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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감정의 진폭을 견디는 법, 나를 다시 해석하는 시간 [사람]

감정의 결

by 이수진 에디터
2026.04.28 20:23

 

 

유독 3월과 4월은 나를 시험하듯 지나갔다.

   

업무적으로 부딪히는 관계 속에서 기대와 실망이 교차했고, 잘하고 싶은 욕심은 오히려 나를 더 헷갈리게 했다. 겨우 균형을 찾나 싶던 순간, 회사 내 조직 개편이라는 변화가 닥쳤고, 그 안에서 나는 더 방향을 잃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회사 생활이 순식간에 낯설어졌고, 그 틈에서 사람들에 대한 신뢰 역시 조용히 사라졌다.

 

사실, 그 시간 속에서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주변의 수많은 목소리는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졌지만, 그 어떤 말도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을 뿐이다. 그 와중에 나는 나를 설명하지 못했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렇게 감정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결국 나는 나의 가치를 스스로 의심하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외부 소음

 

조직과 관계 속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다.

 

이번 시간은 그 감각을 또렷하게 체험한 시기였다. 수많은 의견과 판단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점점 더 말문을 잃어갔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모두 ‘맞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맞음’은 나에게 방향이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했다. 각자의 논리가 쌓일수록 나는 중심을 잃었고, 결국 어떤 선택도 온전히 나의 것이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횡설수설하는 태도와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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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타인의 말이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그것이 나의 생각과 실천하는 언어가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어떤 문장을 선택해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느냐였다.

 

 

 

무력감의 정체

 

이번 경험이 더 깊은 상처로 남은 이유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명확한 원인이 있었다. 나는 나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지 못했다는 자각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버텨보겠다는 선택,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은 분명 의미 있는 태도였다. 실제로 나는 주어진 일들을 끝까지 해냈다. 그러나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선택받지 못하는 위치’로 나를 데려갔다. 노력의 방향이 틀렸던 것인지, 아니면 기준 자체가 달랐던 것인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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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무력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태도는 때로는 강점이 아니라, 나를 특정한 영역으로 정의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결국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나는 스스로를 설득할 근거를 잃어버린 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서 환영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단 한 사람에게라도 부정적인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그 감각은 쉽게 무너진다. 이번 시간 동안 나는 그 취약함을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은 늘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시선 하나가 전체를 덮어버리고, 나는 스스로를 ‘필요 없는 존재’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그 감각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잠식한다.

 

이 경험은 불편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남겼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정의할 수 없다는, 너무도 익숙한 문장이 실제로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문장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었다.

 

 

 

반복되는 계절

 

흥미로운 것은 이 감정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몇 년 전의 블로그 기록 속에서도 나는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감정을 겪고 있었다. 3월과 4월, 한 해의 초입에서 나는 반복적으로 하강 곡선을 그려왔다. n년 전의 나를 돌아보라는 알림이 블로그 앱에 뜬다. 거기서도 나는 우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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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감정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패턴은 통제할 수 없지만, 대비할 수는 있다. 이 시기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안다면,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감정의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나를 객관화하는 첫 번째 단계이자, 다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 같다.

 

*

 

감정을 다양하게 느낀다는 것은 때로는 축복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그것은 나를 갉아먹는 요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번 시간을 지나며 나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감정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나는 여전히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온전히 믿는 것이 서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 감정의 진폭을 지나온 내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릴 차례다.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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