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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풍선을 불듯 살다 간 예술가 - 페르난도 보테로展 [전시]

페르난도 보테로展 리뷰

by 조은서 에디터
2026.05.0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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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유명한 회화를 자신만의 그림체로 재해석한 보테로의 작품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패러디인 줄 알았는데 이 화풍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활동하는 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둥글둥글한 선과 화사한 색감에 언뜻 어린 시절 읽었던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이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11년 만에 열리는 공식 대규모 전시로,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드로잉 등 그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예술의 집합체들을 엿볼 수 있다.

 

명화들에 대한 변주, 종교를 테마로 한 작품, 투우 연작 등 작품의 테마별로 섹션이 나뉘어져 있어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찬찬히 유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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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회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한 첫 번째 섹션에서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따라 (이면화)>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사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낯선 작품이었는데, 전시장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우는 사이즈에 압도되었다. 이 그림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는 사이즈가 아니라 풍채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을 정도로 인물의 옆모습이 캔버스를 장악하고 있다.

 

얼굴의 면적 자체를 강조하고자 한 것인지 이목구비나 귀는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는데, 이 덕에 더욱 유머러스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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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로의 화풍 자체가 풍만하고 육감적이기 때문에 조소 작품에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다음 섹션에서 보테로의 조각 작품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게 된 인상 깊은 사실 중 하나는 보테로가 자신의 조각을 공공장소에 설치해 사람들이 직접 감상하고 만질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자신과 공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예술을 통해 얻은 기쁨을 타인들에게 환원하고자 하는 예술인으로서의 정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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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로의 조소 작품이 흥미로웠던 주된 이유는 바로 질감과 형태의 조화 덕분이었다. 인체의 곡선과 재료의 질감이 부드럽게 맞아떨어져 마치 살아 있는 작은 인간처럼 보인다.

 

인체뿐 아니라 고양이나 말 같은 동물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는데 보자마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새> 동상이었다. 머리와 날개, 가슴털과 꽁지깃까지 둥근 형상을 한 이 작품은 마치 3D 게임 속에 등장하는 그래픽 같았다.

 

외형을 보면 분명히 새임이 틀림없는데 왜인지 날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한가로이 털을 고르고, 잔디밭을 종종 돌아다니는 모습이 상상되어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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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회화 작품들 중에서는 축제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화려하고 흥겨운 축제의 풍경이 그의 화풍과 잘 어울리면서도, 어쩐지 다른 그림들에 비해 이 그림들 속 사람들이 유독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테로의 회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무표정이거나 감정을 읽기 어려운데 이러한 특징이 '축제'라는 테마와 만나 아이러니함이 극대화된 것 같다.

 

우스꽝스러운 행색을 하고 있지만 진실한 표정을 알 수 없는 두 인물, 그리고 둘의 알록달록한 색감을 강조하는 검은 배경.

 

축제가 한창일 때 가면을 써 표정을 감춘 사람들, 그리고 신발을 벗고 있는 두 인물.

 

보테로는 얼굴에서 감춘 감정의 단서들을 다른 곳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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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로는 풍만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의 현실이 메말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향년 91세로 작고하기 전까지 자신의 고향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에 넉넉한 웃음을 선사하고자 했다. 보잘것없는 풍선에 숨을 가득 불어 매끈하고 둥근 구체를 만들듯, 그는 자신이 회화와 예술을 행하며 얻은 행복을 척박한 세상에 뿌리고 갔다.

 

전시장을 방문했던 날, 작품을 감상하다가 마주쳤던 많은 사람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는 그의 염원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내려앉았기 때문이 아닐까.

 

풍선을 꼭 쥐고 놀이공원을 나서는 어린아이처럼, 전시장을 나선 순간 나의 손에도 알록달록한 감정의 풍선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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