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낯선 존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기에,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불안해진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는 익숙한 관계 속에 머무르고자 한다. 그리고 익숙함의 바깥에 남겨진 존재들은 위험하고 불쾌하며, 때로는 배제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낯섦은 그렇게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경계와 선별로 이어진다.
자연은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동시에 가장 낯선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손길 아래 정돈된 자연은 아름다운 풍경과 정원이 되지만,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자연은 언제든 재앙과 위협의 상징이 된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 가까이에서 살아가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동물은 사랑하고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생활권 바깥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을 위험하고 더러운 존재로 여기곤 한다.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는 자신 바깥의 존재를 선별하여 통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극 '인간동물들'의 무대는 비닐 커튼으로 둘러싸인 무균실처럼 꾸며진 공간이다. 그리고 연극은 그 공간의 문을 두드리는 듯한 비둘기의 충돌로 시작된다. 창문에 갑작스럽게 부딪힌 비둘기는 불쾌하지만 동시에 금방 기억에서 잊힐 별거 아닌 사건이다. 그러나 이 작은 충돌은 평화로워 보이는 인간의 일상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극의 초반, 인물들은 서로를 적극적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세상을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며, 서로의 눈조차 쳐다보지 않고 대화하는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익숙하고 친밀한 대상과만 대화를 나누며, 그런 이들을 투명하고 동시에 묵직해 보이는 비닐 커튼이 감싸고 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며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이 경계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커튼은 마치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격리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음 동물의 갑작스러운 출몰과 죽음은 인간에게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일상을 방해하는 귀찮고 불쾌한 사고에 가깝다. 그러나 동물의 죽음이 반복되고 공격이 시작되며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들은 다 같이 격리되고, 동물 학살이 시작되며 인간은 자신이 더 이상 안전한 세계의 내부에만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시선과 태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물의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비현실적인 낙관을 유지한 채 집의 화장실에 동물들을 숨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지키기 위해 집세를 내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들이 선하거나 악한 인간으로 구분되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재난은 지금까지 유지되던 관계와 판단의 기준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특히 이 연극에서 중요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인간의 시선과 위치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구분해 왔다. 어떤 동물은 보호하고, 어떤 동물은 제거하며, 어떤 존재는 인간의 공간 안으로 들이고 어떤 존재는 바깥으로 내보낸다. 인간은 자신을 안전한 위치에 서서 타자를 선별하는 주체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재난이 확장될수록 인간 역시 선별의 대상이 된다. 동물을 격리하고 제거하던 인간들은 이제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보호와 격리 사이 규정의 과정에 놓인다. 인간은 선별의 주체에서 선별의 대상으로 바뀐다.
극의 초반,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세상을 관망하던 인물들은 사건 이후 점차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비닐 커튼의 바깥으로 나아간다. 안전과 위험 사이를 나누던 경계는 더 이상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고,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세계 바깥을 바라본다.
작품의 대화 사이에는 ‘블링크(Blink)’라는 짧은 장면이 삽입된다. 앞으로 나아가던 서사는 잠시 멈추고, 명확하게 발화의 주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짧게 바깥의 세상을 묘사한다. 이는 인간과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서사에 균열을 만들며, 관객에게 서사 바깥의 세상을 상상해 보도록 만든다.

연극은 본래 인간중심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인간 배우가 무대에 올라 인간 관객을 향해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 물론 수많은 연극에서 비인간 동물을 다뤄왔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의 주체로서 등장하기보다는, 결국에는 인간의 삶과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소재로서 존재했다. 인간이 만들고 소비하는 연극에서, 과연 비인간 동물을 주체로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
'인간동물들'은 재난의 상황 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흔들며, 인간의 서사가 닿지 못하는 바깥을 그려낸다. 비닐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간 인물들은 공원에서 시위를 벌이고, 이전에는 마주할 일이 없었던 낯선 타인을 만난다.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믿음 역시 그 과정에서 무너진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들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2016년에 쓰인 텍스트임에도, 격리와 재난이라는 키워드는 오늘날의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일상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불안은 기후 위기,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은 특정한 하나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자신에게 닥쳐온 낯선 위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배제해 왔는지를 되묻게 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비인간의 세계를 완전히 비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동물들'이라는 제목에서조차 ‘인간’은 끝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연기하며, 인간이 바라보는 연극 안에서 비인간을 완전히 재현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실패가 시도를 멈춰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바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다른 세계를 향한 움직임은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끝내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두려워하고, 바깥으로 밀어내고, 경멸하는 대신 그 낯선 존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는 계속할 수 있다. '인간동물들'은 인간이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시선 속에서, 그 시선의 바깥을 바라보려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