmnmhrc.jpg)
1. 이디시어
이디시어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서인지 이디시어에는, '항상 운이 안 따라주는 사람'을 뜻하는 '슐리마젤', '뒤늦게 생각난 해야할 말'을 뜻하는 '트렙페르테르'와 같은 단어가 존재합니다.
그래서인지 'Der mentsh trakht un got lakht.'라는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인생은 예측불허,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알려주는 속담입니다.
이렇게 언어를 살펴보며,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슬픔을 살펴보면,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가 여전히 존재함으로써, 민족의 슬픔은 언어에 각인되어 후대에 기억되기도 하는 것이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일본어
'나뭇잎 사이로 스며 내리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 '꼬모레비'는 참 섬세하고도, 정적인 단어입니다. 세세한 작업을 잘 하면서도 약간은 엄격한 문화가 일본어 단어에도 녹아있습니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는 말처럼,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그 나라의 언어를 닮아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책을 읽으며 '언어'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번역이 어려운 단어가 실린 이 책이 궁금하시다면 직접 더 읽어보시는 거 추천드리겠습니다. 말로 형용하기 힘들던, 그렇지만 정말 존재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명명할 이름을 찾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