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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어제 먹은 물고기가 왜 저기에? [전시]

한 끼와 유물 사이에 —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

by 김민주 에디터
2026.08.12 14:37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한가운데서 조금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어제 먹은 저녁과 비슷한 상이 유리장 안에 놓여 있었다. 청어와 방어, 복어.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유물’이라는 이름표가 붙는 순간, 그것들은1,500년 전의 밥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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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밥상》은 2026년 7월 1일부터 10월 2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2에서 열리는 특별전이다. 51개 기관이 협력해 488건 684점을 선보인다. 규모만 보아도 이 전시가 단순한 ‘먹거리 소개’에 머물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한국인의 식생활을 따라가며 곡식과 그릇, 조리 도구와 밥상,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자리에 담았다.

 

그런데 전시를 걷다 보니 음식보다 오히려 그것을 담고, 썰고, 바라본 흔적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먹다 남긴 것이 유물이 되는 순간


 

경주 서봉총에서 출토된 큰 항아리에는 청어와 방어, 돌고래, 복어 등 다양한 해산물이 담겨 있었다. 이는 망자를 위한 제사에 올려졌던 음식으로 밝혀졌다. 살아 있는 사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절차 속에서 마련된 음식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항아리 속에 담겼던 음식은 1,500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날 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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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박수근의 1952년작 <도마 위의 굴비>가 떠올랐다. 전시는 이 작품을 부산 기장군 고촌리에서 출토된 3~4세기 목제 도마 추정 유물과 나란히 배치했다. 박물관이 ‘1,700년을 넘어선 만남’이라 설명하는 이유다. 삼국시대의 도마와 박수근이 그린 도마가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순간, 도마라는 사물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의 부엌 곁을 지켜왔는지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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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주막>과 <새참>, 김득신의 <강가에 모여 먹고 마시다>에서는 시선이 음식에서 사람으로 옮겨간다. 국밥을 뜨는 나그네, 새참을 둘러앉은 일꾼들, 강가에서 술잔을 나누는 사람들. 무엇을 먹었는지만큼 중요한 것은 누가, 어디서, 누구와 먹었는가이다. 밥상은 가장 사적인 행위인 동시에 한 시대의 삶과 관계를 드러내는 풍경이 된다.

 

 

 

흔적을 남기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전시장에서 본 음식과 그 흔적을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작품들이 떠올랐다.

 

1960년, 다니엘 스포에리는 여자친구 키치카가 먹고 남긴 아침 식사 자리를 그대로 판에 고정해 <키치카의 아침 식사 I>을 만들었다. 반쯤 먹은 빵과 커피잔, 흘러내린 음식물 자국까지 지극히 평범한 아침 식탁 전체가 작품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면 치워졌을 흔적을 미술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이다.

 

김청진의 <서울특별시>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소비하는 음식과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 이 작품을 생각하면, 음식은 꼭 물질로 보존되어야만 기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햄버거 포장지에 불과한 것이 카메라 앞에서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음식은 사라지지만, 그 순간을 바라본 시선은 사진으로 남는다.

 

스포에리와 김청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식사의 순간을 붙잡는다. 두 작품을 떠올리고 나니 서봉총의 항아리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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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총의 음식 역시 지금은 한 끼를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 있다.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유물이 된 것이다. 스포에리가 식사 뒤의 흔적을 작품으로 붙잡고, 김청진이 소비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면, 서봉총의 항아리는 한때의 음식이 시간 속에서 유물로 남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방식이지만, 세 장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음식 자체보다 음식을 둘러싼 시간과 흔적이 우리에게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유물과 예술을 가르는 것


 

그렇다면 유물과 예술작품을 가르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특별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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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속 물고기가 1,500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무게로 특별했을까. 망자를 위한 제의에 오른 음식이니 아무렇게나 마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한 사람에게는 죽은 이를 떠나보내기 위해 마련한 음식이었을 뿐, 훗날 ‘유물’이라 불리리라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별했던 것은 물고기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이 오랜 시간을 견디며 남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사물의 의미는 그것이 존재했던 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시선이 더해지면서 같은 사물은 음식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하며, 사진이 되기도 하고, 유물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냉장고에 남은 반찬, 배달 음식 영수증, 식사를 찍어 올린 SNS사진. 지금은 너무 흔해서 굳이 남길 이유조차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1,500년 뒤 누군가 그것을 발견한다면 한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서봉총의 물고기도, 박수근의 굴비도, 스포에리의 식탁도, 김청진의 사진도 처음부터 같은 방식으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먹었고, 누군가는 바라보았으며, 누군가는 남겼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평범했던 한 끼는 기억과 기록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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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함은 사물 안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과 시선 속에서 뒤늦게 만들어진다.

 

《우리들의 밥상》은 ‘한국인은 무엇을 먹어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내게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전시장을 나서며 처음의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어제 먹은 물고기가 왜 저기에?’

 

어쩌면 그 물고기가 저기에 있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먹은 물고기가 아직 저기에 있지 않은 것이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강가에 모여 먹고 마시다〉, 〈도마 위의 굴비〉, 〈각종 해산물이 담긴 큰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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