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악가 키라라는 키라라는 예쁘고 강하다. 그리고 “짱이 되라”고 말한다.
짱이 된다는 건 뭘까.
생각해보면 짱이 되는 건 꽤 쉽다. 우리 집에서 나는 존재만으로 짱이고, 달콤한 말이 필요한 친구에게는 그 한마디로 내가 짱이 되고, 혹은 스스로를 견디는 태도 같은 것들, 그 작은 순간들이 나를 짱으로 만든다.
키라라가 말하는 ‘짱’은 결국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순간, 그 위에 붙는 수식어들은 무의미해진다. 잘났든 못났든, 빠르든 느리든, 그저 내 이름이 곧 하나의 기준이 되는 상태.
이 태도는 그의 커리어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키라라는 전자음악 신에서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왔다. 2026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 수상은 그 흐름의 연장선이다. 2017년 처음 시상대에 오른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여덟 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단순한 ‘하입’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청자와의 신뢰다.
흥미로운 건 가사가 없는 그의 음악을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부른다는 점이다. 전자음악의 비언어적 리듬이 집단적인 목소리로 확장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공연의 장면을 넘어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귀를 설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말’ 역시 음악만큼이나 또렷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별이 자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사람은 망한 사람 같아요. 만약 나이가 한참 많아요. 근데 이사람의 가장 첫번째 중요한 정체성이 남성이에요. 그럼 이 사람은 아주 이상한 사람일 것 같지 않아요? 트랜스젠더가 구릴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당신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더 멋있는 정체성이 있어야할 것 같아요.
다소 직설적인 이 문장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모든 것을 제외한 나의 알맹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가장 설명하기 쉬운 것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성별, 나이 같은 것들. 물론 그것들은 분명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을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빈약하다.
키라라의 말은 묻는다. 당신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멋있는가’.
여기서 ‘멋있다’는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의 문제다. 자신을 규정하는 기준이 단 하나로 수렴될 때 그 사람은 쉽게 납작해진다. 반대로 자무기가 많아질수록 그 사람은 무한히 입체적이다.
짱이 된다는 건,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내가 노력해서 얻게 된 언어로 나를 정의하는 것. 그리고 그 정의가 충분히 마음에 든다면, 우리는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짱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히 내가 짱이 된다면 키라라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들뜨고, 과시하고, 더 쉽게 흔들릴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자로 잰듯 정확한 태도가 더 멋있다. 한결같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니까.
키라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대단해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짱이 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자꾸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