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진지한 작가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 - 우리가 사는 방식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글 입력 2021.06.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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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당시 작가가 되려던 25살의 시그리드 누네즈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서 편집 보조로 일하던 것을 계기로 이미 작가로서 인정 받아 유명했던 43살의 수전 손택과 인연을 맺는다. 만남을 이어가다 손택의 아들이자 작가였던 데이비드 리프를 소개받아 사귀게 되고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손택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도서 『우리가 사는 방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손택의 삶을 가까이서 함께했던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수전 손택에 관한 회고이다. 차분한 문체로 손택의 일상을 말하고 묘사하는 문장들은 수전 손택이란 인물이 지녔던 아우라와 서슴없던 삶의 태도를 예리하게 그려낸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라 불리지만, 환호와 모진 비판을 동시에 받아야 했던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그 강렬한 스포트라이트의 그림자처럼 밖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던 수전 손택이란 인물의 일상에 묻어난 삶의 태도부터 습관적이고도 사소한 움직임까지. 시그리드 누네즈는 그런 이야기 속에서 손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나는 『우리가 사는 방식』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삶의 태도와 그런 그가 남기는 것들 사이에 놓여있을 어떤 관계에 대해 질문했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듯 생생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과 함께 그저 삶 자체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되는 건 덤이었다. 그러면서 퍽 강한 인상을 주는 수전 손택의 이야기와 달리 꽤나 담담하게 느껴졌던 “우리가 사는 방식”이란 제목이 문득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간 방식이 그러했던 것이고, 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마주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

 

『우리가 사는 방식』

_시그리드 누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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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진지한 작가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이유 없이 그저 이야기가 궁금할 때가 있다. 특별한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우연히 마주친 것만으로도 없던 호기심이 일 때가 있다. 이번에 만난 도서 『우리가 사는 방식』이 그랬다. 수전 손택이란 이름이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글에 오르내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삶이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수전 손택을 『타인의 고통』이라는 저서로 기억하고 있었다. 고도화된 현대 기술과 함께 규모가 커진 전쟁의 참상, 그것을 생생히 전달하는 사진의 발달, 그로부터 시작된 이미지 과잉의 시대 속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사회의 모습을 파헤친 그의 유명한 글로 말이다. 한편 '수전 손택'은 내 관심사인 인문, 예술 분야 글을 읽다 보면 숱하게 만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내가 기억하는 수전 손택은 이 정도였다. 그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선명히 목격해온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기에 우연한 찰나에도 이 도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솔직하고 생생한 수전 손택의 초상을 마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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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든 자기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우스꽝스럽고 때로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지만 수전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수전은 자신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이었고 그게 못마땅한 사람은 꺼지라고 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걸 늘 불만스러워했다.

 

- 85쪽

 

 

수전 손택은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고를 통해 내가 이해한 수전 손택은 그랬다. 그저 가만히 앉아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혹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움직이고, 요구하고, 생각하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25살의 시그리드 누네즈가 되어 손택의 말을 직접 코앞에서 듣는 것 마냥 감정이 고개를 들 때마다 여러 의미로 그는 꽤 벅찬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일었다. 수전 손택 자신에게도, 그와 함께하던 이들에게도.


누구나 아픈 기억이 있고, 부족한 면모가 있으며, 약점을 지닌다. 손택을 그 모든 것을 그저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솔직하게 받아들였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밝혔고,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독설을 하면서도, 여전히 흔들리고 약한 모습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수전은) 가슴을 잃은 걸 ‘부끄러워’하기를 거부했고, 셔츠를 들어 올려 절개 흉터를 보여주었다. “대단하지 않아? 흉측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냥 삭제된 거랑 똑같아.” 정말 그랬다. 수전은 남자들에게,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가슴을 드러내 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누구나 궁금해하는 게 당연하고 누구든 움찔하지 않고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45쪽


 

수전은 혼자 있는 것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수전은 늘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혼자서 하려고는 안 했다. 수전에게 혼자 경험해서 더욱 강렬한 경험이란 없었다. 밥을 먹는다는가 하는 일상적 일도 혼자 한다면 수전에게는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혼자 집에서 밥을 먹느니 차라리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나가서 먹을 사람이었다.

 

- 107쪽

 

 

수전 손택은 혼자 있기를 견디지 못했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화면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했으며, 고요한 자연에 머물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더 많은 자극과 영감을 추구하던 그는 같은 영화를 25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매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나이나 세대에 상관없이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기를 바랐으며, 젠더에 상관없이 여성 예술가 역시 남성 예술가의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그런 모습들로 내가 이해한 수전 손택은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이따금 모순적이고, 그런 모순이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한 손택의 태도는 그러한 믿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전은 아주 가난한 사람만 아니면 누구나 자기 삶의 길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유보다 안정을 우선시하는 것은 개탄한 만한 일이라고 했다. 비굴한 일이라고.


수전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전은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주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늘 나에게 그 주도권을 잡으라도 닦달했다. “다른 사람들이 널 압박하도록 하지 마”라며 나를 압박했다.

 

-78~79쪽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수전 손택의 작가로서의 자신을 지키는 일은 그보다 더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작가의 기준은 아무리 높아도 지나치지 않아.” “강박적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난 강박적인 사람이 좋아. 강박적인 사람이 위대한 예술을 만들지”라고 말한 손택은 실제로 20쪽짜리 글을 완성하기 위해 책장 한 칸을 다 채울 만큼의 책을 읽고, 수없이 수정하기를 거듭하고, 각성제를 먹으면서까지 작업했다고 한다. 손택의 타자기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고, 그 타자기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는 누네즈의 회고는 그 노력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하게 했다. 그리고 누네즈는 “진지한 작가에게는 이게 보통이었다”라고 수전 손택을 회상한다.


한편 고집불통처럼 보이는 모습들도 있었다. “대체 왜?” 싶은 고집들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편한 삶보다 작가로서의 삶을 추구하고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에세이로 성공했지만 소설가로서 인정받고 싶어 주변의 만류와 회의적인 시선에도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수전 손택의 첫 책은 소설이었다고 한다), 작가로서 누군가에게 고용되거나 취직한다는 것 자체를 굴욕으로 여겼다는 이야기 등이 그러했다. 수전 손택은 돈이 부족한 상황에 대학 측에서 좋은 제안이 와도 그를 거절하고,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을 칭찬했다. 그리고 다른 일이 많아 글 쓸 시간이 없다고 징징거리는 작가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책을 빌려 보는 게 아니라 사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굴욕이었다. “대체로 수전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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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리드 누네즈는 책의 마지막 즈음에서 “존경하던 예술가의 실체를 보는 순간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하는 수전 손택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득 누네즈가 그런 이야기를 끝자락에 실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유명한 작가 손택의 삶을 정말 가까이서 함께하며 마주한 상황과 감정들이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산다는 건 상대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내밀하고도 답답한 모습들과 기꺼이 충돌해야 한다는 의미니 말이다. 책에서 시그리드 누네즈는 이해할 수 없던 손택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전체에서는 작가가 되려는 자신에게 마음을 담아 가르침을 주었던 수전 손택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나중에 각광받는 작가가 되는 누네즈에게 손택이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누네즈는 “작가라는 소명에 대해 진지하고 최고로 고양된 생각을 지녔던 사람”이 본보기가 되어주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들이 함께 산 기간은 2년 남짓이었지만, 손택이 남긴 가르침은 평생 누네즈를 떠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누네즈는 여전히 울림이 있는 손택의 목소리들을 들려준다.

 

- 책 소개

 


한 작가의 삶도 그러했다. 비범한 아우라와 함께 생기를 잃지 않은 눈동자로 세상을 응시하며 또렷하게 자신의 지성을 이야기할 것만 같은 그에게도 미처 드러나지 못한 약함과 부족함이 분명 존재했다. 누네즈는 수전 손택이 자신이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적을 가진 사람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누네즈의 글을 읽으며 그의 성공은 그리 달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향긋하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쓴 에스프레소처럼, 그 문장들을 쓰기 위해 그가 들이켰던 각성제처럼. 강렬하지만 그 끝은 그만큼 반짝이거나 활기찬 행복 같은 것이 아니었다. 열렬히 무엇인가를 토해낸 결과는 어떻게든 잔재하는 아픔이었다. 그래서 그런 고민이 떠오른 것이다. 글로 나의 것을 남기고 인정 받는다는 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그런 태도를 통해 비로소 쓰인 글이란 것의 관계는 무엇인지 말이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본받고 싶은 점들이 많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방식』을 읽는 내내 마음이 어느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곳곳을 배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작가로서의 삶을 오롯이 지켜내고자 했던 수전 손택의 태도와 노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미약하게나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작가 수전 손택을 계속 살피게 했다. 그런 작가도 매일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작가는 그만한 강박을 가져도 된다는 말에 왠지 모를 안도를 하면서도 조금은 괴로웠고, 몇 페이지의 글을 위해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수많은 수정을 거치며 주변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이야기에 그러지 못한 내 글들이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길을 걸으려 했던 시그리드 누네즈는 오죽했을까. 누네즈는 손택의 작가로서의 습관들을 따라 했지만 그것이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어느 시점이 되어 누네즈가 손택을 떠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에 거의 다다를 때 즈음에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적어도 ‘글을 쓰는 나’로서의 삶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기꺼이 살아가며, 그런 순간들을 겪으며 무엇을 써 내려가고 있는지.


『우리가 사는 방식』을 읽다가 이런 말을 떠올렸다. 한 대상이 눈에 보이며 분명히 존재함을 증명하는 건 빛을 마주한 그것에 드리워진 그림자일 것이라고. 수전 손택의 삶도 그러했던 것이다. 세상의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을 받는 그가 있었고, 그 뒤에 필연적으로 놓인 그림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런 그였기에, 그런 삶이었다’라고만 결론 내리려니 여전히 망설여진다. 아마 그에게서 비범한 삶의 태도와 모습들을 알게 모르게 보고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거듭 떠올린 생각 하나가 있었다. 그런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간 수전 손택이었기에 그런 글이 쓰였고, 그런 시대에도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으며, 그때 남겨진 유의미한 충격이 오늘날에도 무수한 글과 기억들 속에서 계속 이야기되고 있는 것일 거라고. 이것 하나만은 그의 삶을 마주하는 내내 나의 곁을 맴돌았다.

 

 


 

 

『우리가 사는 방식』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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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시그리드 누네즈

 

옮긴이

홍한별

 

분야

인문/에세이

 

면수

160쪽

 

가격

14,000원

 

발행일

2021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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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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