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에게 물었다.
“너는 왜 태어났어?”
“친구 때문에.”
“친구?”
“페르디난트 다비트. 멘델스존의 오랜 친구였고,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어.”
“친구를 위해 곡을 쓴 거야?”
“응. 멘델스존이 1838년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그리고 완성하기까지 약 6년이 걸렸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그 과정에서 다비트와 이야기를 나눴거든. 바이올린 파트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았고.”
“그러면 너는 혼자 만들어진 곡은 아니네.”
“그렇지. 한 사람이 쓰고, 또 한 사람이 곁에서 이야기를 나눈 셈이니까.”
“처음에는 다비트를 위해 태어났는데 지금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계속 연주하고.”
“이번에는 임현재가 연주하고.”
“이상하지 않아?”
“별로. 음악은 원래 그런 것 같아. 한 사람 때문에 태어나도 계속 다른 사람을 만나니까.”
내가 만약 이 곡을 공연장에서 듣게 된다면 아마 정말 '유심히' 바라볼 것 같다. 첫머리부터 은근히 속도가 올라가는 구간까지 어떻게 가져갈지, 어느 지점에서 힘을 주고 다시 풀어낼지. 무엇보다 첫인사의 에티튜드부터 중요하다.
사실 음악이라는 건 순전히 개별 취향이 100퍼센트 반영되는 것이라, 내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누가 대신 판단해줄 수도 없다. 오로지 내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 이 곡과 저 사람에게 내가 매혹될지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내게는 현대음악보다 비교적 익숙하게 들리고,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어렵지 않게 ‘명곡’이라 말할 법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라면 더 그렇다.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음악이기에 오히려 그날의 자잘한 요소들에 내가 매혹될지 여부가 아주 빠르게, 또 명확하게 갈린다.
어제 카페에서 오랜만에 이 곡의 1악장을 재생했다. 처음에는 Apple Music Classical 상단에 자리한 한 연주자의 버전을 골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손가락을 움직여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든다는 건, 그러니까 선율이 내게 직선 주로로 꽂혀야만 한다는 뜻에 가깝다. 내 머릿속에는 가장 ‘원형’에 가까운 하나의 연주가 거의 각인되어 있어서, 새로운 연주가 그 버전이 뚫어놓은 길의 어느 지점을 비슷하게 짚든, 아예 다른 구간을 강조하든 어느 순간에는 나를 붙잡아야 한다. 색감에 번쩍이는 광선의 기운을 얹거나, 다이내믹을 시시각각 달리하는 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좀처럼 성이 차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게 이 1악장은 바다가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여야만 했다. 연노랑색의 봄기운이 물결처럼 차오르면 안 된다. 가을의 편안한 정취도 어딘가 부족하다. 초봄의 싸늘함과 눈이 잔뜩 내린 뒤 비어 있는 허공 사이에서 내게 말을 걸어야 한다.
따뜻하고 지나치게 매끈해서도 안 되고, 더욱이 나를 버리고 먼저 떠나버리거나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속도로 걸어주지 않으면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식어버린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음악 한 곡 듣는 데 요구하는 것도 참 많다. 그래도 취향이라는 것은 원래 이 정도로 제멋대로여도 되는 것 아닐까.
음악 안에서, 특히나 가사도 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으로 다가오는 저 세계에 내 한 구역을 남겨두려면 나는 듣는 게 아니라 본다. 지켜보는 게 아니라 바라본다. 평가하는 게 아니라 목격한다. 기대하는 게 아니라 사라짐에 연민한다. 한 번 흘러간 소리는 그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좋아하는 예술을 하루아침에 이해해보겠다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이른 아침과 늦은 밤이 저곳에도 있구나, 생각한다. 그 정도면 반갑다. 그렇게 먼저 인사를 건넬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누구라도 클래식을 조금 제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다. 꼭 아는 만큼만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정확하게 찾아내야만 제대로 감상한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랑에서 시작해야 한다면, 궁금증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어디서, 그리고 또 어떤 곡으로 시작해야 할까. 나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1악장에서 바이올린이 먼저 건네는 인사를 받아보고, 2악장의 빈 도화지를 연주자의 왼손을 붙잡고 함께 채워보는 건 어떨까. 3악장의 째깍거림도 음미해보자.
그가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색연필인가, 크레파스인가, 물감이 묻은 붓인가. 혹은 아무 색도 없이 메마른 채 놓여 있는 붓인가. 아예 다른 차원의 요술펜일 수도 있다. 같은 악보를 앞에 두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색과 선을 남긴다.
클래식 공연장에 오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화가가 될 수 있다. 무대 위의 저들이 알아서 페이지도 넘겨주고, 진도도 알아서 빼준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어느 순간 마음이 움직였는지, 또 어디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식어버렸는지만 기억해두면 된다.
무엇보다 나의 개인적인 추천은, 뭐가 되었든 그들만 오늘의 젊음을 남기게 두지 말자는 것이다. 무대 위의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몸을 써서 음악을 남기는 동안, 그 사이의 시간에 당신과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보았고 어디에 마음을 두었는지, 어떤 형태로든 꾹꾹 남겨보는 건 어떨까.
그 길을 함께 걸어줄 사람은 이곳에 너무도 많다.
한 사람을 위해 태어난 음악은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계속 살아간다. 다비트가 처음 연주했던 자리에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다녀갔고, 이번에는 임현재가 그 자리에 선다.
결국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음악을 다시 듣는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을 그대로 확인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비슷한 길을 걸어도 좋고, 아예 다른 곳으로 데려가도 좋다. 어느 쪽이든 그 안에서 잠깐이라도 마음이 움직인다면.
당신은 매혹될 것인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은 8월 20일과 21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에서 2026년 시즌 정기공연 〈얍 판 츠베덴의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를 선보인다.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하며, 양일 공통으로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과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를 연주한다.
20일에는 서울시향의 위촉으로 작곡된 정재일의 인페르노가, 21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임현재가 협연하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가 각각 무대에 오른다. 이번 두 공연은 8월 25일부터 시작되는 서울시향의 유럽 순회공연에 앞서 주요 레퍼토리를 서울에서 먼저 선보이는 무대다.
Program
8월 20일(목)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Mozart, Symphony No. 40 in G minor, K.550
정재일, 인페르노
Jaeil Jung, Inferno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Respighi, Pini di Roma, P.141
8월 21일(금)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Mozart, Symphony No. 40 in G minor, K.550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Respighi, Pini di Roma,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