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적인 화풍이 매력적인 페르난도 보테로.
그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 순간부터, 자력처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순진한 표정과 통통한 몸매, 그와 어울리지 않는 대담한 태도의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제대로, 정확하게 본 적은 없었다. 따라서 그의 전시회 소식이 유독 반가웠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페르난도 보테로전. 4월 24일 금요일에 시작한 이번 전시는 8월 30일 일요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Fernando Botero in his studio in Paris, France, 1990
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는 '보테리즘'이라고 불리는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낸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고전 회화에 지역 문화를 담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인물과 사물을 과장되게 팽창시킨 듯한 형태는 단순 왜곡이 아닌, 균형과 색채 및 공간에 대한 치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테로는 생에 전반에 걸쳐 회화와 조각, 드로잉을 넘나들며 폭넓은 주제를 다루었다.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페르난도 보테로전은 총 112점의 전시 작품을 통해 보테로가 평생에 걸쳐 탐구해 온 '볼륨의 미학'과 독자적인 조형적 언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감상한 적은 처음이라,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필요했다. 따라서 섹션 소개를 참고하며 작품 감상의 여정을 거쳤다. 그 덕에 나름의 해석을 시도할 수 있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얀 반 에이크를 따라 The Arnolfini After Van Eyck, 2006, 캔버스에 유채, 205 X 165 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가장 인상적이었던 첫 번째 섹션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섹션 변주(Versions)에서 소개하는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얀 반 에이크를 따라>. 이 섹션의 주안점은 '예술은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선대 작가들의 그림을 자신의 고유한 형태와 양감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동일한 인물을 동일한 구도로 그렸음에도 전혀 다른 감각을 전달한다.
고전 작품의 재해석 외에도 보테로는 익숙한 구도와 장면에 자신의 조국 문화를 접목하여 아예 새로운 그림을 창조했다. 아래 작품 <댄서들>이 그 하나의 예이다.

댄서들 Dancers, 2002, 종이에 파스텔, 142 X 118 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서양 미술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무도회 장면. 보테로의 무도회 역시, 일반적인 서양 고전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도의 춤추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림 속 인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안에 깃든 라틴아메리카를 느낄 수 있다.
대중적이면서 화려한 색상의 옷들과 과감하게 드러낸 팔과 다리. 멀리서 보면 익숙한 그림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어딘가 낯선 기분이 드는 특이점이다. 서양의 화풍과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접목한 페르난도 보테로의 표현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서양 미술이라고 하면 유럽의 그림을 먼저 떠올리는 우리에게, 페르난도 보테로는 굉장히 친절한 라틴아메리카 미술 가이드이다. 생소한 문화가 갑자기 다가오면 거부감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테로는 익숙함 위에 새로움을 더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젖어들 수 있도록 유도한다.
더군다나 인물과 사물의 양감과 조화로운 색감이 편안함과 동시에 안정감을 준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볼륨감이 넘치는 인물과 사물은 특유의 관능미를 느끼도록 만든다. 그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걸쳐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는 '나는 회화가 관대하고, 감각적이고, 육감적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페르난도 보테로전. 고전 미술에 신선하고 유쾌한 변주를 선사하는 감각적인 작품들이 매력적인 전시회였다.
위에서 소개한 첫 번째 섹션 변주 외 다섯 개의 섹션이 더해져 총 여섯 섹션으로 구성된 페르난도 보테로전은 보테로의 생애에서 중요했던 그림의 주제와 표현법,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가치 등을 체감할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실제로 그는 사회적인 관습을 해학적으로 풍자한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심도 있게 다룬 주제 중 하나가 종교였는데, 여성 주교를 그린다거나 주교를 다른 이들에 비해 크게 그려 종교라는 문화가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폐쇄성을 꼬집었다.
콜롬비아의 성모 Our Lady of Colombia, 1992, 캔버스에 유채, 230 X 192 cmⓒ Fernando Botero Foundation
따라서 전시를 보다 보면, 자신이 끌리는 주제나 화법 또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보는 이마다 느껴지는 감상이 다를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보테로의 그림은 즐겁다는 것이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샅샅이 살펴보는 사람에게나, 있는 그대로의 표면적 감각을 느끼는 사람에게나 보테로의 그림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기분 좋은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 페르난도 보테로전에 다녀오는 건 어떨까?
봄이 가진 생명력을 느끼며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