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는 ‘페르소나(Persona)’라는 용어가 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사용된 ‘가면’에서 유래된 말로, 개인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쓰는 ‘사회적 가면’을 뜻한다. 즉,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외적 인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면의 종류는 필요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한다.
이는 병리적인 현상이 아닌 정상적이고 사회적으로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가면’이기 때문에 진정한 나 자신을 숨기고 남들의 요구를 따르기 위함이다. 진정한 자아와 페르소나의 갈등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겪는 일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한참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났다. ‘나다운 게 뭔데’를 끊임없이 외치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조금이라도 해답을 주길 바라며, 극장을 찾았다.
뮤지컬 ‘더 트라이브’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뮤지컬로, 거짓말을 하면 고대 부족이 나타나 함께 춤을 추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진정한 나다움’를 찾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다. 겉보기에는 사회적 지위도 갖추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인물들이 부족들을 만나 외면해 왔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이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펼쳐져 웃음과 메시지를 함께 전달한다.
극은 조셉과 끌로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고대 부족들이 극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비중도 만만치 않다. 첫 막이 오르면 부족들의 화려한 군무가 시작되고, 곧이어 극과 부족들을 대표하는 메인 멜로디 라인이 흘러나온다. 부족들은 극에 경쾌한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며, 동시에 인물들이 나다움을 잃어 갈 때마다 등장해 두 사람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유능한 유물 복원 전문가 조셉과, 박물관에서 티켓 발권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 끌로이는 박물관에 전시 중이던 진실의 부족의 가면을 실수로 깨뜨리게 된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그들의 눈에만 보이는 고대 부족이 튀어나와 멋대로 팔다리가 움직이며 춤을 춘다. 그리고 이 춤을 멈추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부족들로 인해 자꾸만 곤란한 상황이 생기자 두 사람은 가면을 복원하여 얼른 이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그리고 거짓은 널 멈출 수 없다.”
조셉은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끌로이는 부모님과 주변 환경의 압박 속에서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에 진짜 모습을 감추고 사는 인물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부족들을 불러오는 ‘거짓말’이, 하는 사람조차도 모르는 거짓말이라는 점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기만의 비밀이라니. 우리가 흔히 아는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닌 나조차도 속이는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은 자신이 왜 춤을 추는지 알지 못한다. 그 춤을 멈추는 과정에서 자신이 숨기려 했던 모습을 하나둘 입 밖으로 꺼내며, 서서히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가면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어던지고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먼저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극 후반부에 끌로이는 자신이 지금껏 써 온 글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 앞에서 숨겨왔던 속마음을 외친다. 조셉 또한 끝내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결국 끌로이처럼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일생일대의 순간에서 터져나온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은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두 사람이 마침내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지로 춤을 추는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극은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대체로 유쾌하게 흘러간다. 두 인물이 춤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장면, 조셉과 끌로이가 자신을 포장하는 장면 등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하는 장면들이 많아 지루하지 않고, 넘버 또한 신나고 흥겨운 곡들이 주를 이루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다소 대중적인 흥미를 위한 요소들이 여럿 포함되긴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더욱 일상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갈등과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고대 부족들의 화려한 퍼포먼스 또한 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자꾸만 머릿속에서 부족이 춤을 추는 듯, 부족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가면을 써 온 사람이 그 가면 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몇 개의 가면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가면을 썼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며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편리함을 주지만,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숨기기 위한 감옥이 된다면, 그래서 가면 뒤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일까?
진정한 ‘나다움’을 찾는 것은 조셉과 끌로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 가면을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 작품은 가면을 벗어던지는 두 인물과, 그런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응원의 주문을 외는 듯한 고대 부족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2024년 초연 이후 올해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뮤지컬 ‘더 트라이브’는 오는 6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사진 출처 - 서울시뮤지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