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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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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숙한 세일즈>의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 드라마 라인업을 뒤적이다 보면 눈에 튀는 시리즈를 하나 볼 수 있었다. 색색깔 화려한 듯 촌스럽게 꾸며진 포스터. 그 속에 보이는 당당한 듯 웃고 있는 여자 넷의 얼굴. 누가 봐도 역설적으로 지은 것이 분명한 카피와 제목. 다소 ‘과하다’고 느껴지는‘그 시대’의 레트로한 느낌. JTBC의 토일 드라마 <정숙한 세일즈>를 말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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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세일즈>가 시작하고, 시청자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성인용품 방문 판매’라는 소재에 있다. 지금 생각해도 제법 자극적이고 흥미가 돋는 소재 아닌가? 게다가 드라마의 배경은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다채로워지기 시작하던 90년대, 그러나 성 관념에 관한 변화에 있어서 아직은 더딘 (충청도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한) ‘금제군’이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역동적이었던 한 시대와 가장 변화가 늦게 찾아오는 곳에서 일어나는 ‘란제리 소동’을 다룬 극인만큼, 기대감(과기묘한 두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소재의 자극성에서 터져 나오는 도파민이 기대되면서도, 주인공이 겪게 될 수많은 난관을 미래에서 바라보는 우리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숙한 세일즈>는 성공적으로 이런 갈등과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의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혼’을 둘러싸고 여성에게 더 엄격하게 가해지는 평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고충,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사회적 편견이 가득한 일을 맡아서 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문제를 부드럽게 조명하는 한편, 특정 집단만 남기는 선택지를 제외하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안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이유는 바로 ‘모두 함께 공존하자’는 뻔하지만 정석적인 대안을 부드럽게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지점이 있다. 아주 은밀하고 아닌 듯 천연덕스럽게 존재하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그렇지만 현대 한국 사회를 생각했을 때 정말 탁월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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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세일즈>는 시작부터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관념적으로 생각해 왔던 ‘가족’이라는 형태를 부수기 위해 달려간다. 주인공 정숙의 가정부터가 그렇다. 정숙은 남편 사이에 아이 하나를 두며 살아가는, 정말 평범한 가족을 꾸려 살아간다. 가난이 그의 가정을 조금 고달프게 하지만, 사실 세 가족이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남편의 문제적 행동으로 인해 정숙의 가정은 위기를 맞이한다. 남편은 어려운 취업 시장에 헤매면서 정신적으로 가족에 뿌리를 두지 못하고 밖으로 돌아다니고, 결국 아내의 친구와의 불륜으로 인해 정숙과 별거, 결국은 이혼하게 된다. 정숙의 가정은 파일럿 에피소드인 2화 만에 해체된다.

 

그런데 정숙이 가장의 자리를 맡고 돈을 벌기 위해 방문판매 일을 시작하면서 보이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주리다. 주리는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명 ‘미혼모’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90년대임에도 아이가 없이 살아가는 금희네, 오히려 너무 금슬이 좋아 네 아이를 키우는 영복의 가정도 있다.

 

이들은 정숙과 잘 어울리며 살아간다. 주리는 가벼운 여자라는 편견을 겪고, 영복은 아이를 많이 낳아 가난하다는 현실에 몸부림치고, 금희는 넓은 집에 가정주부로 살며 소원한 남편과의 관계에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가족이 완전히 새로운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의 사연은 숨 쉬듯 자연스럽다.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정숙한 세일즈>의 핵심은 사실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다양한 형태인 가족의 사연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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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이야기를 정말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은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금제경찰서로 전근 온 김도현 형사의 이야기다. 그는 오랫동안 동일한 삶의 방식을 유지해온 작은 집단에 나타난 충격이다. 고로 그는 금제 군민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이방인이다.

 

이 이방인이라는 김도현 형사의 입지는 그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입양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그의 삶의 궤적과 공명한다. 그는 30년이 넘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찾다가 금제까지 오게 된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속에서 가족이라 함은, 고등학교 때까지 자신을 길러준 미국의 양부모가 있는 가족이 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자신 혼자로 구성된 ‘1인 가정’이다.

 

그런 그의 깊은 고독을 생각하면, 사실 도현은 금희의 친아들이었고 금희의 사정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는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결말이 허무하고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도현은 그토록 찾던 ‘진짜’ 가족을 찾고, 아이가 없던 금희의 가정에도 도현이라는 자녀가 생긴다는 결말, 참 요상한 기분을 준다. 그렇게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던 드라마가, 결국 결말에서는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정상 가정을 다시 이룬다고?

 

그러나 나는 금희와 도현이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음에도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것을 ‘선택’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들이 원래는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는 점. 합의를 통해 이들은 지난 세월 동안 살아온 가정과는 다른,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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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꾸린다는 것의 의미가 바뀌고 있는 세상이다. 이제는 구성원을 선택해, 법적으론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거의 피로 연결된 가족과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이 피로 연결된 가족과의 불화로 괴로움을 느껴 새로운 가정을 꿈꾸는 사람이 많이 가시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관점에서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극에서 등장인물이 직접 선택한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는 결말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그것은 시청자들의 상황과 사고에 맞추어 판단할 일이다. 하여튼 나는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봤고, 그렇기에 <정숙한 세일즈>가 생각보다 가족의 해체와 그것으로 인해 우울해진 현대인들에 대안을 제안해 주는 기분 좋은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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