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몰랐던 화폭의 이면을 보여주는 그 곳 - 도서 '위로의 미술관'

책장 속 작은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물음표들과 마주할 것이다
글 입력 2022.09.1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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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게 <위로의 미술관>은 위로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고된 하루 끝에 따스한 명화를 통해 힐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이 책을 읽는 동안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수많은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던져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만큼 <위로의 미술관>은 당연하게 여겨왔던, 혹은 생각하기를 미뤄 두었던 문제들 앞에서 안일했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이 특히나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는데, 책의 이름처럼 책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미술관에 들어선 것처럼 저자의 친절한 도슨트를 듣는 관람객이 될 수 있다. 화폭 너머 존재했던 작품의 뒷면 속 화가들의 생애, 비화를 읽으며 비로소 우리는 익숙하게 보아 왔던 작품의 민낯을 보게 된다. 그 앞에 서서 책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곱씹어 보고 나서야 새로운 관점에서 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총 4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는데, 꼭 순서대로 읽지 않더라도 그날 그날 끌리는 제목의 테마 속 작품들과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되고 지친 날 화가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통해 작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절망의 벼랑 끝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 때 화가들의 굳센 의지와 모험감에 자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필자처럼 평소 미뤄두었던 질문들에 답을 해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던져본 질문들과, 완벽한 답은 아니더라도 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작품은 화가의 감정, 생애와 유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가?



문화예술기획 학도로서 이전 전공 수업에서 뜻밖의 질문과 마주할 수 있었다. 과연 작품은 화가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인데, 이는 예술이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사실,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이들 중 적지 않은 거장들이 도덕적으로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도 ‘예술가’라는 칭호 아래 포장되어 온 불편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작품을 과연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작품이 화가의 생애나 그의 감정, 그 모든 것들과 유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느냐가 궁극적인 쟁점이라는 생각인데, 이번 <위로의 미술관> 책을 통해서 그 지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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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더미라는 이름의 클로드 모네의 작품은 한 점이 아니다. 그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같은 공간 속 위치한 건초더미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점에 걸쳐 그려냈다. 그는 빛에 따라 사물이 다양한 모습을 띠곤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빛과 분위기에 따라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사물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클로드 모네의 이러한 고민의 과정을 알고 나면 이 작품은 처음과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어쩐지 화폭 너머 화가의 다정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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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모르더라도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접해 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오는 그의 그림 속에는 마티스의 완고한 고집이 숨어 있다. 그는 사물이 가진 고유한 색채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떤 빛 아래에 있느냐, 어느 장소에서 보는냐에 따라 간혹 소지품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의 색채는 어쩌면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마티스는 이러한 색체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작품 속에 충실히 녹여냈다. 그에게 색체는 그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 속 부인의 얼굴에는 여러가지 색체가 덧데어 있다. 보통 사람의 얼굴 색 하면 떠올리기 힘든 녹색과 붉은 색이 얼굴 곳곳에 대비를 이뤄 포진하고 있는데, 이는 색체에 대한 마티스의 확고한 철학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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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아이바좁스키의 작품 속 풍경은 너무나 황홀하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의 그림은 실제로도 환상에 불가할지도 모른다. 그는 풍경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그대로 그것을 묘사하기 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담아낸 후 기억 속에서 각색되고 중첩된 여러가지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그림을 그리곤 했다. 화가의 머릿 속에서 어지러이 얽힌 이미지는 그의 손을 통해 이처럼 환상적인 모습으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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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자신의 삶이 어떠했든 오로지 한 가지 감정 만을 드러내는 작품을 그려낸 화가도 있다. 라울 뒤피의 그림을 본 그 누구도 그의 삶이 그렇게나 굴곡진지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그의 삶은 평범했고, 오히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구덩이 속에 처박히는 날들도 많았으나 그는 오로지 보는 이들에게 기쁨과 밝음 만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나는 앞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에 대한 다채로운 생각들을 꺼내 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화가의 확고한 철학이나 사상, 그의 감정이 묻어나는 작품이 있는 반면, 화가 자신의 감정은 한 편에 눌러 놓은 채 관람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그려낸 화가도 있었다. 어쩌면 작품과 화가가 완전히 유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질문에 대한 고민 없이는 작품의 겉면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스스로도 몰랐던 스테레오 편견을 깨주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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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을 읽으며 들었던 또다른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존재하고 있던 틀에 갇힌 생각들을 세상에 당당하게 맞선 여성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위 작품은 75세에 붓을 든 그레마 모지스의 <생일 케이크>라는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 속 가장 큰 매력은 시각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자극해 준다는 점인 것 같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신나게 떠드는 소리, 싱그러운 풀밭의 냄새 사이로 섞여 드는 맛있는 바비큐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이렇듯 생생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백발의 할머니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으레 포기하고 말았던 작은 꿈들이 떠오르곤 한다.


어린 시절 그 무엇보다 가슴 설레게 꾸었지만 현실의 벽이 높다는 이유로 꼬깃 꼬깃 접어 두었던 꿈들,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하고 미뤄두었던 로망들이 생각났고, 그것들은 부끄러운 감정들을 불러왔다. 나는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었다고, 원대한 꿈을 꾸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속단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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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연달아 이어지는 고갱과 고흐의 이야기는 내 안에 자리 잡은 무의식 속 또다른 편견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내가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접했던 것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서 였는데 공연에서는 아무래도 고흐의 이야기에 서사가 집중되어 있다 보니 내게 고갱의 이미지는 매우 단편적인 부분에서 그쳐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은 횡설수설하는 고흐의 엉성한 이야기들에 환멸을 느끼는 어딘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인상을 찌푸릴 것만 같은 고갱의 이미지는 <위로의 미술관> 속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완전히 반전되었다.

 

고갱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고흐 못지 않게 가난했고 역경에 물든 삶을 살았으며, 세련된 도시의 풍경보다는 문명이 닿지 않은 자연 속 그들만의 문화를 꾸려 가던 소수 민족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단편적인 시선으로만 그를 바라보았는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위로의 미술관>이 지닌 또다른 매력은 이렇듯 화가들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래서 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짚어주고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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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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