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그녀는 : 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맹렬하게 살아간 한 여성의 이야기
글 입력 2023.03.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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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


그녀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미국의 천재적인 여성 작가. 세 번의 자살을 시도하였고, 결국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은 비운의 여인. 정숙하면서도 예민한 여성.


단편적인 수식어 아래 그녀의 삶은 얼마나 치열했을까? 왜 그녀는 세 번의 자살을 시도했을까? 왜 그녀는 정숙해야 했으면서도, 예민했을까?


수식어 뒤로 붙는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리고 안타깝게 생을 포기하게 된 그녀에게 다시 생을 불어넣기 위해, 우리는 어느 기차 속으로 들어가 본다.

 

 

 

1. 억압당한 맹렬한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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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실비아, 살다> 초연 사진

 

 

당신은 하지 마, 당신은 하지 마

이제는 검정구두가 아니야

나는 그걸 삼십년이나 발처럼 신고 다녔어.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재채기도 못하면서,

아빠, 나는 당신을 죽여야 했어.

당신은 내가 그러기 전에 죽었지만.

 

(뮤지컬 <실비아, 살다> 넘버 ‘아빠, 이 개자식’ 中)

 

 

실비아가 살아간 1930년대에서 1960년대 그 사이. 여성의 조신함과 얌전함이 여성성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기였다. ‘남성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던 실비아 또한 그 시선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를 향한 억압은 유년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다리를 벌린 채 앉은 어린 실비아에게 다리를 오므리라 요구하는 어머니, 그녀를 엄격히 대한 아버지. 성인이 되어서도 그녀의 행동과 작품은 아름답기를 요구당했다. 남편 테드로부터, 그리고 또 다른 타인들로부터.


‘맹렬한 야수’ 같은 모습은 사람들이 원치 않아 하는 것이었다. 계속 끊임없이 분출될 것만 같은, 그러나 예민하다고 치부되는 그녀의 거친 천재성을 억누르고, 실비아는 테드의 옆에서 그의 작품을 타자기로 옮기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마음속에 의문을 품는다. 자꾸만 타인의 말이 이상하게 들리고 그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듯한 이 감각은 무엇인가. 나는 왜 매사에 순종적인 엄마를 증오했는가.


 

그래도 엄마

난 엄말 배신할 순 없어

어찌해야 해

엄마의 뜻을 거역할 때 밀려오는 이 죄책감

어찌해야 해 나는

 

(뮤지컬 <실비아, 살다> 넘버 ‘엄마를 배신할 수 없어’ 中)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형식적인 틀을 좋아하던 제 아버지와 닮은 테드 휴즈와 결혼한다.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어떤 남자와 결혼했어도 아버지와 같았을까?


실비아는 그 누구도 배신할 수 없었지만, 모든 남자는 실비아를 배신했다. 아버지는 죽었고, 테드는 떠났다. 마치 ‘배신’은 오직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테드가 떠난 그제야, 실비아는 자신의 글을 타자기에 옮기기 시작한다. 조신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맹수와도 같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2. 세 번의 비상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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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실비아, 살다> 초연 사진

 

 

10년에 한 번 씩 죽음을 택하죠

나를 해방시킬 죽음을

10년에 한 번 씩 나를 확인받죠

나로 살게 하는 확인을

 

(뮤지컬 <실비아, 살다> 넘버 ‘10년에 한 번 씩’ 中)

 

 

실비아는 그녀의 인생을 다양한 메타포로 표현한다. 벨 자(bell jar), 기차여행, 도마뱀이 가득한 계단. 그 모든 비유의 공통적인 메시지는 인생은 너무도 살아가기 괴로운 것이며 또다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늘 그녀에게 주어지는 억압과 함께, 때로는 그녀에게 커다란 고난이 따라오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 학업의 실패, 테드와의 별거 이후 혹독한 생활. 그때마다 그녀는 죽음을 택한다. 죽고 싶어서가 아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극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실비아의 기차여행. 그 종착지는 아홉 번째 왕국이다. 하지만 그 종착지는 미지의 세계이다.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기차 안은 억압적이고 무서운 곳이다. 그래서 그녀는 비상 정차를 택한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그녀 위로 덮인 벨 자, 유리종 또한 그러하다. 분명 바깥세상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잔이지만, 그 유리잔은 오히려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키고 한정된 공간만을 제공한다. 그 답답한 유리잔 안에서 그녀는 미치지 않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그녀의 세 번째, 마지막 죽음 또한 살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죽음이었다. 오전 9시에 가정부가 오도록 하고, 마침 9시에 일어나는 집주인에게 도움을 받아 가정부가 잠긴 문을 열면 의사를 불러달라는 쪽지를 읽고 그녀를 다시 살릴 수 있도록. 


그녀는 그렇게 오븐에 머리를 박았다. 하지만 집주인은 제때 일어나지 못했고, 가정부는 제때 문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제때 살지 못한 실비아는 죽었다.

 

 

사실, 아직 완성은 다 못했어요.

이제 마지막 장면만 쓰면 되는데요,

그걸 제가 할 수가 없어서요.

근데 저 다시 돌아와서 꼭 해낼 거예요.

 

(뮤지컬 <실비아, 살다> 中)

 

 

 

3. 실비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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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실비아, 살다> 초연 사진

 

 

빅토리아 루카스. 맹렬한 야수를 닮은 글을 쓰는 또 다른 여인. 그녀는 실바아의 과거이자 미래이다.


자신은 세 번째 비상 정차에서 죽음을 맞이한 채 끝났지만, 또 다른 실비아는 그러지 않도록, 그녀가 최대한 고통 받지 않을 길을 알려준다. 이번에는 그녀가 살 수 있도록. 하지만 매서운 추위는 실비아를 다시 오븐으로 안내했고, 빅토리아는 그런 실비아를 막는다. 이번에 비상 정차를 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세상이 너무 추워.”

“내가 안아줄게.”

“너의 글이 누군가에게 목도리가 되어 줄 거야, 실비아.”

 

(뮤지컬 <실비아, 살다> 中)

 

 

이제 빅토리아는 실비아와 함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 시점에서 끝났기 때문에. 하지만 실비아는 아직 끝맺지 못한 <벨 자>를 비로소 끝맺을 수 있을 것이다. ‘벨 자’에서 탈출하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침내 완성된 <벨 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이름이 아닌,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이름으로 출판된다. 실비아를 떠난 빅토리아는 그렇게 실비아의 소설 속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설은 또 다른 실비아에게 따뜻한 목도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실비아의 이번 기차 여행은 아홉 번째 왕국으로 끝까지 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실비아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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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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