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내가 가진 기억과 관계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나면 나는 결국 무엇이 될까.
불교는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의 나 역시 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지나온 시간들, 수없이 변해온 마음과 몸이 잠시 머물러가며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애써 붙잡고 있는 ‘나’라는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툭하면 경계를 긋고는 한다. 나와 타인을 나누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고, 얻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나눈다. 그렇게 나눈 것들 중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붙잡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에 정말 그렇게 분명한 경계가 있을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형태를 가진 모든 것은 비어 있고, 비어 있음은 다시 모든 형태로 나타난다.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며, 무엇 하나 인과 연이 없다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뜻에 가깝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나 혼자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인연과 시간 속에서 잠시 모습을 얻은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반드시 지켜내야 할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붙잡고 고집하던 나를 내려놓았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인연과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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