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 형태의 미학
세계적인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전시가 오는 2026년 4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최된다.
보테로의 화풍은 독보적이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것 같은 풍만한 덩어리감과 의도적으로 축소한 이목구비.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과잉이지만 극단적인 느낌 없이 보기 편안하다.
이 균형감은 어디서 왔을까?
개인적으로 보테로는 대표작 무언가보다 화풍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의 인상에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다.
보테리즘, 그러나 보테로 외의 비슷한 화풍의 누군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의미로 독보적이다.
1. 변주
첫 섹션에는 거장의 그림을 보테로만의 양감을 살려 재해석한 그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원작을 바로 캐치할 수 있으면서도 형태와 색감이 보테로라서 "이게 이렇게도 되는구나"라는 재미가 따라왔다.
'레스카노의 초상'으로도 알려진 '바예카스(발레카스)의 소년'은 원작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러 벨라스케스의 작품 중에 이런 것도 있었나? 하고 바로 검색해 봤는데 있었다. 분위기가 달라서 캐치하지 못했는데 핸드폰 화면과 화폭을 번갈아가며 보니 맞긴 맞았다. 자연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광대가 보테로를 만나 소년스러움이 극대화되었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보테로의 손을 거치면 친근해진다. 전시 전반에 걸쳐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보테로의 작품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2. 라틴 아메리카
"예술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보테로를 남미의 피카소라고 소개하거나 남미 작가로 분류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카테고리 구분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를 가둬두는 틀이 사라진 것과 별개로 그의 뿌리는 콜롬비아 메데인에 있다.
그는 남미의 일상을 베이스로 두고 유럽의 기법을 조합해냈다.
이 섹션에서 인상에 남았던 작품 중 하나는 파스텔화인 '댄서들'이었다. 인물들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고 조명은 작게 빛나고 있는데 밀도가 빽빽하다는 느낌 없이 부드러운 분위기가 전달되었다.
그리고 사후 처음으로 공개되었다는 '꽃을 든 해골'. 해골마저도 꽃다발처럼 풍성해졌다. 해골과 장미꽃이 퇴폐적이지도 탐미적이지도 않고 친근했다.
마치 농담이라도 건넬 것 같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드로잉 작품인 '파블로 에스코바의 죽음'.
저 사람은 누구기에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걸까. 보테로의 고향 메데인에 마약 카스텔을 만든 이, 테러와 암살을 서슴지 않는 잔혹한 성정을 자랑하다 젊은 나이게 사살당했다고 한다. 작품 근처에서 빠르게 검색해서 설명을 훑고 나니 그를 향한 총알의 개수가 부족한 것 같았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활약하던 마약왕의 죽음은 보테로에게는 어떤 사건이 되었을까.
3, 4. 종교 & 정물
보테로는 종교를 신앙의 관점이 아닌 회화적 관점에서 접근하였다고 한다.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와 성모에서는 종교적 엄숙함이 배제되었고, 성직자는 일상적인 공간으로 옮겨와 평범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선했던 건 색색깔의 헤일로였는데 예상 밖의 연출이지만 그 지점이 보테로스럽게 느껴졌다.
정해진 이미지가 있는 인물을 보테로의 방식으로 탈피시킬 수 있지만 정물 섹션에서는 과잉된 형태보다 색채가 두드러졌다. 붉은 배경과 수박, 쨍한 분홍빛 천 위에 올려진 오렌지. 이전 섹션에서는 의도가 신선했다면 정물에서는 색 조합이 신선했다.
5, 6. 투우 & 서커스
어릴 적 투우 학교를 다녔던 보테로의 개인적 경험과 투우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투우가 주는 자극적인 이미지보다 투우의 동적인 이미지와 투우사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우의 본질은 투우사와 해골(죽음)을 배치한 것으로 표현했다.
서커스 섹션을 보고 이만큼 보테로가 잘 소화할 수 있는 주제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마주하니 서커스의 강렬함보다 보테로의 화풍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피에로 복장과 분장이 평범하지 않다 해도 그의 세계 안에 속하는 것이지 밖으로 뛰쳐나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주제가 세계를 확장시킬 걸 예상했으나 보테로는 그것들을 품고 있었다.
전시는 어려운 것 없이 유머러스했으며 그림은 가볍게 지나치기엔 강렬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는 그림들이었다. 많은 것이 풍요롭고 어떤 것은 유쾌했다.
그의 지론대로 즐거운 예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