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위로 받지 못한 자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정체를 숨겨온 뱅크시. 그는 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예술가이다.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벽’,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메시지 짙은 ‘그래피티’와 개성이 분명한 작품들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그가 전한 메시지는 언제나 큰 공감과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 칭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선다. 그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동시에 그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들을 정면으로 겨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벽은 ‘거대한 무기’이자 그만의 ‘캔버스’다. <뱅크시 특별전>에서는 실제 벽을 마주할 순 없지만 사진과 모형을 통해 그 공간이 지녔던 분위기와 뱅크시가 그 벽에 담고자 했던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어 좋았다.
흔히 ‘벽’이라 하면 거리와 거리를 가로막는 장벽, 공간을 가로지르는 구조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히 드러내는 건축물이 떠오른다. 하지만 동시에 벽은 불특정 다수가 돈을 내지 않고도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그러니까 예술이 대가 없이 펼쳐지는 하나의 도화지이기도 하다.
시간과 돈을 들여 전시를 보러 가지 않는 이상,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그저 사치의 영역일 뿐이다. 아무리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해도 애초에 그 앞에 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메시지는 닿을 곳을 잃는다.
뱅크시는 벽이라는 매체를 택함으로써 이 구조를 뒤집는다. 불특정 다수를 한순간에 하나의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 공간은 누구나 흔히 오가는 영국의 길거리였고 그곳에서 그의 작업을 둘러싼 토론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평소 사회 문제에 무심했던 이들의 시선까지 붙잡아왔다.
다만 그의 작업은 벽에 칠한 단순한 그래피티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시의성이 짙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전 세계 특정 가능한 권력자들의 심기를 정확히 건드린다.
전시를 둘러보면 알 수 있듯 그는 유머를 적극 활용해 시대에 저항하고 풍자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미술시장을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겨냥하며 전쟁과 폭력, 권력과 감시에 맞선다. 전시에 소개된 여러 작품들을 통해 몰랐던 맥락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작가가 지향하는 작품 세계 전체를 조금 더 선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은 위로 받지 못한 자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처럼 그의 작업은 유머러스한 표현 아래 언제나 묵직한 메시지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냉소가 아니라 ‘희망’을 향해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전시 공간을 지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세상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어 인상 깊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시였다.
11월 3일까지 서울 더현대에서 열리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면 한 번쯤 가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