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어떤 여자들의 이야기 [도서/문학]

소설 <우유, 피, 열>을 읽고

by 김유정 에디터
2026.09.03 10:41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131.jpg

       

       

      *

      이 글은

      소설 <우유, 피, 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친구의 권유로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서사가 아닌 짧은 분량을 읽고 남는 충격이 불쾌함처럼 다가올 때가 많다고 느껴, 단편을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는 정말 오랜만의 단편소설집이었다. 그렇게 읽은 단시엘 W. 모니즈의 소설집 <우유, 피, 열>은 내가 읽은 소설 중 가장 묘하고 충격적인 불쾌를 남긴 소설이 아닌가 싶다.


      총 11개의 단편을 합친 이 단편집은 11개의 이야기 모두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흑인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두고 있다. 이야기마다 사춘기 소녀부터 젊은 여성, 엄마가 된 여성 등 다양한 나이대가 등장한다.

       

      이들이 겪는 세대 간 갈등, 종교적 문제를 비롯해 여성성, 그들을 괴롭히는 폭력 등 다양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소설 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낸다. 책 속 내용이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주인공들의 색이 너무 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완독을 해냈다. 며칠에 걸쳐 책을 읽으며 많은 피로감을 느껴 한 번에 2편 정도의 이야기밖에 읽지 못하였는데, 전형적으로 익숙한 캐릭터가 단 하나도 없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그중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향연]이다.

       

      주변에 임신한 지인들이 보이기도 하고, 우리의 부모님들에게도 유산은 슬프지만 빈번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한 생명이 한 생명의 뱃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생명을 품고 있는 여성, 엄마는 어떤 마음일까? 유산으로 슬픔을 느낀 적은 있어도 아픔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유산을 겪은 후 죽은 아이의 환각을 느끼는 등 극심하게 고통스러워하고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한다. 이에 남편은 공감하려 시도하면서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몇 달을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주인공은 수조 속 문어가 스스로를 뜯어먹으며 자해하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데, 유산한 여자가 오로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건 자신을 뜯어먹는 문어라는 사실에 유산이 매우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여자임에도 유산에 대해 깊게 공감하거나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여성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유산의 고통을 충격으로나마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그런가 하면,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모성애로 이어지는 심경의 변화를 담은 [필요한 몸들]은 앞서 언급한 향연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임신을 하게된 주인공은 일명 ‘축복’이라 여기는 아기를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끝없이 부정하면서도 결국 끝에서는 술을 먹자마자 토하며 아이에게 미안해하며 임신이라는 신체적 변화로 인해 맞이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잘 묘사하고 있다.


      마치 작가가 청소년기부터 청년이 되어 유산과 임신,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 노년기 여성의 삶을 전부 겪어본 것처럼 소설 안에서는 같은 여자로서도 거주하는 국가와 문화권, 인종의 차이에서인지 익숙하게 느껴지다가도 미처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극심한 몰입감을 동반한 새로움이 신기하다, 신비롭다 보단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불쾌하고 책을 읽고 있는 것이 힘들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구상에 어딘가에 살고있는 어떤 여자들의 이야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책으로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의 몰입을 담고 있기에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춘기, 임신, 신앙 문제, 유산이지만 책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제법 다르다는 걸, 우린 정말 그것의 단어 정도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책.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번역체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되새기고 싶은 문장들도 많다는 점이다.

       

      다양한 면에서 호불호가 분명 갈릴 것이지만 이는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기에 젊고, 뜨겁고, 육체적이고, 선명하고, 눈부시고, 기운찬 여자들의 이야기에 대한 감상평을 남겨본다.

       

       

      김유정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교동아, 생일 축하해 [만화]
      2. 02 [Opinion] 선과 악이 불분명하게 공존하는 세상 [영화]
      3. 03 [에세이] 우리 인생에 자기개발은 꼭 필요할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