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기의 삶은 늘 타인의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맞추는 일의 연속이었다. 불합리한 상황도 분위기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참아왔지만, 직장 동료와 사내 연애 중인 남자친구의 뒷담화를 듣고 결국 과호흡으로 쓰러진다.
이후 나기는 SNS와 인간관계를 정리한 채 낡은 아파트로 이사하며 ‘인생 리셋’을 시작한다.
공기를 읽는다
동명의 실사 드라마에서는 공기를 읽는 장면을 물에 빠지는 것에 비유하여 연출한다. 이는 타인에게 민폐 끼치길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의 ‘메이와쿠(민폐)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일본의 문화적 맥락을 보면, 한국에서 쓰이는 ‘분위기’나 ‘눈치’보다 ‘공기’라는 단어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작품에는 ‘공기’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대사가 등장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나기가 잠시 일했던 스낵바의 마담이 던진 말이다. 스낵바에서 일하며 손님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나기에게 마담은 “혹시 너 남의 말 잘 들어주는 타입이라고 생각해?”라며 일침을 던진다. 눈치만 보며(공기를 읽으며) 대화의 공을 던지지 않는 태도는 사실 상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방식일 수도 있다.
이 대사를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경청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에 더욱 가슴에 박혔던 대사이다. 먼저 공을 던져주며 대화를 이끌어갔던 이들에 대한 배려를 눈치채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똥차’ 맛집 순정 만화

(왼) 곤 (오) 신지
<나기의 휴식>은 얼핏 보면 수수한 여자 주인공이 두 명의 남자 주인공들에게 둘러싸이는 전형적인 순정 만화 구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은 전형적인 삼각관계 로맨스를 따르지 않는다. 신지와 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미성숙하고, 작품은 그 결함을 숨기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신지와 곤는 굳이 따지자면 ‘똥차’에 가깝다. 나기의 전남친인 신지는 나기를 낮잡아 보고 손바닥 안에서 통제하려 들며 가스라이팅을 시전한다. 결정적으로 나기가 회사에서 과호흡으로 쓰러지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반면, 곤은 이사한 곳의 옆집에 사는 남자로 클럽에서 디렉터로 일한다. 느긋한 성격에 잘 웃어주지만, 깊은 관계를 어려워하며 그때그때 눈앞의 여자를 기쁘게 한다는 명목으로 복잡한 이성 관계를 유지한다. 작품은 초반부터 남자 주인공들의 ‘쓰레기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독자의 뒤통수를 친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흔히 순정 만화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이 아닌 ‘애증의 고민’을 쥐여준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똥차’로 등장했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캐릭터의 현실성을 더해준다. 이러한 캐릭터 구성을 통해 판타지적 순정 만화와 결을 달리하며 <나기의 휴식>은 단순한 만화 이상의 애착을 남긴다.
휴식기 끝!
마지막 권에서는 나기와 신지의 연애 시절, 수족관에서 한 방향으로 헤엄치는 정어리 떼를 보았던 기억을 회상한다. 공기를 읽는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럽지만 누구보다 이에 염증을 느끼던 신지는 그 모습이 징그럽다고 하고, 억지로 공기를 읽어내야 했던 나기는 동경의 마음을 담아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둘 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정어리를 내심 응원한다.
결국 신지는 정어리 무리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나기는 본인의 방향대로 헤엄치기로 결심한다. 방향은 다를지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 본인 자신의 목소리를 따르기로 한다. 나기의 변화 역시 특별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굿피플이라는 프로그램의 권상우 변호사가 했던 말 중에 좋아하는 말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평범한 사람이고 지구상에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
그렇게 하면 좀 더 내가 절실해도 되고, 욕심내도 되고 그게 우아하지 않은 게 아니고. (...)
좀 더 구차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나기의 휴식>은 내가 과하게 잘나거나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위로를 건네준다.
나기처럼 ‘나라서’까진 아니더라도 이런 ‘나라도’ 좋으니까.
<나기의 휴식> 드라마 사운드 트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