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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공포와 신념 사이에서 -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도서]

믿음과 신념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

by 정선민 에디터
2026.05.1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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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혁명 시기, 수도원, 수녀들의 대화라는 설명으로 처음에는 이 책을 종교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읽다 보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종교 자체라기보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마음에 더 가까웠다. 공포 속에서 사람은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지, 그리고 끝내 무엇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응시하는 도서 같았다.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유작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프랑스대혁명에 이은 공포정치의 종식(1797년 7월 27일) 불과 열흘 전에 처형된 콩피에뉴 가르멜 수녀들의 비극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작품은 인물들의 대화와 고백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극 형식의 대본이라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로도 만들어기도 했으며 이 작품은 20세기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주인공인 블랑슈 들라포르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포와 연결된 사람처럼 묘사된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세상에 태어난 블랑슈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나 도시의 소음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극심한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수도원에 들어가지만,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는 수도원까지 밀려오게 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이었지만, 점점 급진적으로 흘러가면서 결국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까지 제거하기 시작한다. 성직자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그것을 거부한 사람들을 처벌했던 성직자 공민헌장 같은 사건들도 실제로 존재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해야 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혁명이 결국 어디까지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정부가 수녀원 건물을 압류하고 정부에 복종하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은 수녀들을 쫓아내자 수도원의 수녀들은 순교를 다짐한다. 블랑슈도 함께 순교를 서원했지만 막상 죽음이 가까워지자 공포에 질려 수도원을 떠난다. 그런데 작품은 그 모습을 비겁하다고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사형선고 당일, 블랑슈는 수녀들의 처형이 끝나갈 무렵 군중 속에서 다시 걸어나와 단두대 앞으로 향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살아왔고, ‘들라포르스’라는 이름이 가진 용기와 강인함에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블랑슈의 마지막 선택은 더 인상깊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블랑슈의 변화는, 결국 공포를 넘어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고 버티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가치가 현실적인 기준으로 움직이는 시대에는 목숨보다 중요한 믿음이라는 가치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작품 속 인물들은 끝까지 흔들리면서도 결국 자기 신념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은 공포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저는 그분들이 죽는 걸 원하지 않아요! 저도 죽고 싶지 않아요!”라는 블랑슈의 말처럼, 이 작품 속 사람들은 죽음이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흔들리고, 또 누군가는 끝까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결국 서로에게, 각자의 믿음에 의지한채 마지막을 함께 한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단순히 죽음을 이야기하는 종교극이라기보다, 끝까지 공포 속에서 흔들리던 인간이 결국 무엇을 붙들고 자기 삶의 방향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혁명, 믿음, 신념과 같은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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