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음악이 만난 이틀, 더 글로우 2026
3월의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주말,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각자 좋아하는 아티스트 이름이 적힌 슬로건을 든 사람, 굿즈 부스를 어떻게 공략할지 이미 작전을 짜둔 것 같은 사람, 친구와 떠들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 입장 전부터 이미 분위기는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머릿속에서 "페스티벌"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재정의됐다.
더 글로우 2026(THE GLOW 2026)은 그런 페스티벌이었다. 무대 앞에 서서 음악을 듣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공간 전체를 관객이 직접 채워가는 방식의 축제. 3만 5천 명이 모였다는 숫자보다, 그 공간 안에서 느껴지던 에너지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세 개의 무대, 이틀이 모자란 선택지
더 글로우(THE GLOW)는 공연 기획사 원더로크(WANDERLOCH)가 운영하는 실내형 뮤직 페스티벌이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했고, 3월 21일부터 22일까지 양일간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렸다. 전년 대비 관객이 약 40% 늘었다는 게 공식 집계인데, 현장에서 체감하는 밀도도 확실히 달랐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간의 확장이었다. 기존의 Stage 37, Stage 126 두 개 무대에 더해 신규 무대 'Stage X'가 새롭게 추가됐다. 세 개의 스테이지가 동시에 돌아가다 보니, 타임테이블을 들여다보며 어느 무대로 이동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가 됐다. 사실상 이틀로도 모자랄 정도의 선택지였다.
라인업은 양일 합산 38팀. 밴드 기반의 페스티벌이라는 인상은 여전하지만, 한자리에 모인 음악의 색깔이 다양해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 아티스트"를 우연히 마주치고 좋아하게 되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구성이었다. grentperez, Cafuné 같은 해외 아티스트들까지 포함되어, 페스티벌이 국내 씬 바깥으로도 시선을 넓히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실내라서 가능한 것들
더 글로우를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페스티벌의 가장 큰 특징은 실내라는 조건을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공연장 곳곳에 빛을 활용한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글로우(GLOW)'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야외였다면 낮에는 아예 의미가 없었을 것들이, 어두운 실내 공간 안에서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살아났다. 공연을 보는 중간중간 그 빛 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페스티벌의 한 구성원이 된 것 같았다.
신설된 Stage X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이었다. 기존 두 스테이지와는 다르게 설계된 이 무대는 관객이 아티스트를 가까이서 둘러싸는 구조로, 공연 특유의 몰입감과 참여감을 극대화했다.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감이 물리적으로 굉장히 가까워졌다.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무언가를 겪고 있다는 느낌이 다른 스테이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세 개의 스테이지가 다른 홀에 퍼져 있는 구조임에도 이동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공연이 끝나고 다음 무대로 넘어가는 타이밍에도 흐름이 자연스럽게 유지됐다. 공간이 닫혀 있다 보니 관객들의 이동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덕분이다.
공연장 열기에서 벗어나 잠깐 앉아서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물품 보관소도 운영됐다. 포토존도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어서, 공연 사이 빈 시간에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코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티스트의 공연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킨텍스에 있는 내내 뭔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DAY 1 — 장르를 넘나드는 하루
1일차는 리도어, 한로로, 솔루션스 등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아티스트들이 분위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흐름이었다. 리도어는 미발매 곡 'Feathers'를 공개하며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고, 한로로는 공연 중간 의상을 갈아입는 등 무대 하나하나를 알차게 꾸리며 특유의 힘있는 에너지로 공연장을 들썩이게 했다.
Stage X에서는 놀이도감이 무대 구조와 맞물려 독특한 공연을 선보였다. 관객이 아티스트를 가까이서 에워싸는 형태가 이 팀의 실험적인 사운드와 잘 어우러졌고, 미발매곡 'Iwassolo'를 공개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시카고 출신 인디 팝 밴드 The Walters가 특유의 나른하고 달콤한 분위기로 Stage 126의 관객을 사로잡았다. 틱톡 바이럴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워진 팀인데, 라이브는 녹음보다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다.

1일 차의 마무리는 이승윤과 장기하가 각자의 무대에서 장식했다. 이승윤은 앙코르까지 18곡을 소화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밀도를 유지했다. 라이브를 볼수록 더 좋아지는 타입의 뮤지션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무대였다. 장기하는 풍문으로 들었소, 달이 차오른다 가자가 흘러나오는 순간 공연장의 온도가 확 달라졌다. 오랜 곡들이 라이브에서 얼마나 다른 질감으로 살아나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DAY 2 — 이틀의 끝을 제대로 닫다
2일 차는 신인류가 Stage 37의 문을 열었다. 독자적인 음악 언어로 씬 안에서 존재감을 쌓아온 팀답게, 처음 접하는 관객도 공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Stage 126에서는 까치산이 무대를 이어받았다. 곡마다 인트로를 붙여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에너지를 쌓아 올리다가 터뜨리는 타이밍을 잘 아는 팀이었다.
Stage X에서의 봉제인간은 변칙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가까이서 마주하는 무대 구조와 특히 잘 맞았고, 신곡 두 곡을 공개하며 다음을 기대하게 했다. 백현진은 원래부터 미발매 곡을 무대에서 거침없이 선보이는 아티스트다. 이번에도 그 색깔 그대로였다. 장르 불명에 가까운 사운드,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가사, 그걸 아무렇지 않게 무대에서 풀어내는 태도. 처음 접하든 오래 알아왔든 같은 농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무대였다.

이틀의 마무리는 Stage 37의 혁오와 Stage 126의 이찬혁이 맡았다. 혁오는 7년 만에 서는 단독 페스티벌 무대인 만큼 현장 반응이 유독 뜨거웠다. 위잉위잉부터 TOMBOY까지 이어지면서 후반부에서는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움직였다. 이찬혁은 인트로를 붙여 곡과 곡을 연결하는 흐름이 단순한 셋리스트 이상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찬혁이 그리는 사랑의 형태는 무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더 글로우가 만들어가는 것

더 글로우 2026을 다녀오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감각은, 이틀이라는 시간이 하나의 공연으로 기억된다는 거였다. 특정 무대의 잔상이 남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공간 안에 있던 전체적인 느낌이 더 먼저 떠오른다.
작년에 비해 스태프들의 움직임도 한층 프로페셔널해졌다는 인상이 강했다. 동선 안내부터 무대 전환까지, 대형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노하우가 쌓이고 있다는 게 곳곳에서 느껴졌다. 출중한 라인업, 세심한 공간 설계,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단단해지는 운영까지. 어쩌면 머지않아 국내 실내 페스티벌 하면 가장 먼저 더 글로우를 떠올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러 갔다가, 페스티벌이라는 형식 자체를 좋아하게 되어 돌아오는 경험. 그게 더 글로우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