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솔직히 말해 ‘난해하고 어렵다’는 감상이었다. 작품 자체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등장인물은 충분한 설명 없이 등장하고, 대화는 맥락을 해설해 주지 않은 채 이어진다. 누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인물들은 이미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독자는 그사이를 따라잡기 위해 계속해서 문장 사이를 더듬게 된다.
특히 개인적으로 초반부의 들라포르스 후작 가문 장면이 어렵게 느껴졌다. 후작 부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블랑슈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지만 그 사이의 맥락과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다만 사람들의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무언가 불안하고 음울한 기운만을 남길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니, 오히려 그 낯설고 불친절한 방식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단순히 혁명기의 비극을 그리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역사보다도 먼저,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언제나 ‘공포’가 있다.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 그중에서도 종교인들이 탄압받던 ‘공포정치’ 시기다. 그러나 작품이 집중하는 것은 정치적 이념이나 혁명의 정당성이 아닌,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느끼게 되는 원초적인 두려움에 있다.
블랑슈라는 인물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특이하다. 그녀는 흔히 생각하는 신앙적인 주인공과는 다르다. 강인하지도 않고, 세상을 초월한 평온함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그녀는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정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가 수도원에 들어가려는 이유 또한 숭고한 사명감이라기보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수도원은 신앙의 공간이기 이전에, 공포로부터 숨기 위한 피난처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속 수도원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혁명 속에서 수도원 역시 죽음과 가까워지고, 블랑슈는 결국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인간의 공포를 조금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죽음을 앞두고 흔들리고,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신앙심 깊고, 완벽하게 평온한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것 같은 인물들도 두려움에 몸부림친다.
보통 우리는 신앙이나 믿음이 인간을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앙은 공포를 없애주지 않고, 인간은 끝까지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묻는다. 그 두려움 속에서 인간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를 읽으며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거대한 혁명의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이 자신의 공포를 견디지 못해 흔들리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이상할 만큼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용감한 사람들의 서사가 아니라, 끝까지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마지막 순간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 것은 ‘숭고함’보다는 떨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혁명과 단두대의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이 작품은 아주 오래된 질문들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다. 인간이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끝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