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과 도서 <오지게 재밌게 나이 듦>을 원작으로 제작된 창작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주제곡인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 줄여서 '가시나'는 중의적인 의미를 띈다. 작은 시골 마을 팔복리에서 여전히 소녀적 마음을 간직한 채, 글을 배우고 시를 깨치는 네 할머니의 서사가 극을 이루기 때문이다.
작품은 할머니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성장을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삼던 기존 성장 서사와 차별화된다. 칠순에서 아흔까지, 허리가 고꾸라질락 말락 한 노인 넷이 한글을 공부하는 모습은, '배움에는 때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란, 춘심, 인순, 분한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한글을 읽고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시장에 가서도 냄새로 음식을 구분하여 장을 봤을 만큼, 한글을 거의 읽을 줄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을 보내 일본어는 쓸 줄 알지만, 정작 한글은 제대로 쓰지 못한다거나.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제대로 된 공부를 못 해봤다거나. 저마다의 뼈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삭감되어 문해 학교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한글 교사인 '가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다큐멘터리 피디 '석구'에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시골 촌구석 노인들의 삶을 누가 궁금해나 할까, 의아했던 석구는 상사와 가을의 부탁에 못 이겨 카메라를 든다. 처음에는 창피하다며 촬영을 반대하던 할머니들도 점차 카메라를 의식하고, 가장 아끼는 옷을 꺼내 입으며 촬영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작품은 협소한 무대 배경을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홀로그램을 활용하여 배경을 전환하고, 노랫말을 띄우는 등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의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실제 문해 학교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치며 쓴 '시'를 노래로 만들어 생생한 감동을 전한다.
'소풍'을 가고 싶으면 시를 써오라고 말하는 가을 선생님. 당장 받아쓰기 100점도 받기 힘든 판국에 갑자기 문학작품인 '시'를 써오라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숙제다. 츤데레 같은 할머니들은 겉으론 툴툴대지만, 속으론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가을 선생님과 석구 피디는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다며, 할머니들의 글쓰기를 묵묵히 응원한다.
꾸며내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시구 하나하나가 음계를 타고 날아와 마음에 박혔다. '시'는 마치 지문과도 같아서, 살아온 생의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제 문해 학교 학생들이 쓴 '시'를 가지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특징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여전히 소녀 같은 '인순'은 시가 뭐냐는 가을 선생님의 질문에,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낭독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나날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워낙 유명한 시가 극과 결부되어, 또 하나의 특별한 서사를 지니며 감회가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낸다.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남자를 믿고 결혼했건만, 연애적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화상'이 되어 속 뒤집어지게 만드는 영감탱이만 남았다. 어린 자식 셋, 시어머니 두고 떠나버린 남편. 딸을 낳은 게 분하다며 지은 이름 '분한.' 만날 때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말하는 손주 앞에서 창피만 당하는 인생…. 삶에 속았다시피 살아온 그들은, '슬픔의 나날'을 참고 견디며 '즐거운 날'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기꺼이 서로의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속이 상할 땐 술을 나눠 마시며 적적함을 달래고, 투닥대는가 싶다가도 눈앞에서 멀어지면 걱정하고. 서로의 꿈을 누구보다도 응원해 주었다.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끼던 '석구' 역시 갈수록 할머니들과 가까워지며,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진정으로 응원한다.

오래전부터 가수를 꿈꿔왔던 춘심의 시는 '노래자랑 대회 지원서' 에 쓰여진다. 자신의 이름과, 노래하고 싶은 이유가 '시'가 된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누가 불러주냐며 주저하던 춘심이지만, 한글을 배운 기념으로 지원서를 적어 제출한다. 연락을 받고 예선에 나가 노래를 하는데, 너무 긴장한 탓에 떨어져 버린다. 한껏 부풀었던 가슴이 초라하게 쭈그러든다. 화가 난 춘심은 영란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고, 영란은 크게 토라져 다신 보지 말자며 자리를 뜬다.
석구는 풀이 죽은 춘심에게 카메라 앞에서 다시 노래해 보라며 작은 무대를 마련해준다. 처음엔 거절하던 춘심은 못 이기는 척, 목을 가다듬은 채 제 인생을 노래한다. '다큐멘터리는 편집 없이 찍어야 한다'고 말했던 석구가, 먼저 편집을 해주겠다며 춘심에게 꿈을 펼칠 기회를 한 번 더 마련해준 것이다.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막을 내리는가, 싶었는데. 모두 모여 시끌벅적한 틈 속 영란이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잔뜩 화가 난 영란이 자식들을 보겠다며 서울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영란은 자식들이 사는 서울 아파트에서 손주를 돌봐준다. 그런데, 손주가 대뜸 아기돼지 삼 형제 책을 가져와서는 읽어달란다. 당황하지 않은 척, 이 문장 저 문장 뱉어보지만. 어째 손주 녀석이 영란이 틀리게 읽는다는 걸 전부 알고 있다. 한글을 읽지 못해 자식 공부도 제대로 시켜주지 못했다는 게 한이었던 영란은, 손주의 동화책마저 온전히 읽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만다.
석구는 영란에게 전화를 걸어 어서 빨리 내려오라고 하는데. 과연 영란과 춘심은 화해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가 무사히 완성되고, 문해 학교가 계속될 수 있을까?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노인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한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는 바로 지금이니까, 겁먹지 말고 무엇이든 도전하라는 메시지가 감동을 선사한다.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닌가?'라는 고민을 습관처럼 하게 되는 사회에서, 작품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목소리에 집중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듯하다.
"여기도 시. 저기도 시.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만타."
예쁘고 화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내 안에 넣어둔 이야기를 꺼내놓는 용기만으로도 시가 써진다. 할머니들이 시를 지으며 애써 숨겨왔던 꿈을 다시 펼쳐 보이고. 또, 덮어두었던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케케묵은 슬픔으로부터 조금은 가벼워진 것처럼.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의 출발이기에, 지금이 시동을 걸 때이다.
다소 작은 무대에 화려한 퍼포먼스는 없지만, 잔잔하고 따뜻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극이었다.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작품상, 극본상, 연출상'을 수상한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오는 6월 28일까지 '국립 하늘 극장(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 '80분'이라는 부담없는 공연 시간, 홀로그램 기술을 통한 공간적 제약 극복, 다양한 넘버와 신나는 안무로 구성된 작품은 관객을 실컷 울리고, 웃기며 최고의 공연 경험을 선사한다.
사진 출처 - 라이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