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의 상상은 종이 위에서 현실이 되다 – 알렉산더 칼더 展 [전시]

움직임, 추상, 우주를 종이에 담다
글 입력 2020.02.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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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최근엔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되도록 외출하지 않으려고 하는 날들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집을 나서며, 마스크를 끼고 긴장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외출에 대한 기대감도 자리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칼더 展 또는 Calder on Paper라 불리는 전시는 올해 내가 관람하는 첫 전시였으며 K현대미술관도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전시회를 가는 것도, 새로운 미술관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도 꽤 즐거웠지만 이번 외출에서 가장 내가 기대했던 점은 거장 조각가의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칼더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라 불린다. 키네틱 아트의 kinetic은 움직임을 뜻하는 그리스어 kinesis에서 유래했다. 자체적으로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이 조립된 예술 작품을 표현하는 용어인 키네틱 아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칼더의 모빌과 스태빌은 항상 언급된다. 이렇게 움직이는 조각의 창시자인 칼더의 또 다른 작품 세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쉬이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시는 3층에서 시작해 2층에서 끝나는 구조였다. 안내 데스크 직원은 표를 건네주며 전시관에서 플래시나 삼각대와 같은 촬영기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전시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운영 방식에 변경된 부분이 있나 생각하며 전시관으로 향했다.




움직임의 예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전시관 입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K현대미술관과 칼더라는 글자를 활용한 타이포그래피와 칼더의 사진들, 전시의 소개를 훑어보고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칼더의 일생 연대기를 지나면 가장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드로잉 회화이다.


대학 졸업 후, 모친의 도움으로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한 칼더는 야간 드로잉 수업을 받았다. 당시 그에게 드로잉을 가르쳐주었던 스승의 도움으로 칼더는 경찰 관보 삽화 일을 제안받기도 했으며 동물원을 다니며 스케치를 해 동물 드로잉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취재차 서커스 단원들을 2주간 따라다니며 공연 단원 및 동물들을 삽화로 남겼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드로잉은 칼더의 예술 활동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대다수가 동물, 서커스 단원을 주제로 한 드로잉 작품인데 가만히 있는 정적인 순간을 포착했다기보다는 대상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다. 역동이 드러나는 드로잉들을 보고 있자면 화가로서의 칼더를 만나는 동시에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세계가 조각에만 그치지 않고 회화에도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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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작품을 관람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서커스 공연장 같은 공간이 드러난다. 칼더의 서커스 공연장을 재현한 조형물과 함께 빨간 벽에 옛 서커스 공연의 홍보물들이 붙어있고 실제 서커스 영상물이 한 편에서 재생되고 있다.

 

칼더는 생전 모형 서커스 공연을 진행했는데 철사, 가죽 천 등으로 동물 및 서커스 단원을 만들어 자신이 직접 조종하는 방식의 공연이었다. 단순해 보이는 자재들을 이용해 곡예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칼더 자신이 직접 조작하며 공연을 진행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칼더의 작업 및 공연 영상에 이어서 재생되는 실제 서커스 영상과의 비교를 통해서커스에 대한 그의 애정과 뛰어난 관찰력을 알 수 있다.

 

서커스 공간을 지나면 다시 회화 작품들이 이어진다. 칼더가 디자인한 “메타볼”이라는 현대 무용 의상 디자인 등의 회화 작품들을 관람하며 나아가다 보면 다시 새로운 체험 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몬드리안에게서 영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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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노란색, 파란색과 검은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칠해진 직사각형 모형들 그리고 선들이 이어진 공간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큐브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에 자리한 큐브에는 거울이 달려 빛이 반사되는데 이는 칼더의 증언에 따라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재현한 것이다.

 

실험을 위해 직사각형 색깔 종이들을 배치한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당시 칼더는 그 장소에 매료되었고 이어서 몬드리안에게 방 안에 직사각형들이 움직이면 재밌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몬드리안은 자신의 그림은 이미 충분히 빠르니 그럴 필요 없다고 답하고 그가 흥미를 느끼지 못한 방식을 칼더는 자신의 작품에 적용한다. 기하학적 형태의 추상회화는 단색으로 채워지고 이후 추상 미술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칼더의 과정은 모빌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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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방 체험 공간을 지나면 칼더의 추상화, 과슈화 작품들이 벽에 걸려 있다. 칼더는 구의 형태 및 자연 등을 회화의 소재로 사용했는데 사진에서와 같이 뱀과 도형을 소재로 하고 몬드리안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색들로 채워진 과슈화를 확인할 수 있다.

 

칼더도 원래 유화를 그렸으나 상대적으로 마르는 시간이 더 짧고 작업하기 쉬웠던 과슈화를 선호했다고 한다. 자유롭게 작업하기에 유화보다 빨리 마를 수 있는 과슈화가 칼더에게 더 맞았을 것이다. 전시관에 계속 이어지는 과슈화 작품들은 그가 얼마나 과슈화를 좋아했는지 짐작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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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슈화 회화 작품들을 지나다 보면 미술관에서 꾸민 초현실주의 공간이 나타난다. 주홍색 벽지에 가시 달린 나무에 둘러싸인 매트리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떠올리게 하는 켜진 텔레비전들. 텔레비전에는 각자 다른 초현실주의를 주제로 하는 듯한 영상물이 재생되고 있다. 그리고 이 공간에 대해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칼더의 작품 세계를 돕기 위해 꾸민 미디어 아트 공간이라는 설명이 자리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예술가들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칼더도 마찬가지였다. 몬드리안과 더불어 칼더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던 호안 미로는 지속적으로 칼더와 교류하며 친분을 이어갔고 이를 통해 칼더는 초현실주의의 핵심 요소를 받아들이게 된다. 초현실주의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인 무의식의 세계는 칼더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칼더는 자연의 물체들을 점점 단순화하며 유기적인 미생물과 유사한 형태로 표현했고 이는 후에 모빌에도 반영된다.

 

 

 

상상을 현실로


 

 

내가 받은 첫 번째 영감은 우주, 행성계였다.
The first inspiration I ever had was the cosmos, the planetary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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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관람을 마치고 2층으로 내려가 본다. 익숙한 풍경의 전시관 입구를 지나자 다시 칼더의 과슈화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의 과슈화는 3층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칼더 특유의 단색과 추상적인 소재로 그려졌지만 우주, 행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해와 달, 행성을 그린 작품들과 울을 소재로 만든 작품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관에는 칼더의 과슈화 작업 방식에 대해, 상상 속의 것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방법에 대한 칼더의 생각도 읽어볼 수 있다. 자신만의 색과 방식으로 비슷해 보이면서도 같지 않은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내며 칼더는 자신이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상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그려내고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 상상은 현실이 되고 그렇게 자신의 상상을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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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상상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그 무언가를 현실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Once you imagine it, you can be realistic about reproducing it.

 


우주, 사람과 도형, 그리고 스태빌과 조각 작품에 관한 회화 및 실제 그의 조각품을 보며 앞으로 나가다 보면 ‘전시공간이 이어집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문이 앞에 나타난다. 이 문 너머 무엇이 있을까, 문고리를 돌리자 칼더의 모빌을 토대로 꾸며진 공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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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더의 모빌이 주는 단색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색으로 꾸며진 모빌이 걸린, 형광색의 빛과 수식이 가득 적힌 검은 벽에 둘러싸인 공간을 지나며 여기가 전시의 마지막인가 생각했는데, 다시 과슈화 작품들과 천장에 걸린 해먹이 등장한다. 왜 해먹이 있을까 싶었는데, K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직물 작업도 진행했던 칼더는 종이에 해먹의 모형 역할을 하는 스케치를 그려놓기도 했다. 해먹은 천연 섬유만 사용해 직접 장인들의 손으로 짜였고 칼더 특유의 색감을 표현하는 유럽산 염료로 칠해졌다. 생전 인도주의적 운동에 헌신했던 칼더는 자신의 작업물을 판 수입을 중앙아메리카 지진 피해자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해먹 작업물이 마음에 들 경우 칼더는 자신의 집에 걸어두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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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예술은 재미있어야 한다.
Above all, art should be f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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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관람한 후, 칼더에게 자신의 상상 속의 이미지를 종이로 풀어놓는 것은 즐거운 작업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문화 비평에서 칼더의 커리어는 즐거움과 유머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었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의 여러 드로잉 및 과슈화 작업들을 전시를 통해 확인한 후 그때 그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체험 공간들은 칼더의 주요 예술 활동 및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몬드리안의 작업실과 초현실주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 같았다. 또한 구구단의 멤버 세정이 참여한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이어지는 설명도 편안하고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글을 마치기 전에 아쉬웠던 부분도 언급하려고 한다. 서커스 및 초현실주의 체험 공간에서는 서커스의 포스터 및 관련 예술가들의 단체사진이 선명하지 않고 이미지가 깨진 채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오래된 사진을 필요에 맞게 편집하는 것이 어려웠으리라 생각은 들지만 결과적으로 전시에 질을 낮추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며 크게 아쉬웠다. 또한 몇몇 작품은 제목이 표기된 라벨이 떨어지려고 했는데 이런 부분은 더 섬세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또한 전시에는 칼더의 작업실이라는 체험 공간이 있으며 전시관 입장 전에 챙겼던 팸플릿에도 이 부분이 명시되어 있는데 모빌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관람하던 당시에는 내가 착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체험 공간을 상시적으로 다른 주제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인지 그렇다면 홍보물 및 팸플릿에는 왜 현재 진행하는 체험 공간이 아닌 부분을 명시해두었는지 이 점도 의아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움직이는 조각의 선도자로 알려진 예술가의 다양한 회화 작품을 볼 수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흥미롭게 관람한 전시였다. 앞으로 K현대미술관의 이어지는 전시들이 다양한 예술가의 삶을, 그의 즐거움 및 열정이 담긴 작품을 소개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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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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