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는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평가가 나뉘었던 영화이다. 이는 단순히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의 기괴함과 시각적 충격 때문은 아니다.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나타내려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느낀 결과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충격은 두 겹으로 쌓여 있다. 첫 번째 충격은 시각적 충격이다. 영화를 처음 보면 바로 보이는 것들이다. 대리석으로 변하는 질병, 붉은 모래로 표현되는 병자들의 피와 병에 걸린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흐르는 피, 불결한 피의 찐득한 심상.
하지만, 이 영화는 줄리아 뒤쿠르노의 영화다. 그는 첫 장편 데뷔작인 <로우>부터 카니발리즘을 다루며 페미니즘과 바디 호러를 결합한 스타일로 주목받았고, 다시 <티탄>을 통해 바디 호러의 신예로 떠올랐다. 두 번의 작품만으로 이런 주목을 받은 스타성으로, 사람들은 당연히 시각적 충격을 예상했을 것이다.
두 번째 충격은 바로 영화가 예상만큼 기괴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감독의 전작들을 비교하였을 때 '소프트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영화에서 주사 바늘이 살에 들어가는 장면 등 바디 호러를 일으킬 만한 장면을 일부러 강조하지 않고 최대한 간접적으로 보이려 노력했다고 했다. 바로 여기서 <알파>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감상하였을 때 더욱 매력적인 영화이다.
<알파>는 어렵고 모호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단순한 영화다.
알파는 13세 소녀로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의도치 않게 비위생적인 바늘로' 타투를 받게 된다. 문제는 알파가 살고 있는 시대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시기이고, 알파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수 있다는 오해에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이 시작된다.
한편, 의사인 엄마와 함께 사는 알파는 갑자기 나타난 - 사실은 어렸을 때 보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 삼촌 아민의 존재에 낯설어한다. 아민은 약물 중독자로, 알파와 같이 비위생적인 바늘을 사용해 병에 걸리게 되었다. 엄마는 알파 역시 감염되었을까 전전긍긍하지만, 알파는 삼촌과 엄마의 관계를 지켜보며 가족의 혼란을 조용히 함께한다.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8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의 에이즈 파동을 은유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감염병, 주사 또는 성적 접촉으로 인한 감염, 전염 공포, 여기에 더해 'A'를 새기는 문신까지 더하면 질병과 낙인으로 얼룩진 지난 에이즈 시기를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감독은 청소년기에 에이즈 파동을 지켜보며 자란 세대이다. 따라서 <알파>에서 알파가 겪는 혼란은 감독이 겪었을 혼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화의 시퀀스가 다루는 시점도 다르고, 정확한 병의 원인이랄지, 스토리를 명확히 진전시킬 만한 단서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혼란을 느꼈던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비슷하다.
영화는 명확하게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에 대한 차별에 징벌을 주거나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소녀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잊힌 혼란(에이즈)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다.
알파의 시선으로 엄마가 느끼는 두려움과 가족애를 바라본다면, 영화는 조금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