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림책 뜯어먹기 Part.2 – 지각대장 존 [도서]

존의 지각을 ··· 쉿 (응원합니다)
글 입력 2021.05.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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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각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지각하지 않았던 10대를 돌아보며

: 어린이·청소년 문학을 손에 쥐는 이유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의 개근상과 모범상이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으로 점철되었던 나의 10대를 상징하는 바다. 나는 때때로 이 증표들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나의 정체성 중 큰 부분을 이곳에 자발적으로 부여했다.

 

하지만 20대로 들어섰던 즈음을 기점으로 학창시절을 기억하는 방식의 모양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보다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시간과 일과를 관리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면서 차츰 각성하게 된 것이 주된 요인이다.

 

‘교칙’, ‘학생의 본분’ 따위로 강요되던 규율 중 몇몇은 인권 침해의 요소가 다분했다. 그러나 그 폭력성을 감각으로나마 체감하면서도, 나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두려웠다. 개근상과 모범상이 더는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도 같다. 학교사회 내 ‘타에 모범이 되는’ 학생은 - 적어도 나의 경우엔 - 1분만 늦어도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거나 선생님에게 미움을 사는 걸 내다보며 저 자리에 세워지는 게 두려웠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20대에 들어 그림책과 청소년 문학을 더 자주 펼쳐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림책 뜯어먹기’라는 제목으로 처음 기고했던 글인 [Opinion] 그림책 뜯어먹기 Part.1 - 마음의 집 [도서]의 시작도 같았다.

 

‘그림책 뜯어먹기’는 주 독자를 어린이로 두고 있는 책이라는 이유로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납작하게 취급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고 따라서 그림책의 작품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책 곳곳을 조각조각 뜯어 입안에 넣어보고 혀를 굴려 음미하고 뱃속에 저장하듯, 그림책 한 권을 오래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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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은 ‘지각대장’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의 이야기다. 존은 매일의 등굣길마다 기상천외한 일을 겪는다. 악어를 만나 실랑이를 벌이고 사자를 만나 바지를 뜯긴다. 다리를 건너는데 파도가 덮쳐서 다리 난간에 매달린 채 한참을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까스로 악어와 사자와 파도로부터 도망친 존은 뒤늦게 학교로 달려가지만, 지각을 면하지 못하고 선생님은 존이 등굣길에 겪은 일들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존의 반성문 분량은 300개의 문장에서 400개 그리고 500개로, 나날이 늘어간다.

 

 

 

면지, 본문과 독자를 연결하는 다리

: ‘I must not tell ‘lise’ about crocodiles and I must not lose my gloves’



앞표지를 넘겼을 때 가장 먼저 펼쳐지는 페이지와 뒤표지를 덮기 전 마지막 페이지, 이 두 공간을 면지라고 부른다. 면지는 겉표지와 속표지를 연결하는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한다. 앞뒤의 두 면지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지각대장 존』의 저자 존 버닝햄은 반성문 삽화를 통해 본문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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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진은 각각 순서대로 한국어 번역본과 원서의 면지다. 특히 원서의 면지에서는 왼쪽 페이지의 ‘lies’가 오른쪽 페이지에 ‘lise’로 잘못 쓰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틀린 철자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삽입한 작가의 선택이 인상적인 지점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반성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인물 존은 등굣길에 악어를 만나 장갑을 뺏기고 학교에 지각한다. 그리고 이에 선생님은 해명하는 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문장을 300번 쓰는 벌을 준다. 본문의 내용을 반영해 어린이의 실제 손글씨로 쓰인 반성문 면지는 독자로 하여금 본문의 서사를 풍부히 상상해보도록 한다. 더불어 반성문을 채워가는 인물 존의 곁으로 독자의 거리를 좁힌다.

 

독서 행위로서 면지를 읽을 때 작품은 독자의 안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책 한 권을 구성하는 것이 본문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걸 몸소 체감한다.

 

 

 

삽화, 존의 표정과 배경 공간을 중심으로

: 감정을 은폐함으로써 노출하는 것



알람을 10분 간격으로 맞춰두고, 알람이 울리면 끄기를 반복하는 동안 학교 가지 않는 상상을 했다.

 

핑계 삼기에 가장 좋은 건 날씨였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내 키만큼 쌓인 눈을 상상했고, 찬 공기에 얼어붙은 덜 마른 머리카락으로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타면서까지도 도로 정체로 2교시 정도를 땡땡이치는 그림을 기대했다. 물론 기대는 열이면 열 좌절됐다.

 

『지각대장 존』은 상상을 장면과 그림으로 실현한다. 다만 등교를 방해하는 존재들로 인한 지각이라는 ‘환상’적 서사에 반해 삽화의 이미지와 색채는 ‘현실’을 닮아 쓸쓸하고 고독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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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의 특징 가운데 가장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인물 존의 표정이다. 독자는 인물의 표정을 통해 인물의 마음과 감정을 읽는다. 하지만 존은 그려지지 않거나 모호하게 표현된 이목구비로 하여금 시종일관 무표정이라는 인상을 준다. 악어를 만나 가방을 빼앗길 때, 사자에게 바지를 뜯길 때, 분노에 날뛰는 선생님 앞에 서 있을 때도 존은 무표정으로 감정표현의 기호를 은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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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감정은 은폐와 동시에 노출된다. ‘은폐함으로써 노출한다’라는, 인과성을 강조한 문장이 좀 더 정확하겠다. 이는 인물 존이 한 페이지에 놓이는 방식 즉 구도적 측면과 더불어 표현된다. 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존은 대개 넓고 텅 빈 배경과 대비되어 왜소하고 작은 크기로 그려진다.

 

존은 표정 짓지 않지만, 등굣길의 회색빛 하늘 그리고 친구도 집도 꽃 한 송이도 없는 공허한 공간감이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존은 제 시간에 학교에 갈 수 있었’ 던 삭막한 마음을 설명한다.

 

 

 

서사, 환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다

: 존의 말은 사실일까 거짓일까



그림책의 분류법으로 내용에 따른 다음의 분류법이 있다. 초현실적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하는 판타지를 내용으로 하는 판타지 그림책,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거나 실제로 일어날 법한 사건을 내용으로 하는 사실주의 그림책.

 

하지만 『지각대장 존』의 존은 환상과 현실을 번갈아 오간다. 판타지 그림책 또는 사실주의 그림책 어느 한쪽으로 분류되기에 모호하고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등굣길(환상세계)과 학교(현실세계) 두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 모두를 신뢰하고 또 동시에 의심할 수 있고, 고로 다채로운 상상과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이 책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존의 말은 사실일까 거짓일까’라는 질문을 어린이 독자와 나누며 읽어도 재밌고 또 유익한 독서가 될 것 같다. 또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지각대장 존』의 다양한 서사 – 거짓일 경우 1 : 학교 가는 게 싫어서 등굣길에 꾀를 부려 놀다 온 존, 사실일 경우 1 : 등굣길에 존의 장갑을 빼앗고 바지를 뜯는 존재들을 악어와 사자와 파도로 비유, 거짓일 경우 2 : 악어와 사자와 파도는 지루한 등굣길에 존이 상상한 장면들 – 는 이 책과 독자를 둘러싼 세계를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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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의 해석을 신뢰하고 좋아한다. 존의 등굣길은 환상 그러니까 존의 즐거운 상상이었다는 해석이 나를 조금 더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어김없이 등교하는 존의 등굣길 삽화와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이 장면을, 선생님으로 인해 상상하지 않는 어린이가 된 존의 등굣길로 해석한 서사가 실제 현대사회의 모습과 가장 잘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어린이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화면이 낯설지 않은 화면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어린이의 상상과 진실은 자주 부정당하고 자주 폄하된다.

 

앞서 ‘그림책 뜯어먹기’를 통해 그림책 장르의 작품성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밝힌 바 있다. 그곳에서 더 나아가면 문학과 글을 통해 유년과 청소년 시기의 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현재 어린이·청소년의 삶과 이야기에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으로 또 한 번 넓어졌다. 폭력의 정체를 정확히 호명하지 못했고 또 몰랐지만 분명 어딘가 부당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느꼈던 걸 기억하며.

 

『지각대장 존』의 뒷이야기로 새로운 모습의 존의 등굣길을 상상한다. 악어와 사자와 파도가 있는 등굣길, 구름은 춤을 추고 바람은 노래하는 풍경,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존, 그리고 여전한 지각대장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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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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