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섬에 사는 두 소녀의 이야기 : 뮤지컬 '아일랜더' [공연]

글 입력 2022.08.2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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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일랜더>는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여성 2인이 각각 일인다역을 소화하면서도 특별한 반주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작품을 채운다. 360도로 이루어진 둥근 무대 위에는 오직 배우 두 명과 마이크, 그리고 루프스테이션밖에 없다. 소박한 준비물을 챙기고 관객들을 승객으로 태운 채, 이 배는 조그마한 섬으로 떠난다. 키난으로.
 
 
 
1. 루프스테이션으로 이루어지는 두 여성의 호흡


 
 
무대 위에 올라오는 배우들의 수는 적더라도 작품 내의 인물 자체가 적은 경우는 얼마 없다. 결국 등장하는 배우가 적으면 일인다역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두 배우는 자신이 맡은 주 배역인 소녀(에일리, 아란)뿐만 아니라 할머니, 임산부, 사내 연기까지도 훌륭하게 소화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인물뿐만이 아니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고래의 울음소리까지. 거의 모든 자연의 소리를 배우들이 직접 목소리로 만들어낸다. 라디오에 나오는 배경음악도, 사람들이 마을회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직접 루프스테이션으로 쌓아가며 실감 나게 표현한다.

루프스테이션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예민한 악기다. 말 그대로 일정한 소리를 루프를 통해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섬세한 박자와 음정 조절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그 흐트러진 소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러 명이 루프스테이션을 사용하면 더욱 신중하게 합을 맞춰야 한다. 자신의 소리뿐만이 아닌 타인의 소리에도 집중하며 함께 호흡한다. 관객들은 이렇듯 서로의 소리에 몰입한 배우들의 호흡에 함께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결국 관객들의 집중과 정적마저도 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일부가 된다.
 
 
 
2. 텅 비어있지만 가득 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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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발을 디딜 때부터 관객들의 신비로운 경험은 시작된다. 텅 비어있지만, 온통 뿌옇고 파란 공간. 공연장에 들어온 관객조차도 자신이 파랗게 보일 정도다. 공연장 속에서 관객들은 마치 심해에 들어와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어 공연이 시작되자, 360도 모양의 둥근 무대는 곧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 키난 섬이 된다. 벽면과 무대에 미디어아트를 구현하며 바닷가, 숲, 마을회관, 학교 등이 생겨난다. 그리고 루프스테이션을 통해 생기는 일정한 박자에 따라 물방울이 일거나, 고래가 호흡하는 등 미디어아트를 변화시키며 배우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객석도 공간 일부가 된다. 바닷가에 있을 법한 예쁜 의자들이 놓인 일명 ‘키난주민석’은 실제로 마을회관 장면에서 배우들이 내려와 마치 주민들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관객에게 말을 거는 특별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

무대 위에는 마이크와 루프스테이션을 제외하고 그 어떤 소품도 없지만, 조그마한 공연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그 공간이 비어있다고 느끼지 않게 해준다.
 
 
 
3. 동화같은 이야기 속 화해와 연결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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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해당 목차에는 줄거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난 섬의 전설을 노래하면서 작품이 시작되고, 키난 섬의 에일리과 세타 섬의 아란이 만나며 함께 제각각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깨달아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아일랜더>는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동화처럼 판타지를 가미한 이 순수한 이야기는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에게 바다처럼 잔잔한 힐링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듯 동화처럼 순수하고도 단순한 이야기 속에는 여러 가지 단절과 연결이 드러난다. 본토와 키난 섬의 단절, 키난 섬과 세타 섬의 분리 등의 공간적 단절뿐만 아니라 에일리와 엄마의 단절, 아란과 세타 섬 주민들의 단절, 에일리와 아란의 단절 등 사람 사이의 단절도 다루고 있다.

단절은 에일리와 아란의 관계, 에일리와 엄마의 관계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고래를 잠시 소홀히 돌본 아란처럼 당사자의 잘못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이처럼 <아일랜더>는 단절의 원인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까지 나아간다. 서로를 이해하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를 하고 이를 받아들이며 화해함으로써 생기는 결과가 곧 연결이다.

서로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고 어떠한 잘못에 대해 서로 분노만 표출하며 점점 단절이 되어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아일랜더>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통해 가장 단순하고도 순수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공간 안에서 배우들과 관객이 모두 한 호흡을 공유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 또한 이해와 연결의 미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공연에는 또 다른 소소한 포인트가 심겨 있다. 공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난쟁이 인형이 공연이 끝나고 난 후 공연장을 나오는 관객을 반긴다. <아일랜더>를 보고 난 후 이 귀여운 난쟁이 인형 같은 소소한 행복을 가슴 속에 안고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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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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