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수림뉴웨이브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전통음악가를 조명하는 공연제로, 매년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동시대 우리음악의 흐름을 탐색해 왔다. 올해의 주제어 '엇'은 전통음악에서 엇박과 엇모리처럼 익숙한 흐름을 비껴가며 새로운 긴장과 활력을 만들어내는 감각을 의미한다. 어긋남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우리음악의 창조적 에너지이자 음악적 유희의 방식이다. 올해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기존의 기량 위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을 시도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수림뉴웨이브 2026의 공연은 판소리, 가야금, 서도소리, 해금, 거문고, 타악, 생황, 피리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그중 정은혜 소리꾼의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되었다.
정은혜는 제32회 임방울국악제 대통령상과 2025 KBS 국악대상 대상을 석권하며 판소리의 동시대성을 몸소 증명하는 소리꾼이다. 창극·연극·뮤지컬을 넘나드는 배우이자 과감한 창작으로 소리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전통 판소리의 ‘엇부침’을 동시대적 음악 언어와 철학적 사유로 확장하며, 인간 내면의 어긋난 마음과 비극적 정서를 독창적인 작법으로 녹여낸다.
사실 판소리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전통음악이 메인이 된 공연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티비에서, 예능에서, 혹은 어떤 곡에서 요소요소로써 사용된 정도로만 접해본 것이 다였다. 그렇기에 설레는 마음 반, 왜인지 긴장되는 마음 반을 안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평소 자주 듣던 음악들과 비교하자면 판소리에는 많은 악기가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 한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이끌어 가야 한다. 그래서 첫 곡인 <정정렬제 춘향가>가 시작하자마자 느꼈던 강렬함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상대적으로 빈 공간이 느껴질 거란 생각과 달리 무대는 훨씬 역동적이고, 꽉 차 있었다. 소리꾼의 목소리, 고수의 북소리와 추임새 하나만으로 이야기가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정정렬제 춘향가>가 전통 판소리였다면, 이후의 음악들은 수림뉴웨이브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었다. <그 물에서>는 '심청가'를 모티브로, <불허>는 '적벽가'를 새롭게 해석하여 만들었다. <무무: 무언가>는 투르게네프의 소설 <무무>를 판소리로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사실 판소리, 하면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판소리만의 특징이 명확해서 다른 무언가와 융화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예상과 달리 다양한 악기와 실험적인 음악이 섞이고 어울리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자연스럽고 또 멋스러워서 넋 놓고 무대를 감상하게 되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무무: 무언가>였다. 소리꾼이 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호응을 유도하던 모습, 그리고 관객들이 그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며 왜 판소리에서 청중이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 저잣거리에서 소리꾼의 이야기를 듣던 모습이 바로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야기가 주가 되면서도 악기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소리꾼이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과거의 것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소환하는 음악의 힘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들도 판소리로 리메이크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엇’은 어긋나고 엇갈린다는 의미의 접두사입니다. 음악에서는 정해진 박을 비껴가는 ‘엇박자’, 2박과 3박이 뒤섞여 절룩대는 느낌의 ‘엇모리장단’ 같은 곳에서 쓰죠.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난 순간 우리는 짧은 탄성처럼 ‘엇’을 내뱉기도 합니다.
우리음악은 직선의 정확함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흔들리고 꺾이는 음, 밀고 당기며 만들어내는 박, 그 어긋남은 우리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정해진 질서를 깊이 감각하는 사람만이 어긋나는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림뉴웨이브 2026>은 단순히 익숙함을 벗어나는 파격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다듬어진 노련함이 만들어내는 우리음악이 가진 유희의 순간에 주목합니다.
10명의 예술가가 들려주는 서로 다른 음악 세계에서 즐거운 ‘엇!’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수림뉴웨이브 2026' 기획의 시선 中
이번 공연이 더욱 기억에 남는 건 멋진 무대와 더불어, 정성스러운 소개와 '수림뉴웨이브'를 이어가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믿음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현대에서 이런 뛰어난 연주자들과 공연을 만나볼 수 있었단 것 또한 왜인지 어떤 흐름을 거스르고 어긋내어 만난 귀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판소리 공연을 보며 예상치 못한 즐거움으로 ‘엇!’하고 탄성을 질렀던 순간. 앞으로도 이런 무대들이 사람들에게 가닿아 짧고 익숙한 탄성을 뱉어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