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에서 아이들은 해가 지면 학교에 간다. 정부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표준시를 바꾸면서, 사람들의 생활 리듬도 완전히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준다는 ‘시계모자’까지 등장한다. 아이들은 머리에 시계모자를 쓴 채 수업을 듣고, 정부가 약속한 대로 성적은 눈에 띄게 오른다.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학교에 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를 머리에 쓴 채로 공부하는 아이들. 얼핏 보면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디스토피아의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시계모자 자체가 아닌,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가는 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기 위해 망가지는 아이들
시계모자는 분명히 효과를 보인다. 아이들은 이전보다 높은 점수를 받고, 학업 성취도 역시 올라간다. 문제는 그 대가다. 시계모자를 사용한 뒤부터 아이들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일부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시계모자를 쉽게 벗지 않는다.
만약 시계모자가 아무런 효과도 없는 장치였다면 이야기는 오히려 간단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위험하기만 한 물건이라면 벗으면 된다. 하지만 시계모자는,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동시에 성적을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건강과 일상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벗는 순간 지금까지 얻어온 성과를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조금 힘들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견뎌야 한다는 것. 지금의 고생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남들보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 좋은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는 좀처럼 돌아보지 않게 된다. 결국 아이들은 더 잘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내어준다. 잠을 줄이고,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겨도 시계모자를 벗지 않는다.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오히려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나만 멈출 수 없는 이유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시계모자를 벗지 못할까. 시계모자는 정부가 도입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그것에 매달리게 된 이유는 바로 ‘경쟁’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시계모자를 쓰고 성적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만 모자를 벗어버리기란 쉽지 않다.
이쯤 되면 시계모자는 더 이상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기묘한 발명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경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입시를 지나 대학에 들어오면 학점과 자격증, 대외활동과 취업 준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나의 목표를 끝내도 마음을 놓기는 어렵다. 곧바로 다음 할일이 생기고, 잠시 멈추는 것조차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계모자가 무서운 이유는 강제로 씌워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벗지 못하게 된다. 멈추면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이, 멈추고 싶다는 마음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아름다운 나라인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아이들은 중앙시계탑을 무너뜨린다. 자신들의 시간을 지배하던 시계를 부수고 그 앞에서 환호한다. 적어도 작품 속 세계에서는 무엇에 맞서야 하는지가 분명하다. 머리 위에는 시계모자가 있고, 학교 옥상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벗고, 또 부수면 된다.
현실은 조금 다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시계모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가 씌워준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선택해 쓴 것인지조차 명확하지가 않다. 성적에서 대학으로, 대학에서 취업으로, 취업에서 또 다른 성공의 기준으로 그 이름만 바뀔 뿐이다. 하나의 모자를 벗었다고 생각하는 사이, 새로운 모자를 쓰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속 사람들이 원하는 것 역시 처음부터 불행한 사회는 아니었을 것이다. 더 발전한 나라, 더 경쟁력 있는 나라,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표만 놓고 보면 모두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을 잃고, 건강을 잃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시간까지 잃는다면 그곳을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한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뒤처질까 두려워하지 않고 잠시 멈출 수 있는지, 조금 덜 잘해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지, 남의 속도가 아닌 자신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지. 우리가 살아갈 만한 사회는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리는 곳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아도 되는 곳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