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를 가득 채운 탐스러운 볼륨, 그 너머로 흐르는 라틴 아메리카의 뜨거운 에너지.
'볼륨의 거장'이라 불리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기분 좋은 풍만함은, 팍팍한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위트있는 예술의 재미다.
Fernando Botero with the work Los músicos
보테리즘, 형태의 관능미에 압도되다
이번 전시는 4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콜롬비아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의 회화, 조각, 드로잉 등 112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대형 유화 작품들은 그 크기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한다.
단순히 대상을 '볼륨감있게' 그린 것이 아니라, 보테로만의 독창적인 비율로 완성된 '보테리즘'은 형태의 관능미를 극대화하며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다.
형태의 관능미와 양감을 강조하여 인물과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예술은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처럼, 전시장 곳곳에는 삶에 대한 찬미와 인간적인 유머가 가득하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얀 반 에이크를 따라 The Arnolfini After Van Eyck, 2006, 캔버스에 유채, 205 X 165 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처음 맞이하는 <변주>는 벨라스케스, 고야 등 고전 거장들의 명화를 보테로식 볼륨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대형 캔버스에 구현된 양감의 미학은 원작과는 또 다른 압도적인 아우라를 선사하며, 익숙한 도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재미를 준다.
<라틴 아메리카>는 작가의 뿌리인 콜롬비아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섹션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축제와 일상, 가족의 모습을 통해 풍요로운 에너지와 민족적 정체성을 느낄 수 있으며, 예술이 우리네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뒤를 이어 <투우>와 <서커스>는 보테로가 소년 시절 투우 학교에 다녔던 경험은 그의 예술 세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투우장의 긴장감, 그리고 광대와 곡예사가 만들어내는 서커스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보테로의 붓끝에서 생생한 활력으로 되살아난다.
전시를 관람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작가의 성실한 예술적 태도였다. 열네 살에 처음 붓을 든 순간부터 아흔한 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평생을 작업에 매진했던 보테로의 열망이 작품마다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작품 속 풍만한 볼륨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며,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오아시스' 같은 휴식을 제공한다.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을 넘어 작가의 정체성이 뇌리에 깊게 박히는,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전시였다.
그림을 통해 순수한 기쁨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번 전시를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